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유명한 이 문장을 나는 대학에 들어와서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수업 시간표 짜기부터 각종 동아리, 대외 활동 지원, 복수 전공 선택까지. 혼자서 결정해야 할 사안이 너무도 많다. 학기 시간표를 짤 때면 나는 한 과목에 대해 수업 시간, 과제 유무, 시험 일정, 수강신청 경쟁률, 전체적인 밸런스 등 최소 네다섯 가지 고려사항을 검토한다. 그러다 시간표 짜기에 지쳐 막판에 결국 선택하는 것은 ‘무난한 경쟁률과 무난한 수업 일정’을 갖춘 과목이다. 오히려 이런 것보다 중요한, 수업의 내용은 뒷전이 되고 마는 것이다. 중고등학생 때 꿈꿨던 대학 생활은 이런 형태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대학에 입학해 얻게 된 능력은 고작 이렇게 ‘재어 보고 무난한 것 선택하기’ 따위가 돼버렸다.

‘재다’. 이 글에서 말하는 ‘재다’는 국어사전 상 ‘여러모로 따져 보고 헤아리다’라는 두 번째 의미다. 이 단어를 좋게 포장하면 신중하게 판단한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MBTI 성격 유형 검사를 하면 무조건 ‘신중형(-T)’이 나오는 나에게 ‘잰다는 것’은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행위다. 그렇지만 정도가 지나친 이 행위는 우리에게 우유부단한 사람이라는 악명을 부여하기도 하고, 우리 행동을 쉽게 막아서기도 한다. 잰다는 행위는 그 이면에 모든 것을 꼼꼼히 살펴보고 최선의 선택을 해 잘못되지 않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 이 의도는 우리를 안정이라는 고착 상태에 빠지게 한다.

한 번의 실수로 뒤처질 수 있다는 생각에 나와 같은 신중형 사람들은 함부로 시간을 낭비하려고 들지 않는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정하지도 못했는데 그저 남들의 커리큘럼에 끌려다닌다. 휴학, 교환학생, 심지어는 진로에 대해서조차 얼굴 모르는 온라인 세상 속 사람들에게 물어보기 일쑤다. 취업부터 공무원 시험까지 우리 사회에서 ‘나름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 우리를 더 신중하게 만든 것일까? 도전보다는 머물러 있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저 일반적인 경로를 택하려 한다.

그런데 이렇게 남들 따라가는 ‘일반적인’ 인생, 이대로 괜찮을지 문득 의문이 든다. 사실 일반적인 인생이 무엇인지조차 확신이 들지 않는 신중형 인간이지만, 나와 다른 ‘자기확신형(-A)’ 사람을 보면 그건 또 그것대로 조바심이 난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그들을 통해 동기부여를 받는다거나 목표 의식을 갖게 된다거나 하지는 않고 그저 부러워하는 것에 멈춘다. 왜 그들처럼 하지 않는지? 신중형 사람들은 한 가지 일을 하려고 할 때 열 가지 측면을 고려하느라 진을 다 빼기 때문이다. 물론 신중하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 신중형 인간 전체가 이렇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를 포함해 지나치게 신중한, 쓸데없는 걱정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사람들이 선택의 기로에서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

양자택일의 상황에서는 선택하는 자신에 대한 믿음, 자기 확신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확신을 가지고서 선택하는 일은 어렵다. 이는 신중형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그렇다. 무슨 일이든 우리 사회에서 선택의 상황은 결코 피할 수 없고, 선택에는 책임과 영향이 따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심사숙고라는 걸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책임과 영향이 두려워 선택을 미루는 것은 자신을 겁쟁이로 몰고, 귀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행위라는 점도 자각해야 한다.

다른 이유에서 선택을 미루는 사람도 있다. 최선, 최상의 결과를 내고 싶어 선택을 보류하는 것이다. 사실 보통의 신중형 사람들은 이런 이유에서 보류를 택하는 일이 많다. 그리고 이러다가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거나 용기를 잃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우리는 꼭 최선의 결과를 내야만 하는 걸까? 최선의 결과가 아니라고 해서 행위의 의의가 없어지진 않는다. 선택을 보류한다고 해서 반드시 최선의 결과가 나온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어떠한 결과를 낸다는 것보다도 그저 ‘해본다’는 것에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시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하다.

나는 내가 용감해졌으면 좋겠다. 우리에게는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바로 뛰어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이 글을 보는 다수는) 뭐든 할 수 있으면서 아직 사회에 발을 들이지 않은, 애매한 포지션의 ‘대학생’이다. 행여 실수하더라도 범법만 아니라면 그다지 큰 영향이 되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인생에서 그를 바로잡을 시간도 충분하다. 좌우 앞뒤 다 재보고서 행동하는 습관은 일단 버려보자. 뭐든 실수할 수 있다. 그러니 일단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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