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5일, 도쿄에 도착했다. 회사 방향으로는 잠도 안 자는 인턴의 끝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하루 8시간씩 꼼짝없이 앉아있던 엉덩이가 기어코 자유를 요구했다. 새해는 밝았고, 엔데믹이 시작됐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대 여행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개강을 뒤로하고 5박 6일 자체 휴가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유난히 추운 1월이었다. 처음 다녀보는 회사의 시계는 느렸고 밤이 긴 계절인데도 퇴근만 하면 시간이 빠르게 달렸다. 인턴사원에게 주어지는 애매한 소속감은 불안과 불만에 기름을 부었다. 늘 같은 책상, 같은 의자, 같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상에서 노력하지 않아도 느는 것이 있다면 관찰력이다. 저녁 배달 메뉴를 고민하는 과장님, 블로그를 돌며 휴가 계획을 짜는 주임님. 제3의 벽을 뚫은 한 명의 NPC가 된 듯했다. 멀티버스 세계관도 아닌데, 같은 시공간이 이렇게나 혼란스러울 수 있다니 경이로울 지경이다. 3월이 오기 전, 떠나고 싶었다.

타고난 의존형에 무경험인 데다 78% P를 자랑하는 인간이 5박 6일 도쿄 배낭여행 초행길에 오를 때, 길을 잃을 확률은 양의 무한대로 발산한다. 이제껏 무계획이 계획이라 믿어왔지만, 본능적으로 국제미아라는 공포가 현실 가능한 위협임을 직감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계획은 필수였다. 이왕 가는 여행에서 1달 치 월급에 맞먹는 기회비용을 털어 평범한 청춘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얻고 싶었다. 모험, 쾌락, 쇼핑, 자유, 인연, 인스타, 영감. 그물 하나로 만선을 꿈꾸며 DNA에 박힌 생존 의지와 함께 회사에서 몰래 열심히 정보를 검색한 결과, 인터넷의 바다에서 많은 정보를 낚을 수 있었다. 불꽃놀이가 멋있다는 디즈니랜드 티켓을 사고 도쿄에서만 열리는 에곤 실레 특별전도 예매했다. 지인들의 오지랖과 맛집 검열까지 더해지고 나서야 이상적 계획표를 도출할 수 있었다.

홀로 도착한 도쿄는 이른 봄이었다. 아직은 단단한 벚꽃 몽우리가 살랑거리는 날씨와 고요한 거리의 소음 탓에 다리가 풀려 길바닥에라도 주저앉고 싶었다. 탯줄이 끊어지고 자가 호흡을 시작한 날로부터 24년이 흘러 처음으로 혼자 이국땅을 밟았다. 아니나 다를까, 천성적 게으름과 변덕스러운 하늘의 방해 공작에 이상적 계획표는 휴지조각이 됐다. 첫날 디즈니랜드에서는 비가 쏟아져 불꽃놀이가 취소됐고, 에곤 실레 특별전은 날짜를 착각해서 가보니 휴관일이었다. 화가 나야 맞는 건데 어느 순간부터 은근히 즐기고 있는 내가 보였다. 지나치는 거리의 풍경, 드문드문 들리는 대화의 내용, 스치는 사람들의 얼굴. 모든 게 서울과 닮은 듯 묘하게 낯선 도쿄에서 이제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니, 제법 마음에 들었다.

불꽃놀이는 못 봤어도 비를 피해 들어간 상점에서 최고로 앙증맞은 열쇠고리를 샀다. 에곤 실레의 자화상을 놓친 덕에 우에노 호수에서 오리배를 구르며 석양을 감상했다. 사소한 불행들이 우연을 가장해 운명적 행복을 이끌었다. 지유가오카의 언덕에 올라서야 이 여행을 마주 볼 수 있었다. 내 방 옷장보다 작은 숙소에, 별반 다를 거 없는 음식. 사라지지 않는 고민과 사사로운 감정들, 도쿄에 왔대도 서울의 일상에서 변하지 않은 것투성이. 여행의 일시적 달콤함에 이성이 마비된 걸까. 파쇄된 계획들이, 부서진 목적들이 아름답게 보였다.

사랑하고 싶었다. 우주의 모든 신이 온갖 행운을 떠밀어주고 코끼리가 뛰어다녀도 끄떡없는 탄탄대로쯤은 있어야 행복한 거라고 믿었다. 기대하는 행복의 허들이 너무 높아서 자꾸 비열한 마음이 삐쭉댔다. 어차피 불완전할 행복이라면 누군가의 작은 불행에 더 눈길이 갔다. 조그마한 변화에도 녹아버리는 솜사탕 같은 우월감. 같잖은 상상과 현실은 셀카와 남이 찍어준 사진의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그 괴리가 마음을 갉아먹었다. 달콤한 초콜릿이 칫솔도 모르게 잇몸 뿌리에 깊게 남아 이를 썩히듯. 첫 여행에서 세상 모든 즐거움을 얻길 바라는 욕심과 행복에 관한 비현실적 기대에 또 속절없이 애가 탔다. 몇 주를 공들인 계획표가 고작 내리는 비 한 방울에 무너지니 되려 알 수 없는 생기가 돌았다. 이상적 계획과 행복의 굴레에서 해방되니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찾아 헤매는 행복은 그리 완전하지 않고 불행과 척을 져야 하는 것도 아니며 마음먹은 대로 나타나지도 않는다. 시부야 한복판에서도, 서대문구 골목에서도 피어날 수 있는 거였다.

24년을 받쳐준 수많은 행복이 기본 옵션인 줄 알았다. 어쩌면, 당연한 권리라고 착각했다. 타인의 불행에는 불만하지 않은 주제에 자신의 행복은 뭐가 그리 두렵다고 불안했는지 모르겠다. 더는 이상적 행복을 바라보며 불행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그저 행복이 어디에서나 지고 필 수 있음을 안다. 도쿄이던, 서울이던. 여행의 완성은 분명 행복의 불확실성에 있었다.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행복으로부터 자유롭다면, 기꺼이 불행도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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