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자 임성미(약학‧22)

출처=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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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5시 반 서울역 8‧9번 출구를 가르는 중간 통로엔 무료 진료소 운영 준비가 한창이다. 간이 진료소가 차려지기도 전에 나타난 익숙한 얼굴들은 하나 둘 통로 가장자리에 일렬로 놓인 플라스틱 의자를 드르륵 끌어 그 위에 몸을 싣는다. 나는 물건을 옮기는데 여념이 없어 그들이 의자 위에 내려놓은 무게에 대해 짐작조차 않는다. 언젠가 바삐 움직이는 봉사단원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그 얼굴을 마주친 적이 있지만 금새 시선을 거두었다. 6시, 진료 시작을 알리는 PM의 말소리가 들린다. 예진 업무를 맡은 나는 노트북에 OCS 프로그램을 띄워놓고 서둘러 사람들을 맞이했다. 접수 고유 1번 김 할아버지를 필두로 평균 20여 명의 사람들이 매주 이 진료소를 다녀간다. 나는 이 곳에서 매주 똑같고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노트북을 앞에 두고 환자와 마주 앉은 나는 환자의 의료적 사정을 캐묻는다. 오늘은 어디가 불편하세요? 드시는 약은 있으세요? 다른 질병이나 수술 이력은 없으신가요? 누군가는 남 얘기를 하듯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묻지도 않은 이야기 보따리를 술술 풀어낸다. 불편한 부위부터 불편하고도 불편하지 않은 오래된 사연까지. 진료소의 이용자는 대부분 ‘홈리스’이다. 척 보기에 남루한 옷차림과 행색. 저절로 숨이 참아지는 겹겹이 눌려 쌓인 세월의 냄새. 인생의 파도가 만들어낸 주름과 각질. 검고 누런 때에 새겨진 저마다의 사정. 나는 이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이들의 모습에 거칠게 표현된 삶의 자취의 일말을 가만히 들여다 볼뿐이다. 사실을 마주한 뒤 나열되는 일련의 반응은 때때로 서로에게 고되기 때문이다.

챙이 달린 흰색 보호 헬멧을 쓰고 나타난 서 할아버지는 위암 생존자이다. 걸음마다 부스럭대는 펑퍼짐한 점퍼 아래엔 할아버지의 투병 흔적이 숨겨져 있다. 팔에 채워진 수동 혈압계가 헐렁할 만큼 야윈 골격이 그에게서 잘려나간 위장 쪼가리의 위력을 증명한다. 비쩍 마른 몸과 달리 언제나 담담한 몸짓과 말씨이다. “사람은 어차피 다 죽게 돼있어. 사는 동안 스트레스 없이 행복하게 살아야 돼.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야. 내가 스트레스 때문에 병에 걸렸어.“ 인생에 대해 날카롭게 읊는 체념적인 목소리에는 은근한 억울함이 서려있다. 저 천장 위 지상의 탁 트인 하늘과 완벽히 대비되는 이 회색 동굴 속에선 죽음도 멀지 않다. 나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삶의 진리를 정통으로 마주하게 된다. ”위를 잘라내고 순식간에 20키로가 빠졌어.” 아픈 사연을 덤덤하게 말씀하시니 듣는 사람은 더 아팠다. 위로를 건네야 할지 고민하던 내 입술 사이로 바람 빠진 울림소리들이 새어 나왔다. 남의 무거운 아픔으로부터의 잔잔한 도망이었다.

“안녕하세요. 성함이랑 생년월일 말씀해주세요.” 모니터를 바라보며 타자칠 준비를 하다 어눌한 음성에 고개를 쳐들었다. ”오늘 아팀브터 말이 잘 안 나아요. 갑다기 허가 안 음지겨서..“ 갑작스럽게 제 주인의 말을 거역하는 입 속 근육 덩어리는 완성되지 못한 문장을 뱉어내게 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전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남자는 2년 전에 지주막하출혈로 개두술을 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손끝으로 움푹 꺼진 오른쪽 관자놀이 부근을 가리켰다. 적당히 말랑한 점토를 끝이 둥근 방망이로 꾸욱 누른 듯한 모양새였다. 간이 진료소에서 감당할 수 있는 증상의 수준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여기 말고 큰 병원에 가보시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고, 남자는 어물쩍 옅은 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다시금 같은 말을 되풀이 하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의 의미심장한 표정에서 나는 실의에서 비롯된 무의를 읽을 수 있었다. 이유는 묻지 않았지만, 그 거동을 짐작건대 그에겐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바로 의사를 찾을, 아주 기초적인 삶의 녹록함조차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실체 모를 무언가를 향한 원망 비스무리한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 올랐다.

예진을 마친 그는 접수처를 지나 옆의 본진 부스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그에게 내려지는 진단을 확인하려 이런저런 잡음 속에서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 여기로 119를 불러야 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환자분 당장 병원 가보셔야 해요. 신촌 세브란스가 가장 가까우니까 거기 응급실로 가세요. 가서 검사받으시고…“ 단호하면서도 약간의 긴박감이 느껴지는 의사 선생님의 어조에서 우리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 공간에 있던 봉사 단원들, 대기하고 있던 다른 환자들은 일순간 정적을 이루고 남자와 의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정작 당사자인 남자는 짐짓 어색한 기색을 비추고는 쓴 웃음을 지으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병원에 가지 않을, 아니 가지 못할 것임을 확신하면서 나는 물끄러미 생각에 휩싸였다. 한 인간이 삶에 대한 의지를 스스로 내버려두도록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이었나. 그 자신인가 다른 누군가 인가, 다른 무엇인가. 남자는 자조 섞인 웃음의 대가를 스스로 치르고 있는 듯 보였다. 남자는 진료가 끝난 뒤, 병원이 아니라 진료소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진료소가 설치된 통로를 따라 왼쪽으로 꺾여 난 통로엔 사람 키만하게 펼쳐진 골판지 박스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 그 일련은 서울역 홈리스들의 보금자리이고, 그 가운데엔 혀가 마비된 남자의 집도 있었다. 당장 병원에 가라던 의사의 말을 묵살하고, 그는 거칠거칠한 박스 위에 몸을 누인 채였다. 나는 접수 중에도 몇 번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에 서서 멍하니 그 자리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남자의 안위를 살피느라, 분명하게 정의하지 못한 이상한 감정 안에서 헤엄치느라 내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마음 쓰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안절부절못하는 어린애처럼 우두커니. 옆자리에 앉아 함께 예진을 보던 단원도 나와 같은 심정인 듯했다. 혀 마비 질환, 뇌출혈, 통풍 따위의 증상을 검색하고 있는 찌푸려진 눈썹이 보였다. 단원은 이내 누워있는 그의 자리로 찾아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를 위하는 뜻을 전하였다. 무릎을 굽힌 채 남자에게 무어라 말하고 있는 단원의 뒷모습을 나는 다행스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내 손은 그에게 내밀어지지 못하였고, 그 마음은 허공에 멈추었다. 나는 몇 번이고 그에게 다가갔지만, 그것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없는 투명한 손길이었기에 공허했다.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이곳 홈리스 환자들의 둔중한 상처를 직면하는 것 그 자체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스스로 짐작하고 헤아리는 것에서 멈추고 만 것이다. 끝으로 전하지 못한 마음의 소용을 생각하며 내 마음이 그저 소모되어버린 것이 아니길 바랐다.

임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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