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져서 가을인 걸 알았다. 계절의 흐름도 신경 쓰지 못한 채 11월을 마주했다. 작년 겨울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학보에 온 마음을 다하고 있다 보니 어느덧 3학년이 성큼 다가온 걸 눈치채지 못했다. 어느새 코끝에 겨울 냄새가 감도는 지금, 올 한 해를 되짚어 보면 오직 ‘이대학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스물하나의 매 순간을 학보와 함께한 것이다. 

다른 이의 일주일은 ‘월화수목금토일’로 이뤄져 있을 테지만, 우리의 일주일은 ‘일월화수목금토’로 이뤄져 있다. 일요일을 통으로 다 바쳐 어떤 기사가 세상에 나가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월, 화 2일 동안 취재를 진행한다. 수요일 오후부터는 그날 온 새벽을 바쳐 목요일 아침까지 기사를 작성한다. 목요일과 금요일은 다음 주 발행될 신문에 오류나 실수는 없는지 꼼꼼히 살피고, 독자들의 눈이 즐거울 수 있도록 신문 지면을 구상한다. 금요일 오후 8시, 마침내 다음 주 발행될 학보가 완성되면 토요일에는 이대학보 웹사이트에 그 주 발행될 기사를 올리고, 다음 주와 다다음 주에 어떤 기사를 쓸지 고민한다. 그렇게 또다시 일요일을 마주하고 학보사 기자로서의 일주일이 흐른다. 오직 ‘이대학보 취재기자’로 살아가는 나날이다. 

매주 쉴 새 없이 흘렀던 올해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기는 어려웠다. 매 순간이 보람찬 학보 생활을 정신없이 하면서도 ‘무엇인가 이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늘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 공부, 대외활동, 과외, 자격증 준비 등의 활동을 멈출 수 없어서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을 잃게 됐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를 정도로 캘린더를 꽉꽉 채웠다. 그러고는 졸음이 가득한 눈으로 빈틈없는 스케줄표를 보며 뭔지 모를 공허함을 느꼈다.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이 오직 ‘나중의 행복’을 추구하는 행동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언젠가는 내 삶에 도움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많은 일을 벌였다. 나중에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모습으로 살 건지도 정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매일 내게 주어진 과업을 마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기숙사로 돌아올 때면 ‘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가’ 하는 생각에 여념이 없었다. 현재의 행복은 철저히 경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스스로를 정신없이 바쁜 상태로 만든 것도 나, 쉴 새 없는 일정을 어떻게든 꾸역꾸역 소화하고 있는 것도 나, 지금 삶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허탈함을 느끼는 것도 나였다. 

이렇게 ‘살아야 하니까’ 하루를 살고 있던 중, 3부서 기획 ‘시간을 달리는 여자들’을 준비하게 됐다. 이 기획은 10월 30일부터 5주간 연재되는 시리즈인데, 10대부터 70대까지 세대별 여성이 지닌 고민과 변화가 담겼다. 부장기자로서 한 달 동안 이 기획을 이끌며 어떤 여성분들의 목소리로 각 세대를 대변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그분들의 삶이 독자분들께 잘 전달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렇게 기자 11명의 노력과 취재원 7명의 삶이 고스란히 쌓여 ‘시간을 달리는 여자들’이 탄생했다. 

기획을 준비하며 중학생, 고등학생 취재원을 만나게 됐다. 그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자연스레 과거 내 모습을 회상하게 됐다. 그때의 나는 지금처럼 오직 미래만 보고 돌진하는 학생이었다. 모든 이가 그랬겠지만 중학생 땐 멋있는 고등학생이 되기 위해, 고등학생 땐 성숙한 대학생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 난 그때도 어김없이 나중의 행복만을 보고 살아왔던 것이다. 난 그 시절 나에게 “좀 더 그 순간을 즐기면서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학창 시절을 온전히 사랑하고, 그때밖에 입지 못하는 교복도 열심히 좀 입으라고. 

어릴 적 그토록 원하던 ‘대학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 내 일상을 돌이켜보면, 더 이상 나중의 행복만을 추구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사회인이 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내가 지금의 날 본다면 어떤 말을 할까. 감히 예측해보자면 “대학생으로서 그 순간을 즐기면서 살라”는 말을 건네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난 이제 나중의 행복과 더불어 현재의 행복도 추구할 줄 아는 사람이 되려 한다. '학보 그 이상'을 추구하는 이대학보 기자로서 목격하는 세상의 빛을 찾는 일부터, 새파란 하늘과 울긋불긋한 단풍을 보며 자연의 숭고함을 느끼는 일까지. 일상 속 무심결에 지나쳤던 순간에서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 되려 한다. 

학보사 기자로서 현재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몇 개월 전 일이 떠올랐다. 올해 5월, 장애인 교원이 겪는 현실에 대한 기사를 쓴 적 있다. 그때 취재원으로 뵀던 선생님께서 “기사에 개인 경험부터 제도에 대한 지적까지 균형 있게 들어갔다”며 “해당 문제에 관심 두고 취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이 말씀이 당시 기자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던 나에게 두고두고 힘이 됐다. 무심코 넘어갈 수 있는 일상의 대화 속에서 추억할수록 힘이 되는 행복을 찾는 자세, 이것이 바로 현재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자로, 또 학생으로 살아가는 행복한 순간들이 모여 행복한 삶이 되길.

요즘 내 하루는 소중한 행복으로 가득하다. 어쩌면 꽤 오래전부터 그랬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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