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례가 안 된다면 증원해주실 수 있을까요?”

“번거로우시겠지만 부탁드립니다.”

쿠션어는 부탁이나 부정적인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를 부드럽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다. ‘쿠션어’는 쿠션을 깔 듯 상대방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쿠션어는 부탁하는 상황에 국한되지 않고, 전략적인 언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어색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등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부드러운 어투 모두를 일컫는다. 언어 학계에서는 이를 ‘울타리어(hedge)’라고 지칭한다.

쿠션어는 말을 공손하게 전하는 느낌으로 인해 쿠션어를 여성이 쓰는 언어인 ‘여자어’라고 불린다. 말끝에 받침 ‘ㅇ’을 붙이거나 우는 눈을 형상화한 ‘ㅠ’를 붙이는 ‘애기어’와 함께 2030 여성이 사용하는 말투로 정형화됐다. 이에 2021년에는 쿠션어와 애기어의 사용을 금하는 ‘말투 탈코르셋’ 운동이 사회적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여자어’인 ‘쿠션어’...진짜 2030 여성이 쓰는 말일까

쿠션어가 여성어로 지칭돼 여성 억압을 거부하는 탈코르셋 운동의 대상이 된 것과 달리, 실제로 여성이 남성보다 쿠션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역사적 근거는 없다. 강소영 교수(국어국문학과)는 “현재 한국에서 여성이 쿠션어를 많이 쓴다고 연구된 바는 없다”며 “오히려 외국에서는 대학 남성이 고등학생 여성보다 문어체에서 울타리어를 많이 쓴다는 연구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강 교수는 “쿠션어는 성별뿐 아니라 학력 등에서도 사용 빈도가 차이가 나는 어투”라며 “단순히 여자어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뚜렷한 근거가 없음에도 쿠션어가 여자어로 불리는 이유를 ‘여성어’에 울타리어를 처음으로 포함한 미국의 인지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의 연구에서 찾았다. 레이코프는 1975년 “여성들이 가진 언어적 특징이 그들의 타고난 기질이 아닌 사회의 강요된 가치관에 의한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여성어를 ‘힘이 없는 사람들(powerless)의 언어’”라고 명명했다. 레이코프에 따르면 여성어는 총 여섯 가지의 특징을 갖는다. 그중 네 번째는 ‘생각의 불확실성을 나타내는 잦은 부가 의문문 사용’이며, 여섯 번째는 ‘정중하고 약한, 화자의 의지가 담기지 않은 방식의 명령문 사용’이다. 이때 레이코프가 여성어에 쿠션어를 포함한 것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강 교수의 설명이다.

쿠션어가 주는 부드러운 느낌이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연결돼 여자어로 불리게 됐다는 견해도 있다. 김선혜 교수(여성학과)는 “우리 사회는 여성이 직설적이고 강하게 주장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며 “(그로 인해)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의견을 부드럽게 표현하는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고 쿠션어가 여성어로 오해받게 된 사회적 맥락을 설명했다. 부드러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강한 주장을 펼칠 때 나타나는 사회적 거부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부드러운 이미지가 강화된다는 것이다.

쿠션어, 무조건적인 지양 대신 전략적 활용으로

본교 재학생 이서현(커미·22)씨는 쿠션어가 여성에게 여성스러움과 친절함을 강요하기 때문에 지양해야 하는 어투인 걸 알면서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말했다. 이씨는 “초면인 사람이나 윗사람과 대화할 때 부드러운 말투를 써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때문에 쿠션어를 사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쿠션어를 사용하다 보니 쓰지 않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쿠션어 사용을 지양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해 쿠션어의 이점을 인정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집중하는 견해도 있다. 강 교수는 진실을 가리거나 본질을 흐리지 않는 쿠션어 사용에 집중했다. 강 교수는 “똑같은 메시지를 전달해도 쿠션어는 일종의 방어막을 치고 들어가기에 굉장한 이점을 갖는다”고 말했다. 쿠션어는 상대방이 상처받지 않도록 하는 방어막 역할을 한다. 강 교수는 무조건적 지양이 아닌, 본질을 흐리지 않는 선에서의 쿠션어 사용을 권장했다.

쿠션어의 실질적 효력, 그에 앞서 필요한 논의는

고민희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여성성 강조를 목적으로 쿠션어를 사용한다면 정치적으로 좋은 전략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 의원들은 여성성을 강조해 부드럽고 약한 이미지를 줘선 안 되고, 남성처럼 거칠게 보여서도 안 되는 딜레마에 빠진다. 부드러운 느낌으로 극대화된 여성성이 ‘약함’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고 교수는 “부드러움이 곧 갈등이 없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사례를 제시하며, 일본어가 주는 느낌이 부드럽다고 해서 일본에는 갈등이 없는 게 아니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김 교수는 여성에게 부여된 성별 규범의 측면에서 쿠션어를 분석하며 코르셋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해 설명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부여된 딸, 아내, 며느리로서 역할과 관련 있다. 여성이 일차적으로 돌봄의 역할을 전담한다는 관념 속에서 ‘쿠션어’라는 형태의 언어가 여성에게만 권장되거나 강요된다면 쿠션어는 코르셋의 한 종류가 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이런 맥락에서 일어난 말투 탈코르셋 운동은 “사람들이 언어 사용의 성별화를 인지하고, 이에 대한 성찰이 활발히 이루어진다는 증거”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쿠션어의 여성어 규정에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쿠션어를 코르셋으로 규정해 지양하기보다는 본질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며 “남녀 모두가 사용하는 쿠션어를 여성들의 언어로 규정함으로써 여성을 힘없는 존재로 만들기보단 일부 여성에게 과도한 쿠션어를 사용하게 만든 사회지배구조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쿠션어를 언어학적 측면에서 정확히 인지한 뒤 사회구조와 그 맥락에서 성찰하는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많은 여성이 서비스업과 돌봄노동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과 쿠션어 사용이 여성적 언어로 여겨진다는 것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발전된 논의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쿠션어의 성별화와 효력, 나아가 말투 탈코르셋 논의를 하기 앞서 성별화된 언어 사용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세대와 계급 등과 같은 다른 문제에 대한 고민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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