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고통이 비례하는 세상, 행복도 고통도 없는 세상. 너는 어디서 살래?”

어느 날 친구가 물었다. 나는 일말의 여지 없이 후자를 택했다. 행복은 짧지만, 고통은 길고 또 깊다. 어떤 고통은 마음에 옅어지지 않는 상흔을 남기며 내일로 넘어갈 힘조차 앗아간다. 차라리 나는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싶었다. 불안을 피할 수만 있다면 행복을 팔고 싶었다.

하지만 행복도 고통도 없는 세상이란 불가능했다. 산뜻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 쾌청한 하늘, 따스하게 물든 단풍에도 나는 행복했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 가난이 빼앗은 존엄, 이름 모를 누군가의 죽음에도 고통스러웠다.

흐린 세상을 선명하게 펼쳐 보여주는 기자가 되겠다며 학보사에 지원했다. 단순하게 고통과 아픔을 반복하는 대신 고통과 아픔을 만들어낸 구조를 들춰내고 싶었다. 고통 없는 세상이 불가능하다면 고통을 이해라도 하고 싶었다. 고통을 미워하는 데서 오는 고통이라도 줄이고 싶었다.

그러나 선명하게 드러난 세상은 고통스러 웠다. 세상의 고통을 샅샅이 들추는 것은 더욱 고통스러웠다. 유례없는 폭우로 반지하에서 숨진 세 모녀, 스토킹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지만 생을 달리 한 여성 역무원, 부실한 안전 관리 속에서 비극적 죽음을 맞은 SPC 여성노동자까지. 알면 알수록, 구조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커지는 부조리를 견디기 힘들었다. 반복되는 부조리 속에서 무력감을 느꼈다.

그리고 10월29일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이태원으로 향했던 젊은 사람들이 생을 달리했다. 급박했던 현장의 영상이 모자이크 없이 실시간으로 유통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방비한 비난에도 노출되고 있었다. 새벽 2시에 사건을 접하고 새벽 6시까지 TV리모컨과 핸드폰을 놓을 수 없었다.

학보사 단체 카카오톡방에서도 서로의 안위를 묻는 말들이 이어졌다. 무거운 마음을 끌어안고 학보 사람들은 학보가 해야 할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를 쓰게 됐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력감에 허덕이면서도 무거운 마음으로 취재에 임했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방문했다. 뉴스와 기사로만 접하던 현장에 직접 갔을 때 드리운 중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수많은 국화꽃이 이태원역 1번 출구를 감싸고 있었다. 저녁 8시도 되지 않았지만 문을 닫은 상점과 누군가의 울음소리, 차가운 바람 사이에는 목도리에 꽁꽁 싸인 국화꽃이 있었다. 혼을 위로하는 목탁 소리를 들으며 포스트잇에 붙은 애도사들을 읽어나갔다.

취재 후 돌아오는 택시는 조용했다. 함께 간 기자님들 모두 침묵 속에 있었다. 학교로 돌아와 계산하고 내리는데 기사님이 조심스레 한마디 하셨다. “어른들이 미안합니다.” 기사님은 무엇이 미안하신 걸까. 택시를 운전하는 내내 고심했을 기사님의 그 한마디를, 나는 아직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 한마디에 울고 싶었다.

참사가 발생한 다음 날이 일요일이었음에도 학교에서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은 연락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매일같이 강의실에서 마주했던 교수님들은 수업을 시작하며 마음은 괜찮은지 물었다. 바쁜 와중에도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하고, 인터뷰에 참여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교수님들과 직원분들이 있었다.

기사에 모두 실을 수는 없었지만 많은 분이 우리가 경험하는 무력감과 고통을 이해하고 계셨다. 그리고 학생들이 상처를 딛고 더 나은 내일로 향할 수 있도록 학교와 어른들이 울타리가 돼 주고 싶다는 말씀도 하셨다. 당신은 힘들 수 있다, 힘들어도 괜찮다, 혼자 견디기 어렵다면 언제든 찾아오길 바란다는 그 진심 어린 말들. 취재에서 들은 그 말들을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 취재 중에 내가 위로받았던 것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독자분들도 위로받길 바란다.

여전히 세상은 서늘하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히잡을 벗기 위한 여성들의 시위가 일어나고 있으며, 너무 흔해서 기사조차 나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고심 끝에 내뱉은 ‘미안하다’는 말, 진심 어린 위로,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슬픔과 무기력 속을 헤엄치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문장으로 글을 마친다. 고통 지나고 나면, 사랑을 선택하길 바라며.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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