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월세는 어떻게 할거야? 이것도 보증금 300만원에서 까? 알겠어. 뒤에 다른 사람 들어와야 하니까 이것들 싹 치워줘.” 산 언덕에 위치한 1층짜리 다세대 주택, 5평 내외의 공간으로 구획된 건물에는 여덟 가구가 살고 있다. 지친 목소리의 주인공은 집주인 아저씨였다. 명령문에 답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우리 집은 보증금 500만원 받았는데.’ 우습게도 집주인 아저씨의 목소리를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올해 1월 서울에서 첫 자취를 시작하며 학교 근처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제시할 수 있는 금액은 보증금 500에 월세 40. 반지하만 아니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부동산 아주머니는 보여줄 수 있는 집이 두 개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두 번째로 본 집이 바로 내가 사는 집이다.

약 6개월을 살았지만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내 이웃사람. 이웃에 대해 아는 유일한 정보는 보증금 300만원으로 집에 들어왔고 몇 개월 째 월세가 밀려 집주인을 피해다녔으며 이제는 30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거리에 나서게 됐다는 것뿐이다. 얼굴을 본 적도, 목소리를 들은 적도, 아니 옆집인지 앞집인지도 모를 그 이웃의 존재를 그때 처음 알아차렸다.

‘저 사람은 이제 어디를 가게 될까?’ 정문 앞 건물은 보증금 1000에 월세 80이 대다수 다. 후문에서는 정문에 비해 싸게 집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후문이라도 수중에 300만원조차 없는 사람이 갈 수 있는 집은 고시원, 반지하, 운 좋으면 하숙집 정도에 불과하다.

지난 8월 서울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는 물에 잠겼고 사망자가 잇따라 나왔다. 그중에는 반지하 창문으로 쏟아지는 빗물이 천장까지 차오를 동안 대피하지 못해 생을 달리한 사람들이 있다. 13살 딸과 발달장애가 있는 언니, 그 둘을 부양하던 한 40대 여성. 그녀에게는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가족의 전화를 받고 병원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70대 노모도 있었다.

주거취약계층이 사망한 사례는 이번뿐이 아니다. 2018년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에서는 불이 나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2022년에도 영등포구 고시원 화재로 2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폭우로 사망자가 나오자 정부는 반지하를 없애겠다며 대책을 내놓았다. 서울시는 반지하를 주거 용도로 건축할 수 없도록 건축허가를 내지 않겠다고 밝혔다. 주거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주거상향을 통한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지원하겠다고도 말했다. 폭우로 침수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늘상 반지하를 규제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8월30일 정부가 내놓은 2023년 예산안에서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이 대폭 줄어있었다. 22조 5281억원에서 16조 8836억원으로 약 25%가 줄어든 것이다.

‘반지하를 규제하고 공공임대주택 예산도 줄이겠습니다.’ 아니, ‘가난한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살길 바랍니다.’ 내 귀엔 그렇게 들렸다. 장기적으로 비적정주거를 줄이는 시도는 필요하다. 판잣집, 비닐하우스, 고시원, 반지하, 쪽방 등 열악한 환경의 주거지에서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힘들다. 그렇기에 정부는 주거비 부담을 줄이고 최소한의 위생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주거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 공공임대주택도 늘려야한다. 너무도 당연한 소리지만 우리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다.

뉴스에서 연신 폭우 소식이 이어지고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말만 계속될 때, 고시원에서 화재사고가 일어나던 그 순간에도 잘 곳을 찾아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보증금 500에 몸 누일 곳을 찾는 내게도 남 이야기가 아니다.

며칠 후 내 이웃사람은 집안의 짐을 뺐다. 복도에는 혼자 짐을 옮기는 소리가 났지만 나는 그 소리를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수많은 질문이 머리를 스쳤다. ‘월세는 다 해결했을까’, ‘당장 갈 곳은 있나’,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미래가 걱정되면서도 차마 그의 얼굴을 볼 자신은 없었다. 문앞에서 짐 옮기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부디 잘 살길 바란다는 송별사를 보내는 것뿐이다.

'국일고시원 참사희생자들을 위한 49재’에서 송경동 시인이 보낸 애도사로 글을 마무리한다. 내일은 모두가 안전한 곳에서 눈뜨길 바라며.

‘고시생이 아닌 만년 고시생이 되어 이 세상의 모든 고난과 눈물과 아픔을 밑줄 그으 며 읽어야 하지. 이 세상의 모든 가난과 차별과 멸시와 모멸을 견뎌야 하지. 부디 굶어 죽지 말고 얼어죽지 말고 타 죽지 말고 목매달지 말고 탄불을 켜지 말고. 부디 버려진 인간들에게도 건투가 있기를.’ -<우리는 어떻게 가난을 외면해왔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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