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스튜디오가 실사 영화 인어공주의 예고편을 공개했다. 흑인 배우 핼리 베일리(Halle Bailey)’가 주인공 역을 맡았다. 15초가량 영상에 짧게 등장한 흑인 인어공주는 일명 레게 머리로 불리는 땋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 원작과는 다른 인어공주 모습에 일부 디즈니 팬덤은 반발했고 캐스팅 논란으로 번졌다. #NotmyAriel(나의 애리얼은 이렇지 않아)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베일리를 반대한 이들은 레게머리 흑인공주는 디즈니 인어공주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진저(붉은 머리를 가진 백인)를 흑인으로 바꾼 것을 블랙워싱이라며 비난한다. ‘베일리의 외모가 마음에 안 든다고 욕하는 이도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모두 자신의 주장이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인어공주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피부색이 아니다. 빼앗고 싶은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목소리. 이것이 바로 인어공주가 지닐 유일한 조건이다. 불거진 캐스팅 논란에 디즈니도 원작이 덴마크 동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덴마크 사람이 흑인일 수 있으니, 덴마크 인어도 흑인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인어공주 이야기는 인종이 바뀌어도 되는 서사다.

흑인공주를 향해 쏟아지는 부정적 반응은 인종차별주의자낙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리에서 비롯한다. 일종의 방어기제인 셈이다. 평등 교육을 받고 자란 이들은 모두 차별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베일리를 향한 차별을 자꾸만 정당화하는 것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선, 기존 질서가 어떻게 구성됐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견고하게 구조화된 불평등은 차별을 차별이 아닌 것처럼 만든다. 사실상 차별은 이미 전제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성으로 마땅히 해야 하는 역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 번듯한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것 등 우리는 자라오면서 많은 차별 속에서 정체성을 확립했다. 차별을 내재화한 것이다.

균열이 발생하기 전까지 특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블랙워싱부터 남성 역차별논리도 이에 기반한다. 특권을 가진 자들이 편안한 환경에 놓였다는 게 아니다. 상대 집단과 비교했을 때, 자연적으로 유리한 질서가 이들 주위로 확립됐다는 것이다. 세상은 오랫동안 기울어진 채로 설계됐다. 출발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과정으로 흘러왔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일부 팬들의 아쉬움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적부터 상상해 온 애리얼이 그대로 실현된 모습을 기대했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즈니가 이번 고전 애니메이션을 재해석한 방식은 중요하다. 인종, 성별 등의 다양성을 중요한 기치로 내세운 시도는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꼭 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인어공주 티저가 공개되고, 흑인 아이들의 반응은 일부 팬덤들과 사뭇 달랐다. 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백인 공주만 봐왔던 아이들은 환호하며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이들은 “She’s black. mom she’s black(흑인이야, 엄마 그녀가 흑인이에요)”, “That is ariel(저게 애리얼이라니)”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흑인 인어공주 등장은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미래세대가 불평등에서 벗어난 세상을 꿈꾸게 하는 데 도움 될 것이 명백하다.

디즈니 고전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연령을 아우른다. 아이들은 디즈니 공주를 우상으로 여기며 성장하고, 어린 시절 디즈니를 접한 성인들은 추억에 잠겨 영화를 본다. 아이들에게는 기존 차별적 구조에서 벗어난 새로운 상상의 영역을, 성인들에게는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경험의 재현을 선사한다.

본 프로그램에는 특정 인물이나 문화에 대한 부정적 묘사 또는 부적절한 대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그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옳지 않습니다.’

디즈니가 인종차별 묘사를 포함한 고전 작품에 경고문구를 붙였다. 이 문구를 10초 이상 보지 않으면 애니메이션은 시작하지 않는다. 이런 강제적인 경고문구를 붙인 건 디즈니 세계관 속 인종차별, 성별 고정관념 등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먼 훗날, 인어공주를 떠올렸을 때 누군가는 백인 인어가 아니라, 흑인 레게머리 인어를 떠올릴 수도 있다. 새로운 모습의 인어공주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원작 애니메이션이 상영되고, 33년이 지났다. 흑인 인어공주의 등장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닌, 사회 흐름에 따른 긍정적 변화이다.

만약 이번 인어공주 배우를 보고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면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했던 내재화한 차별은 없는지 돌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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