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아편전쟁으로 보는 약물중독의 위험성

19세기 영국의 비평가, 수필가로 알려진 토마스 드 퀸시(Thomas De Quincey)가 1804년 옥스퍼드대학의 학생이었던 어느 날, 치통으로 인해 며칠간 두통을 겪게 된다. 그때 친구 권유로 진통제 ‘아편팅크’를 마시게 되면서 아편중독으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그는 처음에 복용량이 적어 문제가 없었지만, 점점 의존성이 강해지면서 다양한 아편류에 빠져들었고, 이를 회복하기 위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였다고 소설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Confessions of an English Opium-Eater)’에서 밝히고 있다.

비슷한 시기 이미 청나라 많은 사람들이 아편을 흡입하면서 중독에 빠져들어 국가 경제는 파탄에 이르게 됐다. 중국에서 아편 흡입과 그로 인한 중독이 세상에 퍼지게 되는 것도 드 퀸시가 1822년 소설을 통해 자신의 아편중독을 고백할 무렵이었다. 영국에서는 책이 발간되자 크게 파장이 일었지만, 영국 상인들은 개의치 않고 돈벌이를 위해 식민지 인도의 벵골산 대량의 아편을 몰래 중국으로 들여가 판매했다. 그로 인한 결과는 중국의 아편전쟁의 패배와 홍콩할양 등을 내용으로 하는 난징조약의 체결이었다. 1842년의 일이었다.

청 정부는 아편 흡연을 금지하는 법령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면서도 아편 수입과 유통과정에서 거두는 세금 때문에 아편의 국내 생산과 유통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기에 금연 정책은 종종 실패로 돌아갔다. 1880년대 인구가 100만이 되지 않았던 상하이에서 아편을 흡연할 수 있는 흡연방이 약 1700개소로 거의 찻집이나 음식점과 맞먹은 수치였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아편에 노출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복잡한 국내 정세가 계속되어 중국에서는 약 150년간 아편 흡연과 중독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계속 증가했고 문제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러면 청나라에서는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벌인 노력은 없었던 것일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편전쟁의 주인공 임칙서(林則徐)는 청조 황제의 명으로 아편을 중국에서 퇴치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광저우에 부임했다. 아편전쟁이 일어나는 1839년 임칙서의 동생은 아편중독으로 사망하였다. 누구보다 아편 금지에 대한 의지가 불탔기에 그는 아편 단속에 심혈을 기울였다.

아편전쟁사에서는 그의 이러한 엄격한 아편 금지 정책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1830년대 초반부터 아편중독자를 어떻게 치료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그의 고민에 화답해 준 인물이 지금 상하이 송장(松江) 지역에서 송나라 이후 대대로 명의로 이름을 날리던 하씨 가문의 하기위(何其偉)라는 의사였다. 지역책임자와 의사의 만남은 이렇게 시국을 걱정하면서 시작하였고 의사 하기위는 1년 만에 아편 치료를 위한 처방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지역사회에서 최고 위치에 있었던 임칙서는 그 처방전을 발간하여 많은 이들에게 효과 보았다고 자평했다.

나아가 그는 1838년 자신이 5년 동안 처방전으로 치료한 대강의 상황과 의사 하기위가 만들어 준 치료약의 원리 및 제조 방식을 긴 상주문을 작성하여 당시의 중국 황제에게 올린다. 임칙서가 희망하는 것은 처방전을 황제가 잘 살펴보고 아편중독자에 대한 치료를 전국적으로 할 수 있도록 윤허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후 황제의 지시로 나온 새로운 아편 정책이 없음을 보아 임칙서의 상주문은 하나의 제안 정도에 그친 것임을 알 수 있다. 안타까운 부분이다.

임칙서와 함께 아편중독에 대한 치료방법을 고안하였던 하기위의 활동은 동시대의 중앙에서 아편 수입에 대해서 탁상공론을 벌이며 아편 피해에 대해 돌보지 않는 관리들의 무책임함과 크게 대비된다. 적어도 아편중독이 번지는 핵심지역의 지방관리, 혹은 그 현장에서 치료의 의무를 감지하였던 의사와의 협조가 중독치료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기에 근대 중국의 관료 임칙서를 재평가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중독이란 독성물질에 의한 신체적・물질적 중독과 정신적・행위적 중독을 동시에 일컫는 말로 정의하고 있다. 아편과 같은 마약류의 중독을 후자인 정신적・행위적 중독으로 일컫고, 이는 심리적 의존성이 있어 지속적으로 약물을 갈망하게 만든다. 특히 약효가 떨어졌거나 약용량이 감소하였을 때 오는 신체적 고통은 중독자로 하여금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라도 약을 얻게 만든다. 이때 사회적, 도덕적 문제가 야기되므로 매우 경계해야 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마약류와 관계된 사건들이 일어났던 것을 상기해 보면 약물중독의 위험성에 대해 알 수 있다.

근대 중국에 만연했던 아편은 이제 모든 국가에서 규제로 단속하고 있으나 당시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돈벌이를 위해 생산하고 판매하는 이들이 지하세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드 퀸시가 아편팅크를 접했던 것처럼 현재도 진통과 치료의 목적으로 혹은 모르는 사이에 접하며 중독에 빠지게 되는 뉴스를 접하고 있다. 새삼 임칙서와 하기위 같은 인물도 필요하지만, 스스로의 주의와 경계도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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