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십 초십, 구, 팔, 칠, 육, 오… 이제 진짜 울린다.지금 아 아니다, 앞으로 십 초 더 남은 것 같다.십, 구, 팔. 마저 숫자를 세기도 전에 알람 소리가 따갑게 귀를 파고들었다. 오늘도 틀렸다. 허겁지겁 눈을 번쩍 뜨고 소리가 두 번 울리기 전에 빠르게 알람을 껐다. 하지만 이미 짧게 울렸다 사라진 소리는 귓가를 메아리처럼 맴돌았다. 짜증스럽게 눈을 찌푸리고 누운 자세 그대로 귀를 막았다. 적중에 실패한 날은 이렇다. 귀를 막아도 소리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손바닥 틈을 타고 들어와 귓구멍 속으로 침투해 고막 가장
토요일 5시 반 서울역 8‧9번 출구를 가르는 중간 통로엔 무료 진료소 운영 준비가 한창이다. 간이 진료소가 차려지기도 전에 나타난 익숙한 얼굴들은 하나 둘 통로 가장자리에 일렬로 놓인 플라스틱 의자를 드르륵 끌어 그 위에 몸을 싣는다. 나는 물건을 옮기는데 여념이 없어 그들이 의자 위에 내려놓은 무게에 대해 짐작조차 않는다. 언젠가 바삐 움직이는 봉사단원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그 얼굴을 마주친 적이 있지만 금새 시선을 거두었다. 6시, 진료 시작을 알리는 PM의 말소리가 들린다. 예진 업무를 맡은 나는 노트북에 OCS 프로그램을 띄
화수동에는 60년 된 방앗간이 있는데가래떡 기계는 떡을 뱉을 때마다 몸을 떨었다그 떨림은 골목을 울렸지배춧잎 따며 조잘대던 아지매들이 빼꼼세탁소집 아이가 뛰어나왔고 낮잠 자던 고양이는 가르릉 거렸다 작은 방앗간에서 시작된 떨림은 동네방네 달리며골목 곳곳에 숨어있는 소리를 이어 갔다사람들은 서로의 진동수를 맞추어 갔다 방앗간 할머니에게는 손주가 있는데자신이 만든 시끄러운 떡은 먹지 않고공장에서 나오는 조용한 떡만 먹는댄다말 많던 사람들 어디로 갔을까 할머니는 가래떡 기계의 소싯적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세월을 먹은 기계는 옆에서 골골대었
우리는 긴 시간 우주를 떠돌다 드디어 우리의 모행성인 지구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1세대의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우리의 불가능한 바람에 불과했습니다. 지구는 황폐했습니다. 우리 2세대가 갖고 있는 최초의 기억, 머리도 눈도 검은 우리의 어머니가 따뜻한 풍경 속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던 그 기억은 어머니에 의해 조작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지구에는 살아남은 생명이 없는 듯 했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듯한 화재가 있었고, 종종 1세대 인류의 타버린 흔적이 있었습니다. 모행성의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했
대학혁신지원사업 홍보 DAY(홍보 데이)가 10월26일 오후2시~5시 ECC 이삼봉홀에서 열렸다. 홍보 데이는 미래혁신센터가 주관해 이화 DnA Lab(DnA), 도전학기제 등 다양한 대학혁신지원사업(대학혁신사업)을 알리는 행사다. 2022년부터 시작된 대학혁신사업은 미래 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미래형 인재 양성 사업이다. 행사는 프로그램 존, 서포터즈 존, 이벤트 존으로 구성돼 자유롭게 부스를 둘러보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형태로 이뤄졌다. 첫 오프라인으로 진행된 행사에는 약 170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프로그램 존에는 미래혁신센터
요즘 ‘낭만을 찾는다’는 표현을 자주 듣는다. 나도 가을 끝자락에 올라타, 낭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이 글에서 낭만에 관한 서두를 던지기 위해 본격적으로 낭만이 무엇 같으냐고 만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한동안 물어보고 다녔다. 학교에서 함께 풍물패를 하는 친구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소고춤에만 집중하고 있는 상태가, 바다를 좋아하는 친구는 아침에 갔던 바다를 저녁에 또 가는 일이 낭만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다양한 이야기들 속, 공통으로 낭만은 현실을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 현실감의 반대 개념. 어쩌면 현실을 벗
일본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후지산, 초밥, 온천, 벚꽃…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아니메(*‘애니메이션’의 일본식 표기)’와 다양한 캐릭터 산업일 것이다.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도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를 보면서 처음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교환학생 행선지를 일본으로 정한 것 역시 그 영향이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 지낸 지 두 달이 지난 지금, 직접 느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할 수 있는 생활’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다.막 입국한 후 이번 학기 교환학생들을 처음 학교로 불러 학교생활이나 일본에서의 생활
안녕하세요. 이대학보 독자 여러분. 첫 칼럼을 쓸 때만 해도 더위가 가시지 않은 여름이었는데 어느새 차디찬 바람이 불어 오는 겨울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피부에 닿는 공기의 온도로도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만, 얼마 남지 않은 학보 발행 횟수가 제겐 더 크게 와닿습니다.이번 학기 저희 학보는 아홉 번의 신문을 만들었고, 앞으로 두 번의 발행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번 호는 제2회 이화문예상 수상작들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자 총 네 면에 수상작과 소감, 심사평을 담았습니다. 기사를 몇 면에 어느 크기로 배치할지 결정하는 지면 레이아웃
제56대 총학생회(총학) 선거가 5년 만에 경선을 치른다. 세 개의 선거운동본부(선본)가 출마해 삼각구도를 형성할 예정이다.제56대 총학 후보 등록이 6일 오후7시 마감됐다. 출마한 선본은 ▲스타트 ▲초록 바람 ▲한페이지다. 2018년 이후 5년 만의 경선이다. 세 개의 선본이 등록한 건 2009년 이후 14년 만이다.스타트 정후보는 박서림(체육∙20)씨, 부후보는 반지민(물리∙22)씨다. 스타트는 ▲등록금 부담 완화▲필수 이수 강의 개설 확대 등 수업권 보장 ▲대외 이미지 제고 ▲실태조사를 통한 캠퍼스 시설개선 요구 등의 공약을
편집자주 | 2030의 가장 큰 관심사는 취업을 비롯한 커리어 활동이다. 이러한 관심을 반영해 본지는 사회 각지에서 커리어를 쌓아 온 이화인의 이야기를 담은 ‘이화잡(job)담’을 연재 중이다. 1656호부터는 인스타그램에서 독자들의 질문을 받아 인터뷰 질문을 구성한다. 이번 호는 노무법인에서 일하고 있는 노무사의 삶을 다룬다. 노무사는 노동법과 노사관계의 전문가다. 노동법에는 근로기준법 및 노동조합법 등이 있다. 기업이 노동법을 준수해 안전한 근로환경을 만들도록 조언하기도 하고, 법적 지식을 활용해 노사갈등을 풀어내는 데 도움을
“낙태, 피임 방법을 잘 몰라도 내 성생활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고 생각하니까 성에 대한 대화를 잘 못하는 것 같아요.”(ㄷ씨)일상 속 다양한 성 문제에 대해 학생들은 얼마나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서울시립청소년문화센터에서 초중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2021년 조사한 청소년 성 문화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의 70%는 학교에서 전문 강사에게 성 지식을 얻는다. 하지만 학생들은 성인이 되고 난 후 실제로 겪을 수 있는 성 문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이대학보와 인터뷰를 진행한 여성 취재원 4명은 솔직한 성경
낙엽이 져서 가을인 걸 알았다. 계절의 흐름도 신경 쓰지 못한 채 11월을 마주했다. 작년 겨울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학보에 온 마음을 다하고 있다 보니 어느덧 3학년이 성큼 다가온 걸 눈치채지 못했다. 어느새 코끝에 겨울 냄새가 감도는 지금, 올 한 해를 되짚어 보면 오직 ‘이대학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스물하나의 매 순간을 학보와 함께한 것이다. 다른 이의 일주일은 ‘월화수목금토일’로 이뤄져 있을 테지만, 우리의 일주일은 ‘일월화수목금토’로 이뤄져 있다. 일요일을 통으로 다 바쳐 어떤 기사가 세상에 나가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
편집자주|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을 마주하며 삶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이대학보는 10대부터 70대까지, 저마다의 성실함을 담아 시간을 달리는 여성들의 삶을 담았다. 각 세대별 여성이 지니고 있는 고민과 그들이 마주한 변화에 대해 들어봤다. 중·고등학생, 대학생, 사회 초년생, 중년 비혼·기혼 여성, 노년 여성의 이야기를 10월30일부터 5주간 연재한다.결혼 여부를 나타내는 단어인 미혼과 기혼. 2010년대 후반, 페미니즘 담론이 대두되며 ‘비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고 싶으나 결혼하지 못한 상태
편집자주|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을 마주하며 삶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이대학보는 10대부터 70대까지, 저마다의 성실함을 담아 시간을 달리는 여성들의 삶을 담았다. 각 세대별 여성이 지니고 있는 고민과 그들이 마주한 변화에 대해 들어봤다. 중·고등학생, 대학생, 사회 초년생, 중년 비혼·기혼 여성, 노년 여성의 이야기를 10월30일부터 5주간 연재한다. 직업, 성별, 세대. 우리는 최소 한 가지 이상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간다. 그중 결혼은 한 사람의 배우자, 부모라는 정체성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이대학보는 결
편집자주|본교는 교육의 산실이기도 하지만 92곳의 연구기관을 보유한 연구터이기도 하다. 이에 본지는 변화를 이끌고 현실을 포착하는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한다. 1673호에서는 코로나 시대부터 엔데믹 시대까지의 흐름 속에서 질병 관리의 역사를 탐색하며 올해로 설립 60주년을 맞은 이화사학연구소의 연구소장 최해별 교수(사학과)를 만나봤다.“문제의식과 자료, 이 두 가지는 역사학을 지탱하는 두 다리와 같습니다.” 문제의식과 자료는 역사학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두 가지라고 최해별 교수는 말한다. 시대에 맞는 연구 주제를 찾고 그 연구에
뮤지컬/후크(2023)낡은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석탄이 타고, 물이 끓는 소리 위로 한 아이의 환상적인 목소리가 쌓인다. “놀이를 시작해,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놀이.” 혜화동의 한 극장, 공장을 상징하던 좁고 어두운 공간은 반짝이는 놀이터로 변하고, 관객들은 제임스와 함께 피터와 웬디의 네버랜드로 초대된다. 우리가 원하는 건 모두 할 수 있고, 되고 싶은 건 모두 될 수 있는 네버랜드. 현실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 공간에서 뮤지컬 ‘후크(2023)’의 막이 올라간다.산업 혁명이 한창이던 영국 런던. 이곳엔 빚더미뿐인 공장의 공장장
“유럽이 다른 대륙으로 진출하게 된 출발점은 종교나 자본주의와 관계없다. 오직 후추 때문이다.”평일 늦은 저녁 시간임에도 마포중앙도서관 세미나실은 20대 청년부터 60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강연을 맡은 남종국 교수(사학과)가 “향신료의 종류에는 무엇이 있냐”고 묻자 청중들은 후추, 생강 등을 비롯해 저마다 다른 답을 던졌다. 남 교수는‘서양의 향신료와 근대의 탄생’을 주제로 향신료에 대한 오해와 환상을 바로잡는 강연을 진행했다. 강연 중간에 청중의 이해를 확인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청중들은
“실례가 안 된다면 증원해주실 수 있을까요?”“번거로우시겠지만 부탁드립니다.”쿠션어는 부탁이나 부정적인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를 부드럽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다. ‘쿠션어’는 쿠션을 깔 듯 상대방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목적으로 사용된다.하지만 쿠션어는 부탁하는 상황에 국한되지 않고, 전략적인 언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어색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등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부드러운 어투 모두를 일컫는다. 언어 학계에서는 이를 ‘울타리어(hedge)’라고 지칭한다.쿠션어는 말을 공손하게 전하는 느낌으로 인해 쿠
젊은 세대는 우리 세대가 만들어 놓은 문제를 상속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결국 우리가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7일 ECC 이삼봉홀에서 북핵 연구가 지그프리드 헤커(Siegfried S. Hecker) 박사가 ‘힌지 포인트(Hinge Points): 북핵 문제의 내부 전망(An Inside Look at North Korea’s Nuclear Program)’를 주제로 강연했다. 헤커 박사는 2004년부터 북한에 7회 방문해 핵 시설에서 방사성 원소인 플루토늄을 직접 관찰했다.
가야금과 첼로의 선율에 활기찬 탬버린 소리가 어우러지자, 객석의 아이들이 눈을 반짝였다. 이제는 고전 명작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1989)에 나오는 ‘언더더씨(Under the sea)’의 전주가 대강당을 가득 채웠다. 어린 아이뿐만 아니라 함께 온 부모들도 연주에 한껏 몰입해 노래를 따라 부르며 동심으로 돌아갔다. 본교 가야금 앙상블 ‘WITH’와 첼로 앙상블 ‘이화첼리’의 활기찬 1막 마지막 연주가 끝나고 현실 세계로 돌아온 관객들의 기립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입장에 나이 제한이 있는 기존 오케스트라 공연과 달리 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