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과학수사부의 9년차 DNA 감정관. 제주 전남편 살인사건,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 공주 교도소 살인사건, 부산 돌려차기 살인미수사건 등 여러 사건에서 범죄의 실체적 진실을 명확히 하기 위한 DNA 감정을 하고 있다.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명함을 교환하고 서로 하는 일을 소개한다. 명함이 오가고 나면 항상 비슷한 대화가 이어진다. 바로 다음과 같이.아, 대검찰청에 계세요? 네, 맞아요. 검사, 아니면 수사관? 하하, 둘 다 아니에요. 저는 DNA 감정관입니다. DNA요? 네, 형사 사건 의 증거물에서 DNA를 찾고 사건 관계인
김소영(디자인·22졸) 아모레퍼시픽 제품디자이너본교 시각디자인과를 2022년 졸업하고 아모레퍼시픽에서 3년 차 그래픽/제품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디자이너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편견이 가득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부정부터 하고 싶지만 솔직히 나의 경우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나 자신이 개인주의적 성향이 너무나도 강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회사는 끝나지 않는 ‘팀플 지옥’과 같다고들 하는데, 나처럼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은 사람이 어떻게 회사에서 디자이너로서 살아가고 있는지 삶과 고민을 글로
본교 학부에서 영어영문학을, 통번역대학원에서 통역을 전공했다. 2013년 대학원 졸업 후 7년 반 정도 프리랜서 한영 통역사로 활동했다. 3년 반 전부터 인하우스 통역사로 일하고 있다. 통역사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인공지능(AI) 시대에 앞으로도 통역사가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통역사라는 직업이 궁금한 이들을 위한 정보와 함께, 11년차 통역사로서 숨가쁘게 살아오며 느낀 소회를 적어보려 한다.통역사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소통을 돕는다. 주인공보다는 보조자 역할을 한다. 행사MC를 맡는 등 특수한 경우가
본교 학부에서 국어국문학을, 대학원에서 한국학(한국어교육)을 전공했다.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태국 씰라빠껀대학교 한국어학과를 거쳐 현재 미국 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언어문명학과 한국어 강사로 일하며 학부생 및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있다.대학 4학년, 프로듀서를 꿈꾸며 ‘언론고시’를 열심히 준비하던 때에 우연히 수강하게 된 라는 교양 수업이 내 인생의 방향을 한순간에 바꿔 버렸다. 지금은 옛말이 된 듯하지만, 당시에는 미래지향적 느낌이 물씬 풍겼던 ‘세계화’라는 단어에 관심이 갔고, 한국어
본교 불어불문학과를 2005년 졸업하고 한국일보문화사업단에서 미술 전시기획과 홍보 마케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모네전, 반 고흐전, 르누아르전, 고갱전 등의 대규모 회고전을 담당했다. 프랑스 유학 이후 K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일민미술관 선임 홍보로 근무했으며, 현재 독립 전시기획자로 일하며 AI를 활용한 예술교육 등 다양한 융복합적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큐레이터 처음 봐요. 근데 어떤 일 하시는 거예요?”직업이 ‘큐레이터’라고 하면 대부분 신기한 눈빛으로 궁금해한다. 요즘은 도슨트(전시
본교 사학과를 2009년 졸업하고 다음커뮤니케이션 동영상 제작팀, 도레이첨단소재 글로벌 탄소섬유 판매 및 마케팅을 담당했다. 한때 잠시 카페 창업을 했다가 현재는 LG사이언스파크에서 LG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 슈퍼스타트 홍보 및 스타트업 발굴·육성 업무를 맡고 있다.스타트업을 발굴, 육성하는 업무를 하면서 참 다양한 스타트업을 만나게 된다. 동물이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 문턱 높은 정신과 의원에 가지 않고도 앱 하나만으로 누구나 자기의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세상. 신진 예술 작가들이 메타버스 상에서 좀 더 쉽게 전
본교 사회학과를 2005년 졸업하고 2008년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기자로 일하며 기술의 발전과 그로 인한 산업의 변화를 목도하고 기술이 인간의 삶을, 제도를 바꾼다고 믿게 됐다. 현재 중앙일보의 프리미엄 구독 서비스 The JoongAng Plus 안에서 밀레니얼 양육자를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헬로 페어런츠(hello! Parents)’ 팀장으로 일한다. “(기사에) 쓸 말이 없다면, 네가 질문을 잘못한 거야.”16년째 기자로 사는 동안, 늘 가슴에 새기는 말입니다. 질문의 수준이 답변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얘기죠. 뜬금없이 ‘질
13년차 초등교사. 본교 초등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초등수학 분야에 관심이 많아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중이다. 현재 이화영재원(초등수학논리영역)에서 8년째 지도교사를 맡고 있으며, 2022 개정 초등수학 검정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올해는 본교 초등교육과 강의를 맡아 예비교사를 가르친다.처음 교사가 됐을 때 언젠가 다시 모교에서 후배들을 만날 수 있기를 소망했다. 올해 그 소망이 현실이 됐다. 후배들에게 배움을 나눠줄 수 있어서 그랬을까? 첫 강의가 있던 날, 이화의 교정을 내딛는 발걸음
본교 방송·영상학과를 2017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9년 채널A에 입사해 ‘하트시그널3’과 ‘프렌즈’ 팀에서 일했고 2021년 MBC 경력직 PD로 입사한 뒤 ‘나 혼자 산다’ 팀을 거쳐 올해부터 ‘놀면뭐하니?’ 팀에서 일하고 있다.어떤 이야기를 전하면 좋을지 고민에 잠겼다. 예능PD를 간절히 꿈꾸던 시절을 돌이켜보니, 항상 초췌한 몰골로 ‘힘들다’ 이야기하는 그들의 일상이 궁금했었다. 부족한 글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큰 틀에서 보면 콘텐츠 제작이라는 일이 비슷한 맥락 속에 흘러가겠지만,
본교 컴퓨터공학과를 2021년 졸업하고 곧이어 본교 엘텍공과대학원 인공지능·소프트웨어학 컴퓨터공학전공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어쩌다가 대학원생이 되셨나요?”라는 질문을 올해도 몇 번이나 들었다. 이런 질문의 대부분은 나를 향한 걱정과, 자신이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길에 대한 궁금증에서 해주시는 경우가 많다. 질문에 어려있는 애정을 충분히 느끼기에 감사하기도 하다. 하지만 질문에 대한 답으로, 길고도 긴 여정을 애써 축약해 웃음으로만 설명하게 되는 일이 많았기에 아쉬웠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진짜 답을 말해보려고 한다. 덧붙여 나는
본교 국제학부 1기로 2005년 졸업. 영국에서 석사학위 취득 후 2007년 대한민국 해군 장교로 임관, 약 8년간 공보장교로 복무하며 해군본부 등에서 제주민군복합항, 천안함 피격 사건 등 각종 이슈 및 위기관리를 담당했다. 현재 호주 외교통상부 소속으로 주한 호주대사관 선임공보관 직책을 수행 중인 동시에 본교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얘 이대 나온 여자야.”어느 영화에서 화제가 됐던 그 대사를 들어보지 않은 이화인이 있던가. 여중 여고 여대를 거쳐 당시 96% 이상 남자로만 이루어진 군대에 간 나는 매일 그
본교 사회학과를 2022년 졸업하고 곧이어 본교 법학전문대학원 법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해 현재 2학년으로 재학 중이다.“엄마, 로스쿨에 가보니까 법조인은 왜 똑똑해야만 하는지 알 것 같아.”얼마 전 엄마에게 한탄하듯 한 얘기다. 대학교 학부에서의 공부는 물론 파고들면 깊이 있고 어렵지만, 열심히만 한다면 시험을 무사히 치러낼 정도는 되는 분량이었다. 리트(LEET), 자기소개서, 면접의 과정을 거쳐 겨우 입학한 자대 로스쿨은 한 학기라는 짧은 시간 동안 방대한 양을, 생각보다도 더 완벽하게 소화해 내어야 좋은 성적을 거두는 곳이었다.
본교 경영학과를 2009년 졸업하고 삼성화재 해상보험팀으로 입사했다. 일반보험손익파트와 IFRS추진파트를 거쳐 현재 투자전략파트에서 인오가닉 전략수립 및 해외피투자사 관리, 글로벌 신흥시장 B2C 마켓 및 일반보험 시장 확대 전략 기획 등을 맡고 있다.요즘 유행하는 MBTI로는 ENFP(재기발랄한 활동가). 사람 만나길 좋아하고 항시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며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충동적 성향까진 갖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다는 보험회사에 다니게 될 줄 누가 알았던가. 별 사고 없이 무탈하게 지나가는 하루가 가장 큰 복인 보험회사
본교 수학과를 1981년 졸업하고 동대학원 전산학 석사, 미 매사추세츠공대 전자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큐어소프트 부사장, 파수닷컴 부사장직을 거쳐 2019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 3대 이사장으로 취임해 3년간 활동했다. 2019년부터 세계여성이사협회(WCD Korea) 비상임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정부의 IT국제표준화전문가(2001~2005년)로 선정됐고 ISLA국제보안전문가상(2015년), 여성정보인대상(2019년) 등을 수상했다.여러분은 혹시 ‘공대 아름이’라고 들어보셨나요? 2008년 한 통신사가 공과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수석연구위원으로 글로벌 소비재 섹터를 담당하고 있다. 2006년 입사 후 리테일 영업과 외화 채권형 상품 운용을 거쳐, 2016년부터 해외주식 컨설팅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부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자산관리를 기본 소양으로 여기고, 항상 돈의 흐름을 주시합니다. 참 이상하죠? 자산가일수록 돈을 쓰러 다니고 가난할수록 치열하게 부를 갈구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 반대입니다.지난 16년 동안 투자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자산의 크기와 금융지식이 비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산가들의 관심사는 부동산,
졸업 후 3년째 커머스 회사에서 패션, 뷰티, 매트리스, 안마기 등 다양한 상품을 마케팅하고 있다. 소신 있게 지내온 삶에 큰 파도가 일렁이는 요즘을 공유하고 싶다.초등학생 때부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엄마는 나에게 나이의 무게를 알려주었다. “이제 고학년이니까 스스로 해야 해.” “중학생이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성인이 되고 나선 내 인생의 운전대를 쥐었다. 27세인 나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30세, 40세, 그리고 노년의 삶이 너무나도 궁금하다. 그땐 무엇을 하고 있을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설렘과 두려
비건 간편식 브랜드 바로(VARO) 대표. 본교 서양화과를 2021년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뭐 해 먹고 살지?” 대학 시절 내내 따라다닌 질문이었다. ‘순수’ 미술(fine art)을 전공했고 소위 밥벌이는 당장 되지 않았다. 예술의 어떤 고고한 힘을 믿었는지 몰라도, 팔리는 무언가에 전념하고 싶지도 않았던 터도 있다. 그렇게 밥벌이를 고민하다가 정말 밥을 팔게 되었다. 비건 밥!현재 나는 비건 식품 스타트업 대표이지만 여전히 ‘(예술)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남긴다. ‘사업’도 한다. 어느
제1회 배달의민족 치믈리에 자격시험 수석 합격자. 에세이집 ‘치킨: 먹을 줄만 알았는데 시험에 들게 될 줄이야’를 최근 출간했다. 본교 행정학과와 여성학과를 2014년 졸업했다. 치킨값의 무게를 견디며 판교의 한 IT기업에 재직 중이다.'오늘부터 치킨의 미래는 김.미.정.님 손에 있습니다.’내 앞길도 막막한데, 치킨의 미래라굽쇼? 배달의민족(배민)이 주최한 제1회 치믈리에 (치킨+소믈리에) 자격시험에서 1등을 한 뒤 우리 집 앞에 걸렸던 현수막 문구다. 당시 나는 2년 휴학 후 더는 미룰 수 없는 졸업까지 한 어정쩡한 상태로, 취업
직장 생활 6년, 스타트업 대표 5년 차. 본교 건축학과를 2013년 졸업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면서 건축 공간이 가진 힘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현재 건축 여행 서비스 아키베어를 운영 중이다.졸업장을 받기도 전에 취직했다. 건축학과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한 듯 대형 설계사무소의 공채를 꿈꿨고, 합격했다. 흔히 말하는 건축학과 졸업 후의 ‘정석’의 길이었다.물론 처음 건축학과를 선택하고 나서는 많은 새내기들과 같았다. 이 길이 맞나 싶었다. 수시로 다양한 활동을 해보며 진로를 의심하고 검증해나갔다. 과연 이 분야가 적성에 맞
전 이노션 광고기획자. 전 브랜드 마케터. 지금은 갭이어를 즐기는 ‘쩝쩝박사’. 본교 소비자학과(광고홍보학 복수전공)를 2015년 졸업하고 7년간 성실히 회사와 집을 오가다 돌연 퇴사, 황홀한 갭이어를 보내고 있다. 갭이어 8개월 차, 무사히 행복하고 많이 웃고 먹는다. 굳이 특별해지려 노력하지 않는 일상의 힘을 느낀다. 숲과 바다를 누비며 프리랜서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공간에서 눈을 떠 노트북으로 자료를 만들고 미팅을 한다. 스몰 브랜드의 컨설팅을 진행하고, 제품 론칭 프로젝트의 PM으로 일하며 브랜드의 세계관을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