33번의 마감 후 퇴임을 앞둔 지금. “찍은 사진 중 제일은 뭐냐”라는 질문을 받고 급하게 내가 찍었던 사진들을 기억해 내지만, 하나를 짚기 어려웠다.하지만 분명히 의미 있는 취재는 있다. 작년 11월, 기자 생활 2개월 차에 이태원 참사 추모 현장에 가기 위해 늦은 밤 기자 3명과 함께 택시를 탔다. 어깨의 그 무거운 카메라 가방보다 마음이 훨씬 무거웠던 밤. 수많은 꽃과 추모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 소주병에 꽂혀있는 한 송이의 백화. 눈물 흘리는 이들 앞에서 ‘찰칵’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게 어색했지만, 이 현장을 기록해야겠다
테넷(2020)‘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라는 이 대사는 '테넷'이 얼마나 복잡하고 난해한 플롯의 구조를 지닌 영화인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영화는 사물의 엔트로피 역행에 기반한 ‘인버전’ 기술을 중심으로, 여러 양자역학과 물리학의 개념을 도입하여 서사를 전개한다. 영화 속 어려운 과학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관객이 자신의 영화를 두고 이처럼 고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영화가 선사하는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체험하고 등장인물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하나의 철학적
편집자주 |그때 학보가 다룬 그 문제, 지금은 해결됐을까요? 본지가 취재한 학내 이슈를 돌아보는 코너 ‘새로고침’을 두 달 간격으로 연재합니다. 본지에서는 교내 일회용품 분리수거 문제, 쓰레기 처리 과정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꾸준히 지적했습니다. 이번에는 이러한 현실 속 그린 캠퍼스를 만들기 위한 작은 습관을 실천하고 있는 이화인의 모습을 사진기자의 시선으로 포착해봤습니다. 5년차 페스코 베지테리언 비건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환경에 대해서는 어렸을 적부터 막연한 관심이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게 된 건 이화에 들어오고 나서입니다. 실
이 기사가 공개될 무렵이면 내가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온 지 80일도 넘어가게 된다. 한국에서 나는 쭉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기숙사 생활을 해본 적도, 자취 경험도 없었다. 그런 내가 용감하게도 홀로 외국에 나온 지도 이제 삼 개월을 채우게 되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신기하고, 스스로 뿌듯해지기도 한다. 처음 교환학생을 준비할 때, 당연히 걱정이 많았다. 이렇게 오래 외국에 나와본 적은 물론, 한국에서도 혼자 생활해 본 적이 없으니 두렵기도 했다. 나는 집안일에 서투른 데다 생활력이 떨어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때문에 물리
이맘때면 시간에 가속도가 붙음을 느낀다. 거리에 수험생을 응원하는 다정함이 가득하고 반짝거리는 캐롤이 들린다. 어느새 연말이 다가온 것이다.일 년이 한 시간이라면 고작 7분30여초가 남은 셈이다. 어쩌면 연말은 초, 분, 시, 달, 년처럼 인간이 나눈 경계에 불과하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결국 거스를 수 없는 광활한 시간 앞에 무력해지지 않으려는 노력이 아닐까. 특히연말은 한 살을 더하는 이상한 변화를 멋지게 포장하려는 듯하다. 두 달의 시간에 포장지를 감싸면서 우리는 설레고, 긴장하고, 또는 무기력해지기도 한다.사실 내게는 그
국어국문학과 2012년 졸업. 독립출판물 와 팟캐스트 을 만든다. 경향신문에 미디어 비평 칼럼 를 연재 중이며 저서 『연애하지 않을 자유』, 『차녀힙합』, 『아니 근데, 그게 맞아?』 등을 썼다. 현대소설 연구자가 되기 위해 폭포 밑에서 수행 중. 책을 사들이기만 하고 읽지는 않는 사람을 일컫는 별명을 정하는 놀이가 SNS에서 흥했다. ‘활자격리소’, ‘출판계의 빛과 소금’, ‘소장학파’, ‘아가리 독서러’, ‘독서댐’…주옥같은 아이디어 속에서 단연 화제가 된 것은 ‘집책광공’이었다. ‘광
한국과 오스트리아는 다른 점이 많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대부분의 상점이 평일 저녁 7시면 문을 닫고, 일요일에는 문을 연 곳을 찾기가 힘들다. 아날로그 친화적인 환경이다. 거의 모든 아파트는 열쇠로 여닫아야 한다. 언제 어디에서 마주하더라도 서로 눈이 마주치면, ‘Guten Morgen(좋은 아침)’ 혹은 ‘Hallo(안녕)’의 인사말을 습관처럼 내뱉는다. 이렇게 내가 살아온 환경과는 다른 것들을 마주하게 될 때,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생활하던 모습들이 겹치곤 한다. ‘이런 점은 한국이 더 낫네 혹은 더 불편하네’와 같은 감상부터, ‘
본교 학부에서 국어국문학을, 대학원에서 한국학(한국어교육)을 전공했다.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태국 씰라빠껀대학교 한국어학과를 거쳐 현재 미국 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언어문명학과 한국어 강사로 일하며 학부생 및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있다.대학 4학년, 프로듀서를 꿈꾸며 ‘언론고시’를 열심히 준비하던 때에 우연히 수강하게 된 라는 교양 수업이 내 인생의 방향을 한순간에 바꿔 버렸다. 지금은 옛말이 된 듯하지만, 당시에는 미래지향적 느낌이 물씬 풍겼던 ‘세계화’라는 단어에 관심이 갔고, 한국어
리바운드(2023)리바운드는 2012년 부산의 한 고등학교 농구부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과거에 영광을 누렸지만 다 무너져 가는 농구부에 26살 젊은 코치가 부임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영화다. 초등학교 때는 천재 소리 듣는 유망주였지만 키가 자라지 않아 슬럼프가 온 가드 ‘기범’, 부상으로 농구를 포기하고 형편이 어려운 가정 사정으로 내기 농구를 하며 돈을 버는 스몰 포워드 ‘규혁’, 점프력만 좋은 축구선수 출신의 센터 ‘순규’, 길거리 농구만 해온 파워포워드 ‘강호’, 농구 경력 7년 차지만 대회 출전 경험은 없는 만년 벤
10월 22일 오후 4시, 나는 우이천에서 짝지은 원앙들을 보았다. 물 위에선 한없이 평온할 줄만 알았던 저 원앙들이 한껏 몸을 부풀리며 다른 원앙들을 위협할 때가 있었다. 그건 자기 짝에게 공격이 가해질 것 같을 때. 대체 저 말 못 하는 동물들은 뭘 알길래 사랑을 하고, 계산 없이 본능적으로 짝을 지키려 할까. 이런 면에서 보면 일부 동물들은 인간보다 한 차원 높은 사랑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저 원앙들을 보면서 내가 가진 사랑에 대해 둘러보았고, 어떤 태도로 사랑을 마주해야 할지 정의하는 시간을 가졌다.나는 원래도 사랑이 많
요즘 ‘낭만을 찾는다’는 표현을 자주 듣는다. 나도 가을 끝자락에 올라타, 낭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이 글에서 낭만에 관한 서두를 던지기 위해 본격적으로 낭만이 무엇 같으냐고 만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한동안 물어보고 다녔다. 학교에서 함께 풍물패를 하는 친구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소고춤에만 집중하고 있는 상태가, 바다를 좋아하는 친구는 아침에 갔던 바다를 저녁에 또 가는 일이 낭만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다양한 이야기들 속, 공통으로 낭만은 현실을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 현실감의 반대 개념. 어쩌면 현실을 벗
일본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후지산, 초밥, 온천, 벚꽃…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아니메(*‘애니메이션’의 일본식 표기)’와 다양한 캐릭터 산업일 것이다.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도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를 보면서 처음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교환학생 행선지를 일본으로 정한 것 역시 그 영향이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 지낸 지 두 달이 지난 지금, 직접 느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할 수 있는 생활’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다.막 입국한 후 이번 학기 교환학생들을 처음 학교로 불러 학교생활이나 일본에서의 생활
안녕하세요. 이대학보 독자 여러분. 첫 칼럼을 쓸 때만 해도 더위가 가시지 않은 여름이었는데 어느새 차디찬 바람이 불어 오는 겨울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피부에 닿는 공기의 온도로도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만, 얼마 남지 않은 학보 발행 횟수가 제겐 더 크게 와닿습니다.이번 학기 저희 학보는 아홉 번의 신문을 만들었고, 앞으로 두 번의 발행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번 호는 제2회 이화문예상 수상작들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자 총 네 면에 수상작과 소감, 심사평을 담았습니다. 기사를 몇 면에 어느 크기로 배치할지 결정하는 지면 레이아웃
낙엽이 져서 가을인 걸 알았다. 계절의 흐름도 신경 쓰지 못한 채 11월을 마주했다. 작년 겨울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학보에 온 마음을 다하고 있다 보니 어느덧 3학년이 성큼 다가온 걸 눈치채지 못했다. 어느새 코끝에 겨울 냄새가 감도는 지금, 올 한 해를 되짚어 보면 오직 ‘이대학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스물하나의 매 순간을 학보와 함께한 것이다. 다른 이의 일주일은 ‘월화수목금토일’로 이뤄져 있을 테지만, 우리의 일주일은 ‘일월화수목금토’로 이뤄져 있다. 일요일을 통으로 다 바쳐 어떤 기사가 세상에 나가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
뮤지컬/후크(2023)낡은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석탄이 타고, 물이 끓는 소리 위로 한 아이의 환상적인 목소리가 쌓인다. “놀이를 시작해,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놀이.” 혜화동의 한 극장, 공장을 상징하던 좁고 어두운 공간은 반짝이는 놀이터로 변하고, 관객들은 제임스와 함께 피터와 웬디의 네버랜드로 초대된다. 우리가 원하는 건 모두 할 수 있고, 되고 싶은 건 모두 될 수 있는 네버랜드. 현실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 공간에서 뮤지컬 ‘후크(2023)’의 막이 올라간다.산업 혁명이 한창이던 영국 런던. 이곳엔 빚더미뿐인 공장의 공장장
19세기 영국의 비평가, 수필가로 알려진 토마스 드 퀸시(Thomas De Quincey)가 1804년 옥스퍼드대학의 학생이었던 어느 날, 치통으로 인해 며칠간 두통을 겪게 된다. 그때 친구 권유로 진통제 ‘아편팅크’를 마시게 되면서 아편중독으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그는 처음에 복용량이 적어 문제가 없었지만, 점점 의존성이 강해지면서 다양한 아편류에 빠져들었고, 이를 회복하기 위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였다고 소설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Confessions of an English Opium-Eater)’에서 밝히고
종종 늦진 않을까 생각했다. 현역으로 입시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간 친구가 사진 동아리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즐겁게 지내고 있을 때 나는 독서실에서. 고난도 비문학 지문을 풀었다. 늦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늦어도 가고 싶은 길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탓에 주변의 온갖 반대와 우려를 피해 독서실로 향했다.혼자 다시 하는 수험생활은 막막하고 두려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정해진 것 하나 없이, 이미 정해진 것 같은 삶을 사는 주변 친구들과 다른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정해지지 않은 미래가 불안했고, 사계절
본교 불어불문학과를 2005년 졸업하고 한국일보문화사업단에서 미술 전시기획과 홍보 마케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모네전, 반 고흐전, 르누아르전, 고갱전 등의 대규모 회고전을 담당했다. 프랑스 유학 이후 K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일민미술관 선임 홍보로 근무했으며, 현재 독립 전시기획자로 일하며 AI를 활용한 예술교육 등 다양한 융복합적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큐레이터 처음 봐요. 근데 어떤 일 하시는 거예요?”직업이 ‘큐레이터’라고 하면 대부분 신기한 눈빛으로 궁금해한다. 요즘은 도슨트(전시
본교 영어영문학과를 1965년 졸업하고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8년 ‘한국문학’에 시 ‘밤’으로 등단한 이후 『그대는 별로 뜨고』(1987), 『지난날 그리움을 황혼처럼 풀어놓고』(1992), 『마음 속에 뜬 별』(1995), 『사막에서 길을 찾네』(2008), 『꽃이 피기 위해서는』(2012), 『별을 찾아서』(2013) 등 시집 15권과 수필집 다수를 펴냈다. 윤동주문학상(1995), 종려나무상(2014) 등을 수상했다. 현재 대전대 석좌교수로 있다.지방의 사범학교에 다니다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 영어
영화/너와 나(2023)반쯤 먹혔지만 갈변하지 않은 사과, 세미의 상이 맺힌 거울, 아이가 웅덩이에서 건지는 공룡... ‘너와 나’(2023)의 메타포들은 영화가 축조한 미결정의 세계를 지탱한다. 이곳에서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 등의 상투적 경계란 영화 속 탁자 끄트머리에 위태롭게 놓인 유리컵처럼 툭, 치면 횡단할 수 있는 무엇이다. 매 쇼트를 호위하듯 감싸고 있는 빛의 노출이 담지하는 것 또한 수학여행 전날 고등학생 세미와 하은의 하루를 담은 이 영화의 일부, 혹은 전체가 살아남은 자의 백일몽이라는 가능성이다.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