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본교는 교육의 산실이기도 하지만 92곳의 연구기관을 보유한 연구터이기도 하다. 이에 본지는 변화를 이끌고 현실을 포착하는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한다. 1673호에서는 코로나 시대부터 엔데믹 시대까지의 흐름 속에서 질병 관리의 역사를 탐색하며 올해로 설립 60주년을 맞은 이화사학연구소의 연구소장 최해별 교수(사학과)를 만나봤다.

“문제의식과 자료, 이 두 가지는 역사학을 지탱하는 두 다리와 같습니다.” 문제의식과 자료는 역사학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두 가지라고 최해별 교수는 말한다. 시대에 맞는 연구 주제를 찾고 그 연구에 적절한 자료를 발굴하는 것이 역사학자의 임무다.

현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것이 사학의 기초다. 최해별 교수는 ”역사 연구는 과거를 연구하지만, 현대 사회의 필요와 수요에 맞춰 시대의 문제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코로나 시대에는 질병사가, 신냉전이 격화되는 요즘 다시 냉전사 연구가 주목받는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역사 연구의 주제도 변화하면서 호흡을 맞추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는 여러 요인들의 복합적인 결과이기에 그 요인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죠.“ 본교 인문과학대학 소속인 이화사학연구소는 한국사를 비롯한 동양사, 서양사를 아우르며 시대의 변화에 발 맞춘 연구를 진행한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역사 연구주제를 탐색하는 이화사학연구소장 최해별 교수. <strong>윤민서 기자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역사 연구주제를 탐색하는 이화사학연구소장 최해별 교수. 윤민서 기자

 

질병 관리의 역사를 연구하다

이화사학연구소는 2018년 이전까지 교류사, 지구사, 세계사 등 거시적인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고 연구해왔다. 그러던 중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공동 주제의 필요성을 느꼈고, 2018년도부터 전문화된 주제로 질병사 연구를 진행 중이다. 당시 이화사학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질병사와 의료사에 관심이 커 연구에 주력하다 보니 코로나 시대에 대응하는 연구가 나올 수 있었고, 2020년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소 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화사학연구소에서는 국가 의료 정책을 볼 수 있는 국가 자료, 사망률을 집계한 통계 자료, 신문 매체, 병원에서 생산한 기록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일기, 편지, 소설 등과 같은 다양한 사료들을 통해 질병사를 연구한다. 최해별 교수는 다양한 종류의 사료를 통해 볼 때, “질병 관리의 구체적인 방식이 특정 시대의 사회문화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 문화, 경제, 정치 등의 다양한 요소의 영향으로 질병 관리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질병사와 의료사는 코로나 시대의 여파로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됐다. 이화사학연구소는 그 간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여러 논문들을 모아 이화 의료사 총서 세 권을 출판했다. 그중 첫 번째 총서 ‘질병 관리의 사회문화사'는 동서양의 질병관리 특징을 고대,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는 각 시기로 묶고 국가의 정책적인 측면과 의학의 전문적인 지식부터 사회 공동체 개인의 경험까지 다양하게 담은 총서다. 

이화사학연구소에서는 국내외 학술대회를 진행하며 1년에 2번씩 KCI 등재지인 이화사학연구 학술지를 발간한다. 중요한 연구 성과가 학술지를 통해 소개되며, 그중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또 선별하여 총서를 출판한다. 

최해별 교수는 ‘질병 관리의 사회문화사’에 담긴 12세기 중국의 책 ‘이견지'를 토대로한 연구를 언급했다. ‘이견지'는 홍매라는 사대부가 중국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직접 보거나 전해 들은 2000여 가지의 일화들을 수집한 책이다. 이견지 일부에는 당시 사람들이 행했던 민간요법을 비롯한 의료 생활이 담겨 있다. 기침을 많이 하는 아이가 호두를 먹고 회복했다는 일화 등 일상과 밀접한 지식들이 등장한다. 연구는 민간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의학 지식들이 확산되고 전파되는 과정을 살펴보며 생활 속에서 얻어진 경험들이 어떻게 의학 지식으로 발전했는지에 주목했다. 

창설 60주년을 맞이하며

이화사학연구소는 1960년대 학술교류의 장이 부족했던 사학과 졸업생들의 자유로운 사학 연구활동의 장을 넓히고자 만들어졌다. 이화사학연구소는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세계사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지만 또한 본교에 속한 연구소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여성사를 계속해서 기본적인 문제의식으로 다룬다. 올해 12월 이화사학연구소는 창설 60주년을 앞두고 있다.

이화사학연구소의 앞으로 목표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끊임없이 새로운 주제를 고민하며 역사학계를 선도하는 연구기관이 되는 것이다. 최 교수는 “계속 연구해오던 의료사보다 범위를 넓혀 앞으로는 전 세계의 관심사인 기후 문제와 관련해 환경사가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 살펴볼 것”이라 말했다. 기후 문제를 포함해 산업, 인문, 자연 환경에 주목해 그 속에서 인간이 적응해나간 과정 탐구를 목표로 삼았다. 

둘째는 “퍼블릭 히스토리(Public History)"다. 이는 대중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며 역사학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며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최해별 교수는 역사의 의미가 연구자들의 전문화된 영역에서 머무르기보다 대중과 공유할 때 더욱 살아날 것이라 여긴다. 그는 “이화사학연구소가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작게는 본교 교육 기관들과의 협업, 크게는 지역 사회와 협업을 통한 시리즈 강연 등을 기획해보려고 해요.”

다가오는 24일(금) 인문관 111호에서 이화사학연구소의 6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김은미 총장의 축사와 함께 이화사학연구소가 걸어온 길을 동영상으로 살펴보고, 제1부는 제국의 경계에서 바라보는 지역과 세계, 제2부는 엔데믹 시대 질병 관리의 역사 탐색 이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최해별 교수는 “앞으로 이화사학연구소의 행보를 기대해 달라"며 “6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대한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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