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실(국문·04년졸) 하버드대 한국어 강사
노아실(국문·04년졸) 하버드대 한국어 강사

본교 학부에서 국어국문학을, 대학원에서 한국학(한국어교육)을 전공했다.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태국 씰라빠껀대학교 한국어학과를 거쳐 현재 미국 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언어문명학과 한국어 강사로 일하며 학부생 및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대학 4학년, 프로듀서를 꿈꾸며 ‘언론고시’를 열심히 준비하던 때에 우연히 수강하게 된 <세계화와한국어>라는 교양 수업이 내 인생의 방향을 한순간에 바꿔 버렸다. 지금은 옛말이 된 듯하지만, 당시에는 미래지향적 느낌이 물씬 풍겼던 ‘세계화’라는 단어에 관심이 갔고, 한국어가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게 했다. 대학원에 진학해 관련 지식을 배우고 나서 실제로 한국어 강의를 시작했을 때 초반에는 좀 당황했었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언어가 누군가에게 가르치려고 보니 정확하게 모르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너무 많았다. 단 한 번도 ‘왜?’라는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없이 체득했던 모국어를 한 발짝 물러서서 낯설게 보고 학습자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했다.

이론적 지식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쌓는 경험도 중요한데, 새내기 강사 시절의 부족함은 한국, 태국, 미국에서 강의해 나가면서 조금씩 채워졌다. 교실 안팎에서 만난 다양한 학생들이 또 하나의 선생님인 셈이었다.

한국에서 만났던 학습자들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직접 한국에 오는 만큼 한국과 한국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남다르다. 또한 목표 의식도 뚜렷해서 적극적으로 배우고 성취도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외국에서 짧게는 한두 달, 길게는 몇 년씩 생활하기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언어 장벽뿐만 아니라 낯선 생활 환경에의 적응, 이방인으로서 겪는 부정적인 경험 등이 오히려 한국어 학습을 방해하고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 역시 외국인 노동자 신분으로 살면서 당시 학생들이 느꼈을 어려움과 외로움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태국의 한국어 학습자들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열정적으로 즐기는 편이다. 놀랍게도 태국은 한국어를 배우는 학습자 수가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국가이다. 한국어 전공이 개설된 대학도 많고 고등학교 제2외국어 과목으로 한국어의 인기도 높다. 또한 생활 문화 전반에 한국 문화가 스며들어 있어서 이른바 K-푸드, K-뷰티 등 한국 관련 산업들이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어를 대학에서 전공하거나 개인적으로 공부한 후 한국 관련 일을 하거나 한국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 문화의 파급력이 크지 않았던 미국에서도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영화 ‘기생충’(2019)과 드라마 ‘오징어 게임’(2021)의 흥행, BTS를 필두로 한 케이팝 열풍으로 그 저변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대학에서 한국어 수업 수강생들이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일시적인 현상이 아님은 분명하다. 하지만 개별 콘텐츠나 상품, 특정 인물의 유명세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한국’이 대화의 주제가 되고 한국어가 소통과 교류의 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한국어 강사로서 순탄하게(?) 살아갈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위기가 닥쳤다. 학교가 문을 닫고 모든 수업과 행정이 온라인에서 이뤄지게 되면서 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생이 물리적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대화 환경도 제한적이었다. 외국어를 가르치는 대부분 교강사는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했을 때 외국어 수업이 가장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외국어 수업 수강률이 떨어졌고 강의평가에서는 비대면 방식으로 인해 학습 능률과 흥미가 떨어졌다는 의견이 많았다. 역설적으로 이 시기에 외국어 학습 관련 기술과 콘텐츠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쉽고 재미있게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다양한 앱이 개발되고, 언어 학습과 통번역 관련 AI 기술도 더욱 정교해지고 진화됐다. 이러한 변화와 발전이 기존 외국어 학습 방식의 도태를 초래하고 나 역시 AI 선생님으로 대체되어 일자리를 잃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고 무력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언어를 배우는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히 언어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언어를 활용해 소통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다. 언어를 가르치는 것 역시 소통의 즐거움을 느끼게 도와주고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루는’ 능력을 길러주는 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수업에서 ‘한국어를 한국 사람처럼 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어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 있도록 학생들을 독려한다.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가르친 학생이 한국어 시험에 합격했다거나 한국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며 선생님 덕분이라고 이야기해 줄 때, 누군가의 성취에 내가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기쁘고 고맙다. 그러나 더 뿌듯할 때는 출신 국가나 언어가 다른,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만나 서로 한국어로 대화하고 한국에 대한 경험을 나누는 것을 지켜보는 순간이다. 외국어를 배우고 이해하려는 노력에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문화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깔려 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도 결국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하나의 수단을 만들어 주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이자 지속해 나가는 원동력이다.

노아실 하버드대 한국어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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