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넷(2020)

출처=다음영화
출처=다음영화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라는 이 대사는 '테넷'이 얼마나 복잡하고 난해한 플롯의 구조를 지닌 영화인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영화는 사물의 엔트로피 역행에 기반한 ‘인버전’ 기술을 중심으로, 여러 양자역학과 물리학의 개념을 도입하여 서사를 전개한다. 영화 속 어려운 과학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관객이 자신의 영화를 두고 이처럼 고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영화가 선사하는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체험하고 등장인물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하나의 철학적 메시지에 공감하기를 바랄 뿐이다.

혹자는 흥행을 통한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 블록버스터 영화의 감독이 시사하는 메시지의 위대성을 염세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영화의 배경에 해당하는 과학적 지식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영화를 ‘감상’하지 않고 ‘분석’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인물의 감정선과 상황에 집중하기만 한다면, 관객은 자연스레 자신의 인생을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앞으로의 삶의 방향성을 모색하며, 많은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의 조력자인 '닐(Neil)'은 이미 자신이 전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역행 시간대에서 순행 시간대로 인버전한다. 주인공의 만류에도 그는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다.’라는 말만 남길 뿐이다. 일면 이 한마디를 인과율과 운명의 불변적 속성을 강조하는 결정론 주의적 발언에 해당한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닐은 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변명이 아니라 세상의 구조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며, 자신은 이러한 상황을 운명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부른다고 덧붙인다.

위의 대사는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이라는 철학적 논제를 암시하며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조명한다.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은 상반된 주장의 이론으로서, 서로 양립될 수 없다고 말하는 통설적 입장과 달리, 영화는 오랜 기간 지속된 이 문제의 절충적 입장이 존재할 수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또한, 이 장면 속 닐의 대사에는 일어난 일은 이미 과거의 사건에 불과하므로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결과를 되돌릴 수는 없다는 명백한 사실과, 현재에는 자유의지를 통해 미래를 변화할 가능성이 무한으로 존재한다는 낙관주의적 입장이 서로 공존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흔히 ‘향수병’과 ‘노스텔지아(nostalgia)’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이를 실제로 경험한다. 현재 상황을 분명히 자각하거나 또는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인식하지 못하고, 특정한 이전 시점의 기억에만 머물러 있는 멜랑콜리(melancholy)한 객체화된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다. 이렇게 각자의 향수에 젖은 사람들은 과거 미화된 추억부터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까지 이전의 모든 좋고 나쁜 기억을 떠올리며 정작 현재와 미래에, 즉 삶에 충실하지 못하는 태도를 보인다. 위 마지막 장면에서의 닐의 대사와 행동은 마치 이러한 사람들의 무책임한 태도에 각성을 일깨우는 듯하다.

닐은 종말의 위험을 극복해야 한다는 극단의 상황 속에서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당연하다는 듯이 희생을 선택한다. 이러한 그의 결정은 신의 뜻이라는 불변의 법칙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닌, 세상과 동료인 ‘주도자(protagonist)’를 지키고자 한 그의 자유의지에 대한 행동에 해당한다. 닐이 자신의 인생 전반에 걸쳐 강한 주체성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라고도 볼 수 있다.

관객은 이 장면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것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고, 인생에 있어 주체적인 자아의 필요성에 대해 숙고해 볼 수 있다. 항상 변화가 일어나기 전 과거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스스로 현재를 불행하다고 이미 정했던 나의 경우, 지난날에 과도하게 얽매여 있기보다 긍정적인 사고를 통해 시간을 계획함으로써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와 관점을 더욱 건설적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다.

<테넷>에는 강렬한 스크린과 혼잡한 플롯 구성 이면에, 시간과 인생이라는 본질적인 철학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이라는 커다란 의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조망할 수도 있으며, 철학의 측면에서 인생을 사유하고 또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다. 따라서, <테넷>은 유명 감독과 거대 투자사에 의한 그저 '잘' 만들어진 상업 영화가 아니라, 인생의 모토를 설정하고 자아를 심층적으로 탐구할 수 있게 해주는 큰 계기이자 하나의 원동력을 선사하는 '작품'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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