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피임 방법을 잘 몰라도 내 성생활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고 생각하니까 성에 대한 대화를 잘 못하는 것 같아요.”(ㄷ씨)

일상 속 다양한 성 문제에 대해 학생들은 얼마나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서울시립청소년문화센터에서 초중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2021년 조사한 청소년 성 문화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의 70%는 학교에서 전문 강사에게 성 지식을 얻는다. 하지만 학생들은 성인이 되고 난 후 실제로 겪을 수 있는 성 문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이대학보와 인터뷰를 진행한 여성 취재원 4명은 솔직한 성경험을 기사에 드러내는 것에 부담을 느껴 익명 표기를 요청했다.

또래와 함께 배우는 ‘성’

20대 여성들은 성과 관련해 자기 몸에 대한 정보를 잘 알지 못한다. ㄱ씨는 “탐폰이라는 도구가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착용 방법을 몰라 힘들었다”고 말했다.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착용 방법을 알기 어려웠던 ㄱ씨는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보며 탐폰 착용법을 배웠다. ㄴ씨도 “고등학생 때 친구들끼리 성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해 본 적은 없다”며 “성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2023년 신촌글로벌대학문화축제에 참가해 학생들끼리 성지식을 공유하고 있다.제공=권서연
2023년 신촌글로벌대학문화축제에 참가해 학생들끼리 성지식을 공유하고 있다.제공=권서연

간호대 소속 성 동아리 토스(TOS)는 ‘성’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모르는 학생들이 올바른 성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총 11명으로 구성된 토스 부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성관계, 피임 용품,임신중절 시술 등 관심 주제를 골라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

동아리에 들어오기 전 이혜영(간호·23)씨는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학창 시절 받은 성교육에서 ‘성’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토스 회장 권서연(간호·22)씨는 “처음 동아리에 들어온 학생들은 서로 성 지식수준이 다르다 보니 성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권씨는 자유로운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학생을 무작위로 지목해 발표 주제에 대한 생각을 말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처음 학생들은 성매매, 성소수자 등의 주제로 말하는 것조차 어려워했지만, 점차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공감대를 만들고 활발한 토론장을 꾸려갔다.

권씨는 학생들이 모여 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공론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같은 나이대의 비슷한 경험을 가진 여성들끼리 대화를 나눈다는 점”이 동아리의 최대 장점이라며 “대학생들이 성을 함께 공부하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할 기회를 마련한다”고 설명했다.

학교 수업에서 만나는 성의 본질

또래들과 성 지식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정규 수업에서 배움의 기회를 얻기도 한다. 세종대 배정원 교수(대양 휴머니티칼리지)는 10년간 <성과문화> 수업을 개설해 성 정보뿐만 아니라 건강한 성관계를 가르쳐 왔다. 배 교수는 대학생들이 성을 이해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점으로 꼽았다.

수업 초반에는 성 정체성, 성 지향성, 양성평등, 성평등, 성 인지 감수성 용어들의 기본 의미를 배우고 수업 중반에는 좋은 섹스 방법, 오르가즘을 느끼는 법, 발기부전에 관한 내용까지 다루며 사랑을 하는 방법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성과문화>는 학생들이 성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만들고자 찬반 토론을 진행하기도 한다. 배 교수는 “갑자기 토론을 진행하다 보니 학생들이 외도를 찬성하거나 동성애 결혼을 반대하는 입장에 놓일 때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상대를 설득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모, 연인 간 성관계에도 집중한다. 이 수업 과제에는 부모님께 ‘결혼’을 주제로 학생들이 인터뷰하는 부모님 결혼 탐색 인터뷰가 있다. 배 교수는 “부모님이 생각하는 결혼의 의미, 결혼에 대한 조언을 듣는 과정은 결혼의 의미를 생각할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데이트 과제에서는 더치페이, 전시 관람 등의 임무를 부여해 학생들이 연인 간 소통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성과문화>의 수업 목표는 학생들이 몸에 대한 권리를 스스로 지키고 건강한 성생활을 하도록 돕는 것이다. 배 교수는 “학생들이 성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성관계 얘기를 먼저 꺼내는 편”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배 교수는 “성이라는 다소 불편한 소재에 학생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 보게 한다면 성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몸’에서 나아가 ‘관계’로 본 성

ㄷ씨는 “성에 대한 이야기는 사생활이라 남과 공유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임신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나 정확한 피임을 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도 정보 찾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ᄅ씨도 “학창시절 성에 관해 충분히 배우지 못헸다”며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친한 사람들끼리 성 정보를 공유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성 고민이 생길 때 대학생들이 성 지식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상담사 정종구씨, 임상심리사 유진아(심리·09년졸)씨는 각자의 블로그에 성 상담 콘텐츠를 제공해 오고 있다. 

정종구씨는 상담사 '치아'라는 닉네임으로 성과 관련한 지식 전달에 집중해 활동하고 있다. 제공=정종구씨
정종구씨는 상담사 '치아'라는 닉네임으로 성과 관련한 지식 전달에 집중해 활동하고 있다. 제공=정종구씨

정씨는 ‘상담사 치아’라는 닉네임으로 성과 관련한 지식 전달에 집중해 활동하고 있다. 그는 연인과의 속궁합, 콘돔 사용, 섹스 중독 등을 다룬 성 상담 내용을 공유한다. 정씨는 “성 상담 소재는 내담자 비밀 유지를 위해 각색해 블로그에 올린다”며 “정보를 접한 사람들이 본인이 가지고 있는 성 고민을 간접적으로 해결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유진아 상담사는 성의 관계적 측면에 집중해 다양한 주제로 성에 대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제공=유진아씨
유진아 상담사는 성의 관계적 측면에 집중해 다양한 주제로 성에 대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제공=유진아씨

10년 넘게 심리 상담을 하고 있는 유씨는 ‘기쁜 사이’라는 블로그를 통해 성과 관련된 ‘관계’에 대한 교육을 제공한다. 커플 관계, 섹스리스, 성생활 커플 관계까지 다양한 연인 간 관계를 다룬다. 유씨는 관계에 집중하게 된 이유로 “대부분 성적 문제로 산부인과, 비뇨기과 같은 신체적 문제들만 생각한다”며 “성(과관련된 인간)관계를 돌봐주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성관계의 본질은 (사람 간의) 관계다”고 설명했다.

유씨가 운영하는 기쁜 사이 블로그에서는 연인끼리의 성관계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자위 방법이나 오르가즘 느끼는 방법을 설명해 주는 해외 칼럼 소개 코너 등도 마련돼 있다. 유씨는 ‘기쁜 사이’라는 기업을 창업해 성관계 교육 서비스를 운영한다. 연인 간 애무 고정관념, 성관계에 대한 부담감을 극복하는 방법을 담은 동영상 강의를 제공한다.

정씨와 유씨의 목표는 사람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성적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두 상담사가 12월에 와디즈(wadiz)에서 공개할 예정인 ‘행복한 성 강의’는 성관계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한다. 정씨는 애무와 삽입, 조루와 발기부전 같은 올바른 성행위를 위한 정보를 알려주고, 유씨는 애무 방법과 같은 성관계 정보를 알려준다. 유씨는 “성에 대한 정보들을 접할 수 있게 된다면 청년들이 성을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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