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센터’의 입구에서 팬들을 맞이하는 캐릭터들. 제공=박인서씨
‘포켓몬 센터’의 입구에서 팬들을 맞이하는 캐릭터들. 제공=박인서씨

일본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후지산, 초밥, 온천, 벚꽃…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아니메(*‘애니메이션’의 일본식 표기)’와 다양한 캐릭터 산업일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도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를 보면서 처음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교환학생 행선지를 일본으로 정한 것 역시 그 영향이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 지낸 지 두 달이 지난 지금, 직접 느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할 수 있는 생활’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다.

막 입국한 후 이번 학기 교환학생들을 처음 학교로 불러 학교생활이나 일본에서의 생활에 대해 안내하는 첫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90명이 넘는 교환학생들에게 모두 짧게 자기소개를 시켰다. 나는 비교적 초반 차례였고 뭐라고 소개했는지 가물가물한 것을 보아 매우 무난하게 마쳤던 것 같다. 그에 대비되게 기억에 남는 톡톡 튀는 소개 역시 많았다. 그리고, 동서양을 불문하고 일본의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왔다는 소개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여기서 ‘문화’란 무척 폭넓은 의미이다. 학생들의 자기소개에서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과 같은 서브컬처부터 영화나 드라마, J-POP과 같은 대중문화, 그리고 가부키 등의 전통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가 등장했다.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일본 문화에 관련된 수업에서는 그 수업의 교수님보다도 일본 고전문학에 대해 잘 아는 유학생을 본 적도 있다.

이러한 일본의 문화 산업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지금은 어떤 형태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 학술적으로 배워보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또 따로 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보다 가벼운,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선, 정말 접근성이 좋다. 어디를 가나 캐릭터 숍이 꼭 하나씩은 있으며 동네 잡화점에도 관련 상품이 심심찮게 보인다. 점잖아 보이는 백화점의 한 층이 통째로 캐릭터 숍인 경우도 있었다. 유행하는 팬시 캐릭터는 어디에서나 보이기 때문에, 별로 관심이 없다가도 점점 정이 들어서 문구류나 손수건 등을 살 때 ‘기왕이면 캐릭터가 그려진 걸로 살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일본에서는 이른바 ‘오타쿠’의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이 사이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어 다양한 서브컬처 관련 점포가 위치한 것으로 유명한 ‘이케부쿠로’는 원래도 백화점이나 회사 건물 등이 많아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따라서 이케부쿠로에 가면 다양한 차림의 ‘오타쿠’들과 정장을 입은 회사원, 교복을 입은 학생, 가족 단위로 놀러 나온 사람들이 한데 뒤섞여 있다. 그 풍경이 내게는 무척 흥미롭고 신기하게 여겨졌다.

또, 그런 만큼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서브컬처 관련 행사나 팝업 스토어에 갔다가 유아차를 끌고 온 여성이나 나이 지긋한 어머님을 본 적도 있다. 좋아하는 것의 종류도 다양하다. 전철을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으면 가끔 승강장 맨 끝에서 전철이 들어오는 것을 영상으로 찍는 사람을 볼 수 있다. 혹은 전철 안에 타서 창밖 풍경을 쭉 영상으로 찍는 사람. 이른바 ‘철도 오타쿠’다. 이처럼 그가 어떤 사람이든, 혹은 무엇을 좋아하든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좋아하는 행위를 무시하지 않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한 종류의 산업으로서 제대로 체계가 잡혀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현재 문화 강국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K-POP의 소비자는 자주 천시당하고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이 좋지만은 않다. 그러한 문화 산업이 갑자기 급속도로 성장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체계를 갖출 시간이 모자랐던 게 아닐지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런 업계에 익숙한 상태였는데, 일본에 와서 규모가 큰 행사나 콘서트에 갔을 때 진행요원을 아낌없이 배치하여 질서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 신기했고, 부럽기도 했다. 여러모로 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다고 느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반대로 생각하자면, ‘좋아하는 것’이 여기에 없다면 일본은 그다지 매력적인 선택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또 어떤 부분에서는 완전히 다르고, 불편하기도 한 나라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이 여기에 있다면, 한 번쯤 손에 닿는 거리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부디 고려해 보기를 바란다. 물리적 한계나 남의 시선과 같은 여러 제약에서 벗어나서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자유롭게 좋아할 수 있는 생활이 주는 즐거움과 해방감에 나는 무척이나 만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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