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처음 탈 때 가장 어려운 건 중심 잡기다.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져 버리기 쉽다. 대학에 합격하고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자전거를 처음 탔던 날이 떠올랐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는데 아빠가 걱정하지 말고 앞만 보라며 자전거 안장을 잡아줬다. 아빠의 말을 믿고 힘차게 발을 굴렀다. 어느샌가 아빠는 없고 나 혼자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배웠다. 학교 기숙사에 입사하던 날은 아빠가 몰래 안장을 놓았던 순간처럼 준비되지 않은 채로 훌쩍 떠나버린 느낌이었다.

홀로서기를 시작한 뒤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늘 무언가를 했다. 가끔 끄적이는 내 일기장에는 ‘2022 나의 목표’라는 거창한 제목 아래에 ‘영어 공부, 동아리, 학점 챙기기, 대외활동, 운동, 독서, 알바’ 등 수십 개가 넘는 ‘해야 할 일’이 적혀 있었다. 학점도 놓치고 싶지 않아 일찍 일어나 도서관에 갔다. 공강 시간에 노는 건 죄짓는 일처럼 느껴졌다.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게 더 힘들었다. 밤을 새워 공모전에 출품할 영상을 만들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뭐라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편해졌다. 시간이 나면 또다시 새로운 일을 찾았다.

쉬지 않고 일을 한다고 불안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나는 남과 나를 비교하며 자주 중심을 잃었다. 친구들과 만나서 대외활동 여러 개를 하며 힘들다는 얘기, 공모전에 나가 상을 탄 얘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불안해졌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다들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멀리 여행을 떠나고,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으로 가득했다. 아무도 나에게 잔소리하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았다. 나는 남과 비교하기에 바빴고, 그래서 늘 배가 아팠다.

어느 날은 본가에 갔다가 아빠 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내 표정에 근심 걱정이 보였나 보다. 고민 상담을 한 것도 아닌데 문득 아빠가 내 고민에 대한 대답 같은 말을 했다. “살다 보면 너보다 더 빠른 사람들이 많을 거야. 아무리 노력해도 이기지 못할 수도 있어. 근데 괜찮아. 아빠가 보기에 너는 느리지만 끝까지 결승선을 통과할 애야.” 당장의 성과를 위해 주변과 비교하며 아등바등 살지 말라는 뜻이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왜 남을 이기려고 했지?’ 사실 이유는 없었다. 단지 내 속도와 방향에 대한 확신이 없어 불안했다. 불안하니까 주변을 봤다. 내가 찾지 못한 내 인생의 답을 주변에서 찾으려고 했다.

이때부터 내 삶은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가 됐다. 내 꿈은 1등이 아닌 완주가 됐다. 비교하지 않고 내 소중한 삶을 꿋꿋이 지켜야겠다고 마음먹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였다. 내가 하는 활동들이 남들보다 부족할지도 모른다. 내가 공모전에 떨어진 날 친구는 큰 공모전에서 수상할 수도 있다.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과목 시험 성적이 평균을 밑돌 때도 있다. 최선을 다한 일이 최선의 결과를 낳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보는 다른 사람의 모습은 항상 나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이제 자전거를 타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고 남들과 나를 비교할 힘이 있다면 내가 힘들지는 않은지, 내 자세는 올바른지를 먼저 돌아본다.

달리기를 막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는 20대 초반에는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결승선까지 도착할 끈기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2021년 기준 여성의 평균 수명은 83세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간 뒤에도 50년이 넘는 시간이 남아있다. 적어도 앞으로 살아갈 긴 인생에서 지금은 아주 짧은 시간이라는 것이다. 이 기나긴 길에서 중요한 건 지금 잠깐의 속도가 아니라 끝까지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는 끈기다.

나는 천천히 가고 싶다. 내 삶을 꼭꼭 소화하면서, 그렇게 완주하고 싶다. 내가 하는 일들이 가끔은 의미가 없을 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럼에도 나만이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남들과 다른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고 믿는다. 나만의 가치를 믿고 오늘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이것이 삶을 완주할 결심이다.아직도 불안은 숨 쉬듯이 찾아온다. 멈춰 있다는 생각에 숨이 턱 막혀올 때도 있다. 그럴 때 나는 다시 숨을 크게 들이켠다. 다시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세수를 한다. 다시 나만의 페이스로 긴 레이스를 달릴 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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