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을 마주하며 삶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이대학보는 10대부터 70대까지, 저마다의 성실함을 담아 시간을 달리는 여성들의 삶을 담았다. 각 세대별 여성이 지니고 있는 고민과 그들이 마주한 변화에 대해 들어봤다. 중·고등학생, 대학생, 사회 초년생, 중년 비혼·기혼 여성, 노년 여성의 이야기를 10월30일부터 5주간 연재한다.

결혼 여부를 나타내는 단어인 미혼과 기혼. 2010년대 후반, 페미니즘 담론이 대두되며 ‘비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고 싶으나 결혼하지 못한 상태’를 뜻하는 미혼과 달리 비혼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한 비혼 여성들과 함께 길을 걸어가는 또 한 명의 비혼 여성이 있다. 바로 권미주(50·여)씨다. 목회상담사인 권씨는 2020년 책 ‘비혼 여성, 아무튼 잘 살고 있습니다’를 출간해 “결혼하지 않은 상태인 여성이더라도 나 혼자서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매일을 꿈꾸는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 권미주씨는 ‘나는 나로 잘 살고 있는가’를 깊게 고민하며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strong>이승현 사진기자
매일을 꿈꾸는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 권미주씨는 ‘나는 나로 잘 살고 있는가’를 깊게 고민하며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승현 사진기자

나눔의 기쁨 속에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권씨에게 나이 드는 것은 좋으면서도 불편한 일이다. 그는 나이가 들며 건강 관리에 힘써야 하는 점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인생에 좋은 일과 힘든 일 모두 있기 때문에 힘든 일에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웠다. 

권씨는 “매 순간 나의 선택과 관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어른’은 하기 싫은 일도 감내할 줄 아는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다. 또 권씨는 나이 듦을 “작은 경험들이 조각처럼 모여 하나의 조각보가 완성돼 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권씨는 어릴 적 동화 작가를 꿈꿨다. 동화 속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는 어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꿈꾸다’는 “하루하루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설레는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권씨는 “동화작가가 되진 못했지만 날마다 꿈꾸는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꿈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권씨는 현재 상담가이자 목회자로서 “사람들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외부 조건들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도우며 진정한 행복을 느껴요.” 권씨가 말하는 ‘돕다’는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 지쳐 멈춰 있을 때 같이 손잡아 주는 것이다.

 

한국에서 비혼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

권씨는 문과 성향을 보였음에도 점수에 맞춰 원치 않던 이과로 진학했다. 문과가 이과보다 높은 성적대를 보이던 90년대 중반, 단순히 점수에 맞춰 진학한 생명공학과는 그에게 무력감을 줬다. 권씨는 4년간의 학부 생활을 ‘버텼다’고 표현했다. 고통의 시간을 버티게 해준 것은 독서였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관심 갖던 신학책을 많이 읽었다. 독서로 삶의 해답을 구하려고 한 그는 신학의 길을 먼저 걸었던 존재들로부터 답을 찾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권씨는 자신이 원하는 ‘남을 돕는 삶’이 신학 위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신학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신학대학원에 입학한 1997년, 당시 한국 교회는 여성 목회자에게 보수적이었다. 2023년이 된 지금까지도 개신교 내 일부 교단에서는 여성이 목사가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권씨는 “나이가 들면 남성 목사는 담임 목사로 취임하지만, 여성 목사들은 갈 데가 없어진다”며 “교계에도 일반 사회와 마찬가지로 유리 천장이 존재한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한국 교회에서 여성의 영역은 돌봄, 아동 교육 등으로 한정된다. 특히 비혼 여성은 ‘여전도회’처럼 기혼 신도만 참여할 수 있는 집단에서 소외되기도 한다.

그가 상담하며 만난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 교회에서 목격한 차별 등은 사회구조적 문제였다. 사회라는 큰 벽을 개인 능력으로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일 수 있지만, 그는 한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권씨는 “역사가 말해주듯 피나는 노력을 통해 여성들이 여기까지 왔다”며 “개개인이 부당함을 당당히 밝힐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될 때 사회 곳곳에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비혼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권미주씨는 책 ‘비혼 여성, 아무튼 잘 살고 있습니다’를 출간했다. <strong>이승현 사진기자
비혼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권미주씨는 책 ‘비혼 여성, 아무튼 잘 살고 있습니다’를 출간했다. 이승현 사진기자

비혼과 중년, 그리고 여성

“제가 비혼주의자는 아니에요.”

‘비혼 여성, 아무튼 잘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을 쓴 권씨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한 ‘비혼주의자’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흠이 있어 결혼을 못 한 것이 아닌, 선택의 주체로서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사회인으로 자리 잡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을 흔히 ‘결혼 적령기’라고 한다. 이 시기 청년들은 하나둘 가정을 꾸리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위기감을 느끼기도 한다. 권씨는 “인생의 과업으로 느껴지는 결혼은 단지 선택사항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결혼 자체에 부담을 느끼기보다 ‘나는 나로 잘살고 있는가’를 깊게 고민하다 보면 결혼은 여러 결정 사항 중 한 가지가 될 것”이라며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씨에게 중년은 활짝 핀 꽃의 시기다. 그는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기특하게 생각한다. 한 발 떨어져 자신의 삶을 바라볼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여유를 “나이가 준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만개한 꽃이 질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지만 너무 불안해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중년에 접어든 그의 삶은 조급함, 불안, 허황된 기대보다는 그 순간 해야 할 일을 하며 느끼는 기쁨으로 가득하다. 

저에겐 지금 이 순간이 화양연화인 것 같아요. 예쁘게 연애했던 20대도, 치열하게 살아왔던 30대도 다 아름다웠어요. 아름다움 속에 아픔과 슬픔, 좌절도 있었지만 그동안의 경험이 모여 오늘의 나를 풍성하게 만들어줬어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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