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번의 마감 후 퇴임을 앞둔 지금. “찍은 사진 중 제일은 뭐냐”라는 질문을 받고 급하게 내가 찍었던 사진들을 기억해 내지만, 하나를 짚기 어려웠다.

하지만 분명히 의미 있는 취재는 있다. 작년 11월, 기자 생활 2개월 차에 이태원 참사 추모 현장에 가기 위해 늦은 밤 기자 3명과 함께 택시를 탔다. 어깨의 그 무거운 카메라 가방보다 마음이 훨씬 무거웠던 밤. 수많은 꽃과 추모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 소주병에 꽂혀있는 한 송이의 백화. 눈물 흘리는 이들 앞에서 ‘찰칵’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게 어색했지만, 이 현장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에 계속 셔터를 눌렀다. 하지만 그런 나를 비웃듯 추모 공간 건너편에서는 각종 방송국과 개인방송 진행자, 종교 지도자들이 조명을 환히 켜고 생중계하고 있었다. 기자가 아니었다면 그 현장과 사건의 무게는 삶에서 비교적 가볍게 존재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지난 5월, 본교에서 유가족과 함께하는 간담회가 열렸다. 참사 유가족 다섯 분의 눈물을 보고 추모 현장에 갔던 경험을 떠올리며 셔터를 또 연신 눌렀다. 동일한 이슈를 두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목도하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빨리 이슈를 잊고 또 지우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기자 생활을 하며 학내 이슈의 전문가가 됐다. 학과 교수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보라색 풍선을 파빌리온 전시관에 가득 채웠던 조예대 학생들, 학생 사용을 일부 제한하겠다는 학생식당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학생들의 사진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교내 이슈에 약간은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던 터라 이들의 생동감은 내게 크게 다가왔다. 점차 어떤 현장에서 누구의 말을 듣고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지 기대하게 됐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작성했던 기사가 지난학기 ‘새로고침’ 코너의 교내 배리어프리 개선사항에 대해 다뤘던 기사다. 취재기자 옆에서 보고 배운 것을 통해 자치단체를 섭외해 인터뷰했고, 비슷한 주제로 캠페인을 준비 중인 이화인과 서면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예전 사진과 비슷한 사진을 찍기 위해 휠체어를 대여할 수 있는지 센터에 문의해보고(아쉽게도 거절당했지만), 장애인 학생이 통행하기에 불편한 길목은 없는지 캠퍼스 전체를 걸었다. 사진기자로서 취재 과정 전체를 경험하기가 어려운데 이때 취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인터뷰를 듣고 취재원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으면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바로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는 점과 질문하는 습관이 생겼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시작하면 1시간 넘게 이어지는 인터뷰가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갈수록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면서 인터뷰이의 인생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1차 촬영 후 웬만하면 인터뷰의 내용에 집중하려고 했다. 여성주의 서적들을 번역하는 번역가가 사실은 평범한 가정의 엄마였고, 무심코 들고 온 제자의 원서가 그의 작업 촉매제였다는 이야기. 난파사고 때문에 배의 기름을 닦다가 대학원을 다니기로 결심했다가 이제는 퇴사가 꿈이라는 해양경찰의 이야기. 매우 흥미롭지 않은가. 직업 이면에 존재하는 비하인드 스토리, 어쩌면 기사로도 적히지 못할 진솔한 마음이 툭툭 입 밖으로 나올 때의 순간을 좋아한다. 나는 그들의 인생을 들은 순간 일종의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들이 가장 ‘나다운 표정’을 짓기까지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그때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이런 사랑에 빠지게 되면 질문도 저절로 생긴다. “진짜 그렇게 시작하셨어요?”, “그때는 어떤 감정이었어요?” 이런 애드리브 같은 실없는 질문들을 종종 던진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런 기습 질문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전달받지 못한 질문에 당황할 수 있지만 모두 친절하게 답해줬고, 오히려 사진기자의 새로운 시각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대학보는 일단 질문의 수준은 차치하고, 입 밖으로 내 질문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끔 만들어줬다.

이번 학기에 가장 큰 변화를 겪은 부서는 사진부였다. 기존에는 취재 기자의 일정에 가능한 사진기자가 동행하는 시스템이었는데 현실적으로 모든 취재에 사진기자가 동행하기 힘들며, 갑작스럽게 정해진 취재 일정에는 정성을 쏟기 힘들다는 아쉬움이 컸다. 따라서 이번 학기부터는 기사의 성질과 중요도에 따라서 사진기자를 먼저 배정하고 함께 일정을 조율하는 시스템으로 변화했다. 그 이면에는 이러한 취재의 즐거움을 다른 사진기자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지금만 갈 수 있는 현장에 가서 충실히 셔터를 누르고 왔으면 하는 마음. 다행히도 이런 마음을 이번 데스크와 취재부장들이 이해해줘 큰 시스템 개편을 이뤄낼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제 독자로 돌아가 새로운 시각에서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또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학보의 미래와 나의 미래, 모두 기대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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