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쯤이면 공기 냄새가 바뀐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어느 순간 갑자기 훅 찬 바람이 파고들며 풍겨오는 쌉싸름한 비릿한 냄새. 나는 이걸 ‘수능 냄새’라 부른다. 수능이 끝난 지 3년이 지났지만, 매년 찾아오는 이 계절의 수능 냄새는 잊을 수 없다. 시간은 언제나처럼 무심하게 지나가고, 나는 예전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에도 말이다.

과거의 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찾아볼 거라나. 경계의 그늘진 구석을 외면하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비틀린 사회의 균형점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학창 시절의 수많을 밤을 지새웠던 나의 꿈은 저만치 먼 곳에 멈췄다. 꿈이 인생의 최종 목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저 인생의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이라는 변명에 포장된 상태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꿈은 그저 ‘쓸데없는 것’이 이 되고야 말았다. 이제보니 세상을 바꾸는 자에겐 궤에서 벗어날 용기보다 묵묵하게 견뎌내는 무던함이 중요했나 싶다. 불안한 미래, 남들과의 비교 그리고 주위의 시선들. 세상을 바꾸려면 서글픔을 무던히 버텨야 하는구나. 머쓱하게 본래의 궤로 돌아온 나를 기다리는 건 속죄의 시간이다. 작은 혁명은 그렇게 막을 내렸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뇌의 시간은 그저 미래를 지연시킬 뿐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건 꿈이라고 말할 수 없다. 대기업에 취직하고 전문직을 목표로 삼는 것, 그것이 꿈이다. 흰 깃발이 휘날리는 전쟁터에 낭만이 걷히자 유독 지독한 성장통이 가득했다.

그렇게 유난스러운 성장통을 앓고 나니, 소외된 목소리들이 부차해졌다. 신경은 쓰이지만 외면하는 것이 가장 편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추운 계절 어르신의 전단지를 받아들기엔 손이 시렵고, 어차피 바뀌지 않을 것들을 위해 목소리 내기엔 할 일이 많다. 괜한 걱정하지 말고 단순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작부터 이렇게 살았더라면 취업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할 수 있었을 텐데.’

결국 나는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비틀린 틈바구니에 나를 맞추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렇게 현실에 타협할 거면서 왜 그리도 혼자 유난스럽게 발버둥 쳤던 것일까. 어른들이 ‘아직 네가 사회를 몰라서 그래’라며 현실을 강요할 때 왜 그리 반발심을 가졌던 걸까. 과거와 연결고리를 어디서부터 놓쳐버린 것일까.

한때는 꿈이 열풍이었다. 꿈이 없으면 실패작이 된 것마냥 꿈을 강요하는 분위기 속에 어린아이는 누구보다 거창한 꿈을 세워야 했다. 하지만 이제 꿈이 용납되지 않는 시대에서 이런 생각들은 사치이고, 차라리 자소서에 채워 넣을 한 줄이 훨씬 중요하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채 수많은 밤이 이 몇 줄을 위해 사라져갔다.

꿈꾸던 아이가 경쟁에 지친 어른으로 변해가는 것은 서글픈 이야기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나는 여전히 그때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곳을 헤맨다. 삶은 시시각각 변하기 마련이고, ‘다른 시기’라는 변수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때의 내가 지금과 달라진 건지 아니면 달라진 척을 하며 훌륭한 연기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진 분간할 수 없지만, 가끔은 꿈을 잊은 채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무기력한 시기의 고민도 분명 같은 궤의 어딘가를 향하고 있을 테니.

분명한 건 나는 과거를 거쳐왔기 때문에 지금으로 살아갈 수 있다. 지금의 난 그때의 망설임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다. 결국에는 아름다웠던 시절이 나를 감싸주는 보호막이 됐다. 그때는 모든 게 마음만으로도 가능한 시절이었다. 그저 마음만으로 행동을 끄는 일이 가능했다. 내가 아직 어려 사회를 몰라 그렇다던 어른들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는데 변해버린 것은 아닌지, 현실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변해버린 내게 묻고 싶다.

꿈은 불길과 같다. 한때의 꿈이 지나가고 나면 불에 덴 것처럼 흔적이 남는다. 가수를 꿈꾸던 이들은 노래를 잘하고, 화가를 꿈꾸던 이들은 그림을 잘 그린다. 꿈을 잊은 채 사원증을 매고 출근하는 이들에게 꿈이 뭐냐 물으면 다 지난 일이라 하지만 사실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리 쉽게 끝날 꿈이었다면 애초부터 꾸지 않았을 것이다. 꿈같은 이야기는 그렇게 다시 동기부여가 된다.

매년 이맘때 불어오는 수능 냄새가 내겐 과거를 돌이켜보는 신호탄이다. 새삼 그리워할 수 있는 시절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당찬 포부로 수능장을 들어가던 내가 지금의 나를 보게 된다면 어떤 심정일까. 꿈을 잊은 아픈 청춘 돼버린 것에 실망의 기색을 내비칠까, 아니면 많은 밤을 꼬박히 채워줬던 지난날의 생각들을 궁금해할까. 그렇다면 내가 먼저 그런 아름다웠던 시절을 갖게 해줘서 고맙다고, 거창한 꿈을 꿔줘서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고 나를 안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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