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익숙해진 기숙사 동네의 정경. 제공=박인서씨
이제 익숙해진 기숙사 동네의 정경. 제공=박인서씨

 

이 기사가 공개될 무렵이면 내가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온 지 80일도 넘어가게 된다. 한국에서 나는 쭉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기숙사 생활을 해본 적도, 자취 경험도 없었다. 그런 내가 용감하게도 홀로 외국에 나온 지도 이제 삼 개월을 채우게 되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신기하고, 스스로 뿌듯해지기도 한다.

 처음 교환학생을 준비할 때, 당연히 걱정이 많았다. 이렇게 오래 외국에 나와본 적은 물론, 한국에서도 혼자 생활해 본 적이 없으니 두렵기도 했다. 나는 집안일에 서투른 데다 생활력이 떨어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때문에 물리적으로 가깝고 생활양식이 비슷하기 때문에 적응이 쉬울 것 같은 일본을 고르게 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나는 지금 혼자서도 학교에 다니고 밥을 먹고 빨래를 하고 친구와 놀러 다니기도 하면서 잘 살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앉아있는 책상과 방은 조금 더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걱정과는 다르게 나의 첫 자취생활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흘러갔다. 수월하다고나 할까, 헤매고 있을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나는 일본에 왔고 여권에는 ‘STUDENT’라고 적힌 사증이 찍혔으며 일본 대학의 가을학기가 끝나는 내년 1월까지는 무를 수 없었다. 그러면 하는 수밖에.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혼자 살게 되면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한다. 오늘 내가 힘들다고 해서 빨래를 하지 않으면 당장 내일 입을 옷이 없을지도 모르고, 아침에 알람이 울리고 ‘오 분만 더…’라고 해도 흔들어 깨워줄 가족이 없다. 사소한 일 하나까지도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부지런해질 수 있었다.

 그러면서 하나 알게 된 점은, 지금까지 내가 하지 않았던 것은 못 해서가 아니라, 안 해도 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원래 서투르니까’, ‘나는 둔한 편이라서’라는 말은 스스로 지어낸 핑계였던 것 같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코앞에 닥치니 어떻게든 할 수 있었고 둔해서 신경 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챙겨주기 때문에 둔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부끄럽지만,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집에 돌아가면 더 나은 딸이 되겠다고 몰래 결심했다.

 그렇다고 실력이 갑자기 뛰어나게 되는 것도 물론 아니다. 요리는 여전히 못 해서 주로 기숙사식을 먹거나 밖에서 사서 들어오고, 설거지할 때마다 이게 맞는 건가 싶다. 최근에는 옷을 빨면 보풀이 엄청나게 붙어서 골치가 아프다. 그렇지만 엉성해도 일단 해내면 내 손으로 내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성취감과 나도 제대로 한 사람 몫을 하는 인간이라는 효능감이 생겨났다. 이 두 가지가 나를 지탱하는 데에 많은 힘이 돼주었다.

지난달 즈음, ‘생각보다 할 만한 것 같다’라고 어머니께 말했더니, “거봐, 너 괜찮다고 했잖아.”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고 보면 교환이 확정되고 나서 내가 겁내고 있을 때도 우리 어머니는 별로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때는 그게 조금 섭섭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든든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나도 그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라도 더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

전공과 관련된 것도 아니고 영어권도 아닌 일본 교환학생은 별로 쓸모 있는 이력이 되지 않을 거라는 말도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기회가 되었고, 소중한 추억을 잔뜩 만들어 나가고 있다. 사실 벌써 삼 개월이 지나간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별로 경험한 게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잘 생각해보면 은근히 많은 일을 해낸 것 같기도 하다. 확실한 건, 이 선택은 절대 되돌릴 수 없고 나의 교환학생 생활은 훗날 돌이켜보면 분명 특별한 의미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걱정도 고민도 많았지만 일단 부딪혀 본 결과, 나는 잘 적응해서 나름대로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다. 물론 자만과 방심은 금물이지만.이런 나도 해냈으니까, 이 기사를 읽고 있을 나보다 멋진 그대는 분명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니 만약 지금 선택을 주저하고 있다면, 우선 용감하게 도전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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