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과 함께하는 것이 익숙하다. 매일 수많은 언니와 친구와 동생들을 본다. 여대에 다니고 있으니 당연하다. 몸담고 있는 학보사도 마찬가지다. 여대 신문사니 만드는 사람도 모두 여자다. 매주 정성을 쏟아 기사를 쓰고 월요일에 나온 지면을 펼쳐보면 보람차다.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다. 우리가 만드는 신문에는 수많은 여성의 얼굴이 있다. 그러다 보니 다들 세상의 반이 여자라는데, 내 세상은 대부분이 여자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알고 있지만 가끔은 너무 익숙해서 잊기도 한다.

그런 학보사의 기자로 일하면서 반년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인터뷰이들도 대부분 여성이었다. 학내 취재원인 학생은 당연히 여성이고, 학교 밖의 인물도 마찬가지다. 인물팀 기자로서 매주 어떤 인터뷰이를 만날까 고민한다. 그렇지만 성별을 따져 인터뷰한 적은 없다고 단언한다. 흥미롭고, 신문에 소개하고 싶고,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을 찾다 보니 자연히 그렇게 됐다. 엄마의 뜨개질로 시작해 기업을 함께 키운 모녀, 멸종위기종을 조사하기 위해 러시아 사할린도 마다하지 않는 식물학자, 출산 이후에도 춤추는 것을 멈추지 않는 발레리나까지. 나는 이들의 말을 듣고 글로 옮긴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이리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음을, 그리고 여자가 있음을 깨닫는다.

나뭇잎이 떨어지던 가을에 만난 한 인터뷰이의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그동안 기록되지 않았던 여성 예술가를 강의하는 미술사학과 교수였다.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가 존재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우리 스스로 던질 수 있어야 한다”던 그는 “이 질문은 미술사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고 말했다. 왜 위대한 여성 정치인은 이야기되지 않는지, 왜 위대한 여성 언론인은 남성들만큼 조명되지 않는지, 왜 위대한 여성 과학자는 ‘퀴리 부인’밖에 없는지 말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잊고 있었던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여대에 다니고,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하고, 취재하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의 상황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학교와 신문 너머의 세상은 내가 경험하는 것과 같지 않다고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매일 마주치는 학교 안의 교수님만 생각해 봐도 마찬가지다. 우리 학교는 2022년 기준 여성 교원 비율이 53.4%로 교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국공립대는 19.5%, 사립대가 30.4%임을 감안하면 높은 편이다. 이화 안에서는 여성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는 게 당연하다. 수많은 동문을 보며 우리의 미래를 그려보고 희망을 얻는다. 주변에 좋은 여성 롤 모델들이 많다. 세상의 반, 아니 전부가 여자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슬프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정말 세상의 반이 여자일까? 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그만큼 반영되고 있느냐에 대한 문제다. 국제의회연맹(IPU)가 발표한 ‘2023 여성 정치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여성 의원 비율은 26.5%에 불과하다. 지금까지도 여성 노벨상 수상자는 전체의 3%밖에 되지 않는다. 정계와 학계 말고도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들은 남성보다 가려지고 설자리를 잃는다. 일상에서도 여전한 차별을 겪는다.

며칠 전 스페인에서는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성평등법’이 발표됐다. ‘성평등법'은 정치, 기업 및 기타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의 평등한 대표성을 보장한다. 선거 기간에는 정당의 남성과 여성 후보자의 수가 같아야 한다. 기업의 경우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 기업 경영진의 40%를 여성으로 구성해야 한다.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이 법안을 발표하며 “여성들이 사회의 절반을 구성한다면 정치와 경제 권력의 절반은 여성의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의 절반이 여성이니 권력의 절반도 여성의 것이어야 한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지구 반대편의 움직임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분명 좋은 일이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빵과 장미를 원하던 100년 전과 달리 세계는 얼마나 변화했고 우리는 얼마나 진일보했는가. 누군가는 여전히 차별이 심하다 말하고 누군가는 유리천장 따위는 없다고 말할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아직 부족하다고 말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이만하면 됐으니 그만 조용히 하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나 또한 매번 어떤 기사를 쓰고 어떤 사람을 만날지 고민한다. 가끔은 너무 치우치지는 않는지 자기 자신을 경계한다. 여성의 이야기만 쓰겠다는 뜻도 아니다. 그러나 아직은 더 많은 여성의 얼굴과 목소리와 발자취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글을 쓸 지면이 주어진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이 일을 얼마나 더 하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앞으로도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세상의 반이 여성이라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많은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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