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처음 탈 때 가장 어려운 건 중심 잡기다.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져 버리기 쉽다. 대학에 합격하고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자전거를 처음 탔던 날이 떠올랐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는데 아빠가 걱정하지 말고 앞만 보라며 자전거 안장을 잡아줬다. 아빠의 말을 믿고 힘차게 발을 굴렀다. 어느샌가 아빠는 없고 나 혼자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배웠다. 학교 기숙사에 입사하던 날은 아빠가 몰래 안장을 놓았던 순간처럼 준비되지 않은 채로 훌쩍 떠나버린 느낌이었다.홀로서기를 시작한 뒤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지지 않
언젠가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들이 언젠가 나를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 언제가 당장 지금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막연한 생각들. 내 옆에 당연하게 존재하는 누군가가 한순간에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인간의 생이란 참 기묘해서 그렇게 쉽게 끊기지 않는 것 같다가도 이렇게 허망하나 싶을 정도로 한순간에 끝이 난다.어느 날은 문득 버스를 타고 나를 만나러 오는 친구가 혹여나 오는 길에 사고가 나진 않을까 두려웠다. 불안한 마음에 약속 시간이 많이
“여러분의 새 학기는 안녕하신가요?”어느새 새 학기가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믿을 수 없이 빨리 지나갔다. 이번 한 달 동안 공강 없이 매일 학교에 갔고 2년 동안 했던 과외 수업을 그만두고 제과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으며 학보의 디지털 콘텐츠 마케팅부 부장으로 본격적으로 일했다. 되돌아보면 새로 시작한 일들이 이리도 많다는 것이 놀랍다. 공강 없는 대면 학기에 적응하기도 아직 벅찬데, 아르바이트에 활동까지 새롭게 적응하려니 생각보다 힘든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난생처음 대상포진에 걸려서 일주일간 고생했고
지난 2학기 종강 날, 책상 위에 있던 빈 몬스터 캔 10개를 치웠다. 종강 전 마지막 5일 동안의 총 수면시간은 4시간이었다. 이쯤 되면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들 생각 첫 번째, ‘왜?’ 안타깝지만 몬스터 10캔을 마신 장본인도 그 이유를 모른다. 두 번째, ‘미련하다’ 동의한다. 다시 세 번째, ‘근데 진짜 왜?’ 왜 그렇게 살았을까? 작년 말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떠올려보면 응급실에 실려 가지 않고 지금 멀쩡히 ‘그땐 그랬지’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주변에서는 나더러 ‘
2월25일, 도쿄에 도착했다. 회사 방향으로는 잠도 안 자는 인턴의 끝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하루 8시간씩 꼼짝없이 앉아있던 엉덩이가 기어코 자유를 요구했다. 새해는 밝았고, 엔데믹이 시작됐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대 여행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개강을 뒤로하고 5박 6일 자체 휴가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유난히 추운 1월이었다. 처음 다녀보는 회사의 시계는 느렸고 밤이 긴 계절인데도 퇴근만 하면 시간이 빠르게 달렸다. 인턴사원에게 주어지는 애매한 소속감은 불안과 불만에 기름을 부었다. 늘 같은 책상, 같은 의자,
여자들과 함께하는 것이 익숙하다. 매일 수많은 언니와 친구와 동생들을 본다. 여대에 다니고 있으니 당연하다. 몸담고 있는 학보사도 마찬가지다. 여대 신문사니 만드는 사람도 모두 여자다. 매주 정성을 쏟아 기사를 쓰고 월요일에 나온 지면을 펼쳐보면 보람차다.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다. 우리가 만드는 신문에는 수많은 여성의 얼굴이 있다. 그러다 보니 다들 세상의 반이 여자라는데, 내 세상은 대부분이 여자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알고 있지만 가끔은 너무 익숙해서 잊기도 한다.그런 학보사의 기자로 일하면
호크마대에서 사회학과로 진입한 후, 첫 전공 수업으로 고전사회학이론을 수강했다. 고전이라 불리는 마르크스, 베버, 뒤르켐의 이론을 원문으로 읽으며 관련된 생각을 나누는 수업이었다. 사회학의 기초가 되는 수업이고, 유명한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호기롭게 신청했다. 다만, 영어강의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들뜬 마음을 가지고 수강한 첫 번째 전공 수업에서 영어의 벽을 맞닥뜨렸다. 하고 싶은 말은 잔뜩이었다. 그러나 한국어로도 읽기 어려운 저서를 영어로 읽고, 해석이 잘 되지도 않는 내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영어강
열한 살,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시절. 새로운 가족을 처음 만났다. 갈색 파마머리를 가진 작은 푸들. 이름은 초리. 그 아이는 자연스레 유‘리’의 동생 초‘리’가 됐다. 언제나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던, 아침마다 방문을 긁으며 찾아오던, 늘 내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던 아이.우리는 함께였지만,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흘러갔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대학생이 됐지만, 아기 강아지였던 초리는 노견이 됐다. 살이 찌기 시작했고, 아픈 곳이 늘어났다. 어느 날은 문득 초리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섭고
대학생은 과도기적 단계이다. 입학했던 당시를 돌이켜 보면,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또는 또 같이 별생각 없이 이대에 들어왔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걸 억지로 시키면 차라리 죽고 싶은 사람인데, 그런 나는 고등학교에 다니며 입시를 할 당시 미래에 대한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부터 뚜렷한 미래의 스케치를 가진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나는 정말 고등학교 이후에 대한 기대가 아무 것도 없었다.입학한 후에도 큰 자유가 찾아온다거나 특별한 해방감, 소속감과 안정감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첫 1년은 코로나가 심각해 배달 음식을 주
매년 이맘때쯤이면 공기 냄새가 바뀐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어느 순간 갑자기 훅 찬 바람이 파고들며 풍겨오는 쌉싸름한 비릿한 냄새. 나는 이걸 ‘수능 냄새’라 부른다. 수능이 끝난 지 3년이 지났지만, 매년 찾아오는 이 계절의 수능 냄새는 잊을 수 없다. 시간은 언제나처럼 무심하게 지나가고, 나는 예전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에도 말이다.과거의 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찾아볼 거라나. 경계의 그늘진 구석을 외면하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비틀린 사회의 균형점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학창 시절의 수많을 밤을 지새웠던
이대학보 신입기자로 들어온지 약 11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두 번의 마감만이 남았다. 퇴임을 목전에 둔 나에게 올해 무얼 했냐 물어본다면 단연코 나는 학보로 시작해서 학보로 끝났던 한 해였다고 답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한 해 동안 명함 내밀 만한 활동으로 학보 하나 했다고 한다면 단순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내 주변만 해도 성적 챙기기 바쁜데 저마다 다채로운 활동으로 시간을 지혜롭게 보내는 동기들로 가득하니 말이다.그렇다고 학생과 취재기자라는 두 신분을 오가며 학교생활을 보내는 동안 내게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고는 결코 말하기 어렵겠
“행복과 고통이 비례하는 세상, 행복도 고통도 없는 세상. 너는 어디서 살래?”어느 날 친구가 물었다. 나는 일말의 여지 없이 후자를 택했다. 행복은 짧지만, 고통은 길고 또 깊다. 어떤 고통은 마음에 옅어지지 않는 상흔을 남기며 내일로 넘어갈 힘조차 앗아간다. 차라리 나는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싶었다. 불안을 피할 수만 있다면 행복을 팔고 싶었다.하지만 행복도 고통도 없는 세상이란 불가능했다. 산뜻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 쾌청한 하늘, 따스하게 물든 단풍에도 나는 행복했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 가난이 빼앗은 존
'좋아하는 것이 삶을 지탱한다.' 내 주변에는 이 말을 실감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영화를 밥보다 자주 찾는 친구, 책을 달에 열 권은 읽는 친구, 좋아하는 마음이 밥 먹여준다는 친구.나도 그 중 하나다. 나는 좋아하는 게 정말 많다. 쉴 때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냐는 질문을 받으면 고민할 시간이 필요할 정도로. 취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 중 무엇을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서다.연극과 뮤지컬을 좋아하고, 밤에는 영화관을 자주 찾으며, 종종 드라마를 보느라 밤을 꼴딱 샌다. 집에서는 요가를 하고, 여름에는
길을 건널 때는 손을 들고, 토요일 아침에는 항상 같은 번호로 로또를 산다.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만나면 줄줄 외울 때까지 보고 매일 밤 애니메이션을 자장가 삼아 잔다. 배달음식이 소울푸드고 외출보다는 역시 침대가 좋다. 이런 나의 멋진 일상을 우리 가족은 B급 인생이라 부른다.B급의 사전적 정의는 딱 자기 앞가림은 해도 자랑하기는 힘든 보통 수준의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딱 내 인생을 표현하는 단어가 아닐까. 그럭저럭 굴러가고 별 하자도 없지만, 타인의 시선에선 어딘가 한심한. 그렇지만, 그들의 평가와는 별개로 이런 일상이
새 학기 대면을 맞아 사람들을 만나면 으레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인스타 아이디 교환할까요?", "인스타 아이디 쌓읍시다!" 인스타그램은 언젠가부터 명함의 역할을 대신하고, 대학생이 되고는 주변의 한 명쯤은 꼭 사진 찍기를 취미로 가지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 마케터로 일하면서도 인스타그램, 트위터 빠지지 않고 업로드하는 콘텐츠는 모두 글보단 이미지가 중심이라 사진은 언제나 필요의 대상이다.SNS의 사용자 수 등락을 보면 10년대 말부터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서서히 트렌드가 이동한다. 인터넷의 시대에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소셜
디즈니 스튜디오가 실사 영화 ‘인어공주’의 예고편을 공개했다. 흑인 배우 ‘핼리 베일리(Halle Bailey)’가 주인공 역을 맡았다. 15초가량 영상에 짧게 등장한 흑인 인어공주는 일명 레게 머리로 불리는 땋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 원작과는 다른 인어공주 모습에 일부 디즈니 팬덤은 반발했고 캐스팅 논란으로 번졌다. #NotmyAriel(나의 애리얼은 이렇지 않아)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베일리’를 반대한 이들은 레게머리 흑인공주는 디즈니 인어공주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진저(붉은 머리를 가
공교롭게도, 머피의 법칙이 성립할 때가 꼭 있다. 등교할 때 종종 나는 이 법칙을 체감하곤 한다. 내 앞에서 건널목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고, 버스가 떠나가고, 강의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일쑤. 성미가 워낙 급한 사람이기에, 우연으로 연달아 발생한 시간적 지연을 허용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이런 불운의 징크스가 생길 때면 나는 항상 친구들에게 ‘눈앞에서 무언가를 놓치는 병’이 있다며 자조적인 농담을 늘어놓는다.약 5개월 전, 꽃향기가 코끝을 찌르는 완연한 봄이었을 때다. 내 불평이 무색해질 만한 일이 찾아왔다.
“밀린 월세는 어떻게 할거야? 이것도 보증금 300만원에서 까? 알겠어. 뒤에 다른 사람 들어와야 하니까 이것들 싹 치워줘.” 산 언덕에 위치한 1층짜리 다세대 주택, 5평 내외의 공간으로 구획된 건물에는 여덟 가구가 살고 있다. 지친 목소리의 주인공은 집주인 아저씨였다. 명령문에 답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우리 집은 보증금 500만원 받았는데.’ 우습게도 집주인 아저씨의 목소리를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올해 1월 서울에서 첫 자취를 시작하며 학교 근처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제시할 수 있는 금액은 보증금 500에 월세
바람이 제법 선선하다. 코가 건조하다 했더니 드디어 가을이 오나 보다. 이 지독한 여름도 지나간다. 이번 여름에는 장마도 끝이구나 싶을 때마다 다시 비가 내렸다. 그렇게 한 달 넘게 비가 끊이지 않을 동안 한강 공원도 여러 번 물에 잠겼었다.어릴 때, 장마철에 비가 많이 와 한강이 범람했던 적이 있다. 할머니와 함께 물에 잠긴 한강 공원 입구를 보러 갔었다. 입구에는 출입 통제 테이프가 붙어있었고, 공원으로 내려가는 경사로가 물에 반쯤 잠겨있었다. 신고 있던 노란 장화 옆에서 한강 물과 빗물이 섞여 찰랑거리는 게 무서웠다. 그땐 그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유명한 이 문장을 나는 대학에 들어와서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수업 시간표 짜기부터 각종 동아리, 대외 활동 지원, 복수 전공 선택까지. 혼자서 결정해야 할 사안이 너무도 많다. 학기 시간표를 짤 때면 나는 한 과목에 대해 수업 시간, 과제 유무, 시험 일정, 수강신청 경쟁률, 전체적인 밸런스 등 최소 네다섯 가지 고려사항을 검토한다. 그러다 시간표 짜기에 지쳐 막판에 결국 선택하는 것은 ‘무난한 경쟁률과 무난한 수업 일정’을 갖춘 과목이다. 오히려 이런 것보다 중요한, 수업의 내용은 뒷전이 되고 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