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디자인·22졸) 아모레퍼시픽 제품디자이너

본교 시각디자인과를 2022년 졸업하고 아모레퍼시픽에서 3년 차 그래픽/제품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디자이너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편견이 가득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부정부터 하고 싶지만 솔직히 나의 경우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나 자신이 개인주의적 성향이 너무나도 강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회사는 끝나지 않는 ‘팀플 지옥’과 같다고들 하는데, 나처럼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은 사람이 어떻게 회사에서 디자이너로서 살아가고 있는지 삶과 고민을 글로 담아보려 한다.

졸업 후 입사한 회사에서 브랜딩, 그래픽 디자인, 용기 및 패키지 디자인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현재 소속된 조직은 선임제도를 운용하지 않으며 개인별로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관리하는 구조다. 업무는 주로 프로젝트 기반으로 진행된다. 한 번에서 너 개의 큰 프로젝트와 여러 개의 소규모 프로젝트를 동시에 맡는다. 새로운 제품 기획이 주어지면 짧게는 2주에서 최대 3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주요 업무다.

신제품이 출시되기까지는 대략 반년에서 1년가량이 걸린다. 제품디자이너는 여러 단계를 거쳐 기획부터 출시까지 전 과정에 깊이 관여한다. 제품 콘셉트 회의를 시작으로 시장 조사, 경쟁 브랜드 분석 등의 백그라운드 리서치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 기획과 그래픽, 제품 디자인 작업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는 특히 보고를 위해 ‘목업 (Mock-up)’을 준비할 때가 가장 즐겁다. 목업이란 실제 제품을 만들기 전 디자인 검토를 위해 실물과 비슷하게 시제품을 제작하는 작업이다. 아무것도 없는 투명한 용기에 수십 가지의 색상을 명도, 채도, 투명도별로 세분화해 색칠하는 작업은 매우 매력적이다.

이렇게 시안이 확정되면 준비된 목업을 유관 부서로 이관하고, 제품 사양을 공유하는 회의를 진행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디자인 업무 는 대체로 마무리된다. 각 단계에서의 세심한 작업과 협업은 제품이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론칭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학창 시절 진로를 탐색하던 당시엔 특별히 특정 분야의 제품디자이너가 돼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미술과 공부를 잘하고 싶은 학생이 디자인을 잘하고싶은 학생이 됐고, 관련 공부를 거쳐 대학에 진학한 것과 마찬가지로 디자이너가 된 과정도 비슷했던 것이다. 많은 이들이 미래의 유망 분야나 취업에 유리한 전공을 고려할 때, 단지 적성에 맞고 내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분야에서 실력을 쌓아 나가고자 했다.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대형 학원에 다니거나 스펙 쌓기를 위한 동아리에 서 활동하기보다는 나만의 길을 걸으며 물 흐르듯 성장하길 바랐다. 나의 강한 개인주의적 성향과 작업 과정에 타인의 개입을 원치 않는 성격도 이러한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대책 없이 보였을 수 있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것 같다.

그런 방식이 운 좋게도 신규 브랜드의 총괄 디자이너로서 일할 기회를 가져다 주었고, 현재 회사에서 제품디자이너로서 일하는 지금으로 이어졌다. “소영님은 분명 좋은 디자이너가 될 거예요.” 존경하는 교수님이 내 졸업 작품을 보시고 해주신 한 마디는 3년차 막내 디자이너를 버티게 해주는 마법의 문장으로 아직도 남아있다.

회사에서는 다양한 품목과 브랜드를 담당하면서 디자이너로서 곤란한 순간이 자주 찾아왔다. 주로 브랜드의 방향과 맞지 않은 작업을 요청 받거나, 분명히 디자인에 변화를 주었는데도 우리 디자이너들만 알 수 있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변화를 두고 고민을 해야 할 때가 특히 그랬다.

이런 고민은 본인의 디자인 철학과도 부딪히곤 한다. 대학 시절에는 예술적 가치와 창의성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회사에서 실무를 담당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제품의 시장성과 소비자의 기대충족에 더 집중한다는 점이다. 시각적으로 매력도가 높은 디자인이 실제 사용에 있어서는 사용자의 불편을 초래하거나, 타사와의 경쟁에 있어 주목도가 떨어져 제품 가치가 하락하는 결과를 여러 차례 보아온 결과다.

가격대와 미적인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한 고려 요소 중 하나다. 누가 봐도 현대적인 트렌드를 반영한 멋있는 디자인이었지만, 제품 가격에 비해 너무 비싸보인다는 이유로 시안 채택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허다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보는 눈과 취향이 제각각인지라, 디자인은 개인에 따라 주관적인 평가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분야다. 그렇다고는 해도 심미성과 시장성 사이에 있어 좋은 디자인이 가져야 할 적정한 선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품 디자이너로서의 여정은 단순히 형태와 색상을 조합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 회사라는 커다란 시스템 속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색을 유지하면서도, 시장의 요구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아가며 좋은 디자인을 창출해내는 것이 내가 가야할 길이자 목표일 테다. 앞으로도 끊임없는 고민과 도전이 이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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