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제법 선선하다. 코가 건조하다 했더니 드디어 가을이 오나 보다. 이 지독한 여름도 지나간다. 이번 여름에는 장마도 끝이구나 싶을 때마다 다시 비가 내렸다. 그렇게 한 달 넘게 비가 끊이지 않을 동안 한강 공원도 여러 번 물에 잠겼었다.

어릴 때, 장마철에 비가 많이 와 한강이 범람했던 적이 있다. 할머니와 함께 물에 잠긴 한강 공원 입구를 보러 갔었다. 입구에는 출입 통제 테이프가 붙어있었고, 공원으로 내려가는 경사로가 물에 반쯤 잠겨있었다. 신고 있던 노란 장화 옆에서 한강 물과 빗물이 섞여 찰랑거리는 게 무서웠다. 그땐 그게 참 별일이었다. 고작 15년 정도 흘렀을 뿐인데 언젠가부터 여름 중 며칠은 한강 공원이 잠겨있는 게 당연해졌다. 이번 여름이 그랬듯 지난 여름과 지지난 여름에도 노들섬은 물에 잠겼고, 강변북로에는 차가 다닐 수 없었다. 물이 다 빠진 후에도 공원 곳곳이 엉망이라 산책하다 여러 번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딱 그 정도 불편이었다. 산책로 옆에 죽어있는 물고기를 보고 놀라고, 도로가 통제되니 차가 좀 막히는 정도였다. 그러다 이번 여름에는 강남역 일대가 물에 잠기고, 비 때문에 사람이 여럿 죽었다. 이건 ‘불편함’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재난이었다. 

서울에 비가 그렇게 내리는가 하면, 어디는 비가 오지 않아 문제이기도 했다. 이번 여름에는 소양강이 바닥을 보였다. 면허를 딴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빠를 옆에 태우고 소양강까지 운전해 갔던 기억이 났다. 그 깊은 물이 다 말랐다니, 믿을 수 없었지만 내 믿음과 상관 없이 소양강 주변 바닥은 가뭄으로 바싹 말라 조각나 있었다. 

소양강 주변 사진을 보자마자 떠오른 건 우습게도 드라마의 한 장면이었다. 지난 겨울에 우연히 <고요의 바다>라는 시리즈를 봤다. 가뭄이 심각해져 깨끗한 물은 거의 구할 수 없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였는데, 화면에 나오는 지구의 모습이 너무 낯설고 섬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적이었다. 1화를 튼 지 5분도 안 돼 “연 평균 강수량이 또 다시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라는 앵커의 멘트와 함께 지구 곳곳의 마른 땅, 그전에는 강이었을 곳이 화면에 꽉 찼다. 세상에 초록색이라곤 없었고, 말 그대로 황량했다. 그런데 그 세상이 정말 남의 것 같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머지않아 내가 밟고 있는 세상도 그런 모습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본 쩍쩍 갈라진 소양강 주변 바닥의 모습은 드라마에서 본 것과 꼭 닮아 있었다. 

많은 기후학자들이 2050년 이전에 지구가 멸망할 거라고 예측한다. 우리는 지구에서 할머니가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이 문장을 쓰면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나이가 들면 노인이 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얼마 전에야 알았다. 나는 노년기를 경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미래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니, 절망적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사람들은 자기와 상관 없는 일인 양 군다. 여전히 일회용품을 펑펑 쓰고, 에어컨을 추울 정도로 틀고, 거의 매 식탁에 고기를 올린다. 이렇게 살다 보면 당장 내년, 내후년은 생각보다 더 고통스러울 텐데 말이다. 정말 얼마 안 있어 <고요의 바다>에서 보여준 풀도 나무도 물도 없는 갈색빛 지구가 현실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런 세상에서 정말 살 수 있나?

멸망은 한 순간에 난데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모르는 순간에도 우리는 서서히 멸망에 가까워지고 있다. 멸망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끔찍할지, 얼마나 뜨겁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을지 알 수 없다. 올해 일어났던 재난들은 한층 사나운 모습으로 내년 우리를 다시 찾아와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 사람들은 인류의 끝을 지구의 멸망이라고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멸망하는 건 지구가 아니라 인류다. 지구는 인류 없이도 지속되고, 위기는 인간의 것이다. 

우리는 지금 멸망 아주 가까이에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앞으로 살아갈 지구는 그리 쾌적한 환경이 아닐 것이다. 살던 대로 살다 여기까지 왔고, 변하지 않는다면 답은 뻔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 고기를 덜 먹고, 물건을 덜 사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나무를 심어야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들었던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뻔한 실천이 너무나 절실하다. 놀랍게도 이 모든 건 지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나를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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