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학보 신입기자로 들어온지 약 11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두 번의 마감만이 남았다. 퇴임을 목전에 둔 나에게 올해 무얼 했냐 물어본다면 단연코 나는 학보로 시작해서 학보로 끝났던 한 해였다고 답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한 해 동안 명함 내밀 만한 활동으로 학보 하나 했다고 한다면 단순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내 주변만 해도 성적 챙기기 바쁜데 저마다 다채로운 활동으로 시간을 지혜롭게 보내는 동기들로 가득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학생과 취재기자라는 두 신분을 오가며 학교생활을 보내는 동안 내게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고는 결코 말하기 어렵겠다. 기삿거리를 발굴해 기획안을 제출하고, 취재로 며칠을 보내다 기사 작성 후 퇴고하는 과정까지. 학보 기자로서 보내는 시간만으로도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가곤 한다. 그래도 다양한 주제로 취재해나가던 과정 하나하나가 내게는 큰 도전이었기에 이정도면 나도 바쁘고 알찬 삶을 살고 있다며 위안으로 삼고 있었다.

이후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겨 2학기 발간을 앞둔 잠깐의 공백기에, 남들이 다 한다는 대기업 서포터즈를 지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자기소개서를 적어보자 하고 문서를 열어보니 ‘세 단어로 본인을 정의하라’는 문항에서부터 말문이 막혔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뭐라도 정보를 찾아보자는 생각에 합격자들이 블로그에 올린 수기글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글들을 본 순간 더 막막해졌다. 2-30개가 넘는 대외활동 경력은 기본. 면접에서 춤을 추거나 랩을 개사하는 등 면접관들의 눈에 띄기 위해 필살기를 보여줬다는 후기들까지. 다른 세상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결국 지원도 하지 못한 채 노트북을 닫고 말았다.

이번 여름방학은 진로를 슬슬 결정해야 하는 고학번이 되는 과도기였던 만큼 취업 준비에 대한 사색의 시간도 잠시 가졌다. 그런데 긍정적 결론에 도달하진 못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과 나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근 사회는 젊은 층을 ‘MZ세대’로 통칭하고, 용어에 걸맞게 패기발발하고 창의적인 또래들이 속속히 등장하고 있다. 지원하려다 포기했던 서포터즈도 이런 인재들을 뽑고 싶어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난 남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경험이 없을뿐더러 무엇을 시작할지부터 막막한 상황이었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방학 동안 토익이라도 공부하겠다고 주5일 단과학원을 등록해버리는 나름의 과감한 결단도 내렸지만, 이마저도 설상가상 코로나 확진으로 무산돼버렸다.

두 학기 모두 커리어취업팀에 소속돼 취업 관련 기사를 쓴 것도 고민에 일조했을지 모른다. 이화를 졸업한 현직자를 소개하는 ‘이화잡(job)담’ 코너를 거진 일 년 동안 연재하며 남부러운 직장에 다니는 선배들의 성공담을 들려줬다. 지금까지 10명의 선배들을 취재원으로 만났는데 동문이라는 것을 제외하곤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진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작성해야 했다. 당장 나부터도 팔자가 좋지 않지만, 학생들에게 취업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주력인 부서에 소속된 내 상황이 모순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고심으로 점철된 일상에 전환점이 찾아온 순간이 있었다. 기회가 닿아 올해 5급 행정고시 수석합격자로 선발된 같은 학과 선배를 취재하게 됐다. 인터뷰하는 동안 이전에 만났던 취재원들과는 다른 기운을 받을 수 있었다. 그동안 누구보다 발 빠르게 진취적인 커리어를 쌓아나갔던 사람들을 만나왔다면,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잡고 묵묵히 달려 최고의 성과를 낸 경우는 처음이었다. 수험생활 3년 동안 여러 시행착오를 극복하는 과정을 선배님께 직접 들으니 뭐든 빠르게 해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도 미세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취업에 있어서 대외활동, 공모전, 학회 등 스펙을 쌓는 것은 고고익선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기에 내 말들이 누군가에겐 자기합리화로 들릴 수 있겠다. 하지만 내 성향과 맞지 않더라도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인식되는 틀에 내 자신을 꿰맞추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성격이다. 또 무언가를 항상 달성하기까지 시간이 매우 걸리는 사람이다. 이는 대학 입시 때부터 증명했다. 첫 번째 수능에서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아 수능이 끝난 일주일 후 곧바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두 번째 수능을 보고 나서도 아쉬움이 남아 수험장을 나오며 한 해 더해야 하나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천천히 정진하기’다. 물론 지금 시작하기에 늦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오로지 나에게 맞는 속도에 집중해 작은 경험부터 천천히 쌓아가고자 한다. 다음 학기엔 학보 기자로 활동하는 동안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휴학계를 내고, 진정 내가 갈망하는 미래의 모습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고민의 시간을 가져볼 것이다. 그렇게 나는 코로나에 걸려 듣지 못했던 토익학원부터 다시 등록해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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