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경(사학·09년졸)
황선경(사학·09년졸)

본교 사학과를 2009년 졸업하고 다음커뮤니케이션 동영상 제작팀, 도레이첨단소재 글로벌 탄소섬유 판매 및 마케팅을 담당했다. 한때 잠시 카페 창업을 했다가 현재는 LG사이언스파크에서 LG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 슈퍼스타트 홍보 및 스타트업 발굴·육성 업무를 맡고 있다.

스타트업을 발굴, 육성하는 업무를 하면서 참 다양한 스타트업을 만나게 된다. 동물이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 문턱 높은 정신과 의원에 가지 않고도 앱 하나만으로 누구나 자기의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세상. 신진 예술 작가들이 메타버스 상에서 좀 더 쉽게 전시회를 열고, 더 많은 사람과 예술로 소통할 수 있는 세상. 스타트업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이를 위한 자기만의 아이디어에 기술을 덧붙여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들의 수많은 도전과 시도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드라마를 보듯 가슴이 설렌다.

내가 이화에 다니던 20년 전 그때 시절, 대부분 학생의 목표는 나를 안정적으로 받아 줄 좋은 조직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대기업 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 안정적으로 지내는 것. 좀 멋들어지려면 유명 외국계 기업에 취직하거나 고시를 거쳐 전문직이 되는 것. 이것이 많은 이들의 목표였으며 성공의 지표이기도 했다. 사업이라는 것은 망한 가장들이 걸리는 불치병 같은 것쯤으로 치부되었고, 창업을 꿈꾸는 친구들은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양한 자격증과 글로벌 리더십의 중요성이 강조됐지만 그러한 역량 역시 어느 회사에 취직하기 위한 덕목이었다. (정작 회사에서는 다양한 개성과 역량보다는 깨져도 버티는 맷집을 더 요구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질문 하나. 과연 그래서 행복한가? 자기소개서에는 회사의 비전이 곧 나의 비전이고 함께 성장하고 싶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비전은 무슨. 다들 가슴속에 사직서 하나씩 품고 매일 아침 출근을 한다. 하루 8시간(보통은 그 이상) 내 가족 내 연인과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비전도 없이 영혼도 없이 지내는 것이 과연 20대 청춘을 바쳐 준비한 결과가 맞는 것인지, 과연 이 일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맞는 것인지, 나는 행복한지…. 나이는 먹었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을 사춘기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요즘 세상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다양성이 중시되는 것 아닐까 싶다. 이 속에서 기회도 많아졌다. 거대한 조직이 모든 것을 이끌어 가기보다는, 이제는 개인도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를테면 꼭 방송국에 입사해 PD가 되지 않더라도 아이디어와 콘텐츠만 있다면 유튜브를 통해 자기 방송을 할 수 있다. 심지어 할리우드 스타가 방한할 때도 공중파 연예 TV 프로그램보다 영화 유튜버를 먼저 물색한다고 한다.

대기업 역시 지금까지는 큰 인프라와 조직에 기반을 두고 사업을 이끌어 왔지만,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더 빨리 혁신적인 동력을 얻기 위해 오히려 스타트업과의 협력에 주목하고 있다. 스펙은 중요하지 않다. 자기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고 뜻만 있다면 이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만큼이나 엄청난 패러다임의 변화가 아니겠는가. 이런 시대 속에서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나름의 답을 낸 사람들이 모인 곳이 스타트업이다.

과연 여기에 경영학 전공만이 유리할까? 코딩을 못 하면 불리한 것일까? 서점이나 도서관에 갈 것도 없이 유튜브만 찾아봐도 경영에 대한 수많은 콘텐츠가 뜬다. 뜻이 있다면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이 열려 있고, 유튜브 혹은 각종 강의를 통해 기술은 익힐 수 있다. 돈이 없어서, 자금이 부족해서? 청년 실업문제의 해결책 중 하나로 창업이 부상한 요즘, 정부나 공공기관은 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대기업은 비대한 조직이 스스로 생각하거나 시행하지 못하는 새로운 영역,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을 초기에 먼저 발굴해 함께 협력하기 위해 다양한 루트를 준비하고 스타트업을 찾는다.

나의 아이디어가 너무 작아서 밥은 벌어 먹고살까 걱정일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글로벌이다. 너무 개인적일 것 같고 소소할 것 같아도 이 소소함을 전세계에서 끌어모은다면 스케일은 남달라진다.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 역시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움이 필요하다면 기업가 교육 과정도 있다고 알고 있다. 못 한다는 변명을 하기에는 이미 너무 방법이 다양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와 그에 대한 자기만의 해결책이며 ‘그까짓 거 한번 해 보자’ 하는 무모한 듯 담대한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자기소개서 질문에 답하기 전, 조금 더 세상을 들여다보고 더 치열하게 부딪혀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뜻을 조직에서 펼치고 싶으면 마음껏 원하는 회사에 지원하되, 도무지 조직이라는 그릇이 나의 뜻을 품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또 다른 길이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흥하면 좋은 것이고, 거기서 망해도 청춘! 자소서만 ‘광탈’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경험이 아닐는지. 이화인들의 청춘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한번 멋지게 흔들어 보는 그런 청춘이기를 응원해 본다.

황선경(사학·09년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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