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후크(2023)

                                                     출처=인터파크(interpark.com)
                                                     출처=인터파크(interpark.com)

낡은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석탄이 타고, 물이 끓는 소리 위로 한 아이의 환상적인 목소리가 쌓인다. “놀이를 시작해,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놀이.” 혜화동의 한 극장, 공장을 상징하던 좁고 어두운 공간은 반짝이는 놀이터로 변하고, 관객들은 제임스와 함께 피터와 웬디의 네버랜드로 초대된다. 우리가 원하는 건 모두 할 수 있고, 되고 싶은 건 모두 될 수 있는 네버랜드. 현실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 공간에서 뮤지컬 ‘후크(2023)’의 막이 올라간다.

산업 혁명이 한창이던 영국 런던. 이곳엔 빚더미뿐인 공장의 공장장인 제임스와 어린 시절 사라진 형 데이빗만을 사랑하는 엄마 마가렛이 있다. 숨 막히는 자기 삶이, 그리고 형의 이름을 대신하는 것이 너무 버겁게 느껴지는 제임스는 어느 날 ‘모두 잊어도’ 된다는 환상적인 목소리를 듣고 아무도 통과할 수 없는 굴뚝을 통과해 네버랜드에 도착한다. 물론 처음에는 여느 어른들처럼 환상 위에 지어진 피터와 웬디의 놀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점점 네버랜드에 적응하며 그들이 원하는 후크가 되어주는 제임스를 보면서 관객들 또한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뛰어놀던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

뮤지컬 ‘후크’는 원작 소설과는 다른 부분이 많은데, 그중 가장 큰 차이는 네버랜드의 주인이 피터 팬이 아닌 웬디 달링이라는 점일 것이다. 네버랜드를 만들고, 사람들을 데려오고,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역할을 부여하는 것. 피터 팬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모두 웬디 달링의 일인 것이다. 심지어 네버랜드의 모든 규칙은 웬디의 손에서 탄생하며, 환상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인 요정가루의 정체 또한 웬디만 알고 있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약 한 시간 동안 보았던 놀이가 모두 웬디의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마지막 장면, 진실이 모두 밝혀지면 관객들은 진짜 악당이 제임스 후크가 아닌 웬디 달링임을 알게 된다.

어쩌면 제임스에게 일생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네버랜드에서 어린 시절처럼 뛰어놀던 순간이었지만, 그래도 환상 속에서 머물기를 택하지는 않는다. 제임스는 “그래도 나아가야 해. 날 위해”라고 외치며, 사실은 자신의 형, 데이빗이었던 피터와 함께 웬디를 무찌르고, 후크가 가장 두려워했던 악어의 입을 통해 현실로 돌아간다. 물론 네버랜드를 다녀왔다고 해서 제임스의 인생은 극적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공장은 빚더미에 허덕일 것이고, 평생을 바라왔던 어머니의 사랑 또한 다시는 받지 못할 것이다. 함께 있었다면 큰 힘이 되어줬을 형도 이젠 없다. 그럼에도 제임스는 나아간다. 네버랜드에서의 추억을 가슴 한켠에 묻어둔 채.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놀이의 특성에 대해 “모든 놀이는 자발적인 행위이며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는 기능”이라고 말하며 “‘일상적인’ 혹은 ‘실제’ 생활에서 벗어난 행위”라고 말한다. “아무도 너에게 강요하지 않아. 그냥 네 맘을 따라봐” “얼룩진 너의 이름, 그만 잊어. 일그러진 너의 인생, 그만 잊어”  후크의 가사 중 이런 내용이 나온다. 거기에 더해진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놀이를 보고 있자면 정말 자발적으로, 일상에서부터 벗어나 있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관객들도 어느 순간 함께 일상에서 벗어나, 네버랜드에 함께 스며든다. 이렇게 현실에서 벗어나 얻은 에너지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실로 다시 돌아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마치 제임스가 그랬듯.

에필로그에선 다시 셋의 놀이가 시작된다. 모래성처럼 위태롭게 쌓였다가 무너진 환상이지만, 제임스의 꿈속에서는 여전히 펼쳐지는 네버랜드. 한 시간 반 동안 함께 네버랜드를 즐겼던 관객들이 극장을 나서도 그들을 기억하는 것처럼, 제임스 또한 피터 팬과 웬디 달링을, 그들과 함께 놀았던 시절을 영원히 추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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