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들이 언젠가 나를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 언제가 당장 지금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막연한 생각들. 내 옆에 당연하게 존재하는 누군가가 한순간에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인간의 생이란 참 기묘해서 그렇게 쉽게 끊기지 않는 것 같다가도 이렇게 허망하나 싶을 정도로 한순간에 끝이 난다.

어느 날은 문득 버스를 타고 나를 만나러 오는 친구가 혹여나 오는 길에 사고가 나진 않을까 두려웠다. 불안한 마음에 약속 시간이 많이 남았음에도 괜히 어디쯤 왔는지를 물으며 계속 카톡을 보내기도 했다. 엄마를 뒤로하고 혼자 길을 나서는 발걸음이 더욱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고, 모든 존재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불안함에 휩싸여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죽음을 경험한다. 또 그 죽음 속에서 살아남는다. 누군가의 죽음은 언제 들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가까운 사이였든 모르는 사이였든, 생전에 그가 어떤 사람이었든 죽음 소식에는 숙연해진다. 특히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땐 더 그렇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자살률 1, 2위를 다투는 우리나라답게 우리는 자살을 자주 접할 수밖에 없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소설이 나온 이후 유럽의 청년들은 베르테르에 공감했고 옷차림을 따라 하며 열광했다. 그 열광은 베르테르를 모방한 자살 시도로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유명인이나 평소 선망하던 인물이 자살할 경우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해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에는 베르테르 효과라는 이름이 붙었다. 베르테르는 소설 밖에서도 계속됐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명 연예인들의 소식은 연이어 알려졌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자살생존자가 됐다. 자살생존자는 흔히 자살 시도를 했으나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자살의 영향을 받은 사람을 말한다.

몇 년 전,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던 한 연예인의 사망 소식. 그는 스스로 세상을 져버렸다. 소식이 알려진 당일 그의 오랜 팬이었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아무런 힘이 돼줄 수 없는 나에게도, 남겨진 이가 감당해야 할 슬픔도, 그에게 너무나 가혹했던 세상도. 그리고 우리에게 다시 찾아온 죽음. 나는 가끔 여전히 그들이 살아있고 단지 내가 보지 못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다시 환히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막연하고 막연한 마음.

갑작스러운 소식에 많은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알아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2021년 생명존중시민회의가 발표한 '자살 유가족 권리장전'에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권리’와 ‘자살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않을 권리’가 있다. 너의 탓이 아니다. 우리의 탓이 아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서로를 보듬어야 한다. 슬퍼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다. 마음껏 울고 웃고 그리워하며. 있는 그대로의 감정에 충실하고 서로를 안아주며. 아픔을 딛고 행복한 기억으로 그 시간을 채워갈 수 있도록 서로가 힘이 돼줘야 한다. 정혜윤의 책 ‘슬픈 사랑의 기쁜 말’을 보면 상처받았던 사람들의 회복력이 눈에 띄게 강해지는 순간이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생명을 생각할 때라고 한다. 서로를 생각하며 함께할 때 우리는 더 큰 회복력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함께 잘 살아갈 권리가 있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마주했을 때 나름의 사정이 있겠거니 화내지 않고 좋게 넘어가고자 할 때 주로 되뇌인다. 평소에도 이런 마음으로 살아보면 어떨까 싶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법이지만 먼저 나서서 주변을 돌아보고 헤아려 보면 어떨까. 요즘은 뭘 하며 지내는지, 고민은 없는지…  마음속에 있는 걱정과 사정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를 챙기고 주변을 살피면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울타리가 돼주는 것이다.

나는 행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생각한다. 괴롭고 힘든 일 속에서도 때론 아주 사소한 것들이 삶을 지탱하는 지지대가 된다. 사소한 안부가, 헤아림이 그 지지대가 됐으면 한다. 모두의 생이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으면 한다는 소망을 안고 감히 자살생존자인 우리 모두에게 손을 내밀어 본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