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시절. 새로운 가족을 처음 만났다. 갈색 파마머리를 가진 작은 푸들. 이름은 초리. 그 아이는 자연스레 유‘리’의 동생 초‘리’가 됐다. 언제나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던, 아침마다 방문을 긁으며 찾아오던, 늘 내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던 아이.

우리는 함께였지만,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흘러갔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대학생이 됐지만, 아기 강아지였던 초리는 노견이 됐다. 살이 찌기 시작했고, 아픈 곳이 늘어났다. 어느 날은 문득 초리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섭고 두려웠다. 의식적으로 초리와 더 많이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갑자기 찾아온 걱정은 곧 현실이 됐다. 초리와 시간을 보내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날.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아마 평생토록 잊지 못할 그날은 초리와 보낼 수 있던 마지막 날이었다. 그깟 일정이 뭐라고,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외면했는지. 수도 없이 자책했다.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다면 어땠을까 소용없는 만약을 찾기도 했다. 못 해준 게 많아서, 같이 시간을 많이 못 보내서, 살찐다고 주지 않았던 간식들,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했던 시간들… 후회되는 것들만 가득했다.

집에 가는 게 싫어졌다. 눈물이 날 것 같아 억지로라도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밥을 먹다가, 누워서 쉬다가 예측할 수도 없는 순간에 하루에 수십 번도 더 울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믿기지 않던 현실이 서서히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가족들은 초리를 강아지별로 보낸 뒤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길을 가면 산책하는 강아지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끊임없이 올라오는 유기견 홍보 글에 마음 졸였다. 때마침 들려온 지인의 강아지의 출산 소식. 어쩌면 당연하게도 우리는 다시 새로운 가족을 맞이했다. 하얀 파마머리를 가진 작은 비숑. 오래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떤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 봉구가 됐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매일 산책을 나가고,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가려 애쓰고, 잠깐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려 했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지키기 힘든 약속들을 하루하루 지켜나갔다.

하지만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개강해서 피곤하다는 이유로, 시험 기간이라 바쁘다는 이유로… 그럴듯한 핑계를 앞세워 예전의 나로 돌아갔다. 산책을 나가지 못한 날이 많아지고 집을 비우는 시간이 늘어났다. 하루는 괜찮겠지, 잠깐은 괜찮겠지 안일한 마음으로 넘어간 시간들이 쌓여갔다.

수업을 듣고, 열람실에서 공부하고, 기사를 위해 인터뷰도 했던 유난히 힘들었던 어느 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왔을 때, 나를 따라온 봉구를 보며 눈물을 쏟았다. 시험 스트레스, 몰아치는 할 일… 나를 괴롭히던 것들이 셀 수 없었지만, 그중 제일은 애쓰고 싶지 않은 일들로 힘이 빠져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정성을 쏟지 못하는 것이었다.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에 보게 된 영상에는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사는 분이 나왔다. “얘네는 내가 전부인데, 나한테는 얘네가 전부가 아니잖아요. 만약에 제가 하루를 버리면 내 선택으로 버리는 거지만, 얘네는 내 선택으로 하루를 버리는 건데. 내 하루가 얘네한테는 일주일이잖아요. 수명이 짧으니까. 내 선택으로 얘네의 일주일이 버려지는 거니까. 항상 미안해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던 의지는 사라지고 어느샌가 예전의 어리석은 나만이 남았다. 미안함과 부끄러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 내 욕심으로 소중한 시간을 놓쳤다는 사실에 괴로웠다. 온전히 봉구에게만 마음을 쏟을 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봉구와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지극히 현실적인 나도 헤어짐 앞에선 영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원을 빌게 된다. 아직은 먼 이야기겠지만 또다시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후회와 미안함으로, 이별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내기엔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다. 그 시간에 더 깊이, 더 많이 사랑하고자 한다. 좋아하는 간식도 많이 주고, 산책도 꼬박꼬박 다니면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옆에 딱 붙어 잠이 든 사랑스러운 아이를 위해.

봉구야, 내가 너의 세상의 전부라면 내 세상의 전부도 너였으면 좋겠어.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