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낭만을 찾는다’는 표현을 자주 듣는다. 나도 가을 끝자락에 올라타, 낭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이 글에서 낭만에 관한 서두를 던지기 위해 본격적으로 낭만이 무엇 같으냐고 만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한동안 물어보고 다녔다. 학교에서 함께 풍물패를 하는 친구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소고춤에만 집중하고 있는 상태가, 바다를 좋아하는 친구는 아침에 갔던 바다를 저녁에 또 가는 일이 낭만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다양한 이야기들 속, 공통으로 낭만은 현실을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 현실감의 반대 개념. 어쩌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조금 미쳐야 낭만인 것일까.

낭만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낭만이라는 단어를 들여다보았다. 낭만의 사전적 정의는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 또는 그런 분위기’이다. 낭만의 어원은 영어의 ‘로맨스’라고 한다. 로맨스의 일본식 표현 ‘로망’이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며 지금과 같은 의미의 ‘낭만’이 되었다고 한다. 앞서 나눈 대화들과 낭만이 원래 로맨스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생각해 봤을 때, 낭만은 현실에 매이지 않고 사랑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지금, 낭만 찾는 청춘들에게 내가 참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영화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는 2021년 연말에 개봉한 ‘레츠피스(Let’s Peace)’의 여행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그룹 ‘레츠피스’는 브라질 바투카다를 연주하는 평화퍼포먼스팀인데, 남미의 리듬을 연마하고 호흡을 맞추며 행진한다. 그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지구생명과의 상생을 꿈꾸고 실천한다. ‘Let’s Peace’, 그러니까 ‘평화하자’인 것이다. 분단되기 전에는 전라도의 가장 남단인 목포역에서 서울행 기차표를, 서울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어 기차를 타고 쭉 육지를 여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데 그 말을 안 하고 있었던 거예요”라고 말한 그들은, 영화에서 언젠가 남북을 잇는 철도가 연결되어 기차로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를 수 있기를 바란다. 이들은 그 마음을 담은 구호 ‘서울역을 국제역으로’를 외친다.

영화 속 이들의 여행은 평화를 위해 행동했던 이들을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20대로 구성된 ‘레츠피스’ 소속 로드스꼴라의 선생님들과 주말로드스꼴라 학생들이 함께 여행을 떠난다. 3월부터 주말마다 전국 각지로 여행을 가서,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하던 목포 청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박차정 같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묘소로 가는 이정표를 만들어 본다. 학생들은 여행을 통해 한국에 대해, 평화에 대해, 여행에 대해, 서로에 대해,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알아간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나요? 평화의 물결이 지금 우리에게 일고 있나요?”

여름방학이 되고, 본격적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러시아어와 춤, 노래를 알려준다. 그들은 다 함께 가방을 메고 여권을 챙겨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목포에서 베를린으로 출발한다. 사람들은 만주벌판을 달리고 바이칼 호수를 보며 글을 쓰고 기타를 치며 노래한다.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영화는 ‘레츠피스’가 바투카다를 들고 해고 노동자를 위한 연대의 현장에 참여하는 등의 모습을 담는 것으로 이어진다. 여행이 끝나고도 그 이후의 일정들을 화면에 계속 비춰줌으로써,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다른 이들과 연대하고 가치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확장됨을 보여준다.

사실 이들이 이렇게 여행을 떠나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며, 기차역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영화가 만들어졌던 2018년에 비해 2023년의 한반도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여행을 다녀온 그들은 여행을 다녀오며 만난 사람과 풍경을 여행이 끝난 이후에도 기억할 수 있게 됐고, 그들이 생각하는 평화를 세상에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영화의 엔딩곡 제목은 ‘향수’이다. 학생들은 함께 창밖 사막의 풍경과 바이칼 호수와 새벽 기차를 그리워하지만, 힘들고 지치면 다같이 여행을 떠나자고, 외롭고 슬프면 모두가 찍은 사진을 꺼내볼 수 있다고 노래한다. 나는 여기에 낭만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현실의 무게와 내가 시소를 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현실이 너무 무거우면 오히려 나는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붕 떠버린다. 그러면 붕 떠버린 스스로는 현실에서 아무 의미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럴 때, 현실에 매이지 않고 사랑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내가 현실에 두 발 붙이고 서 있을 수 있게 해준다. 시소 바깥에서 우리가 사랑한 것들이 시소에 서 있는 우리에게 의미를 준다. 그리고 그 가치를 가지고 우리는 다시 시소에 매이지 않고 사랑한다. 영화는 “여덟 번의 여행을 하고 아홉 편의 글을 쓰는 일은 결국 ‘나’는 도대체 무엇인지 질문하기 위한 과정이었지”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우리가 현실에 매이지 않고 마음껏 경계 너머를 상상할 수 있게 하고, 우리의 현실에 버팀목이 되어 줄 낭만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런 사랑들이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 해가 지는 곳까지 함께 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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