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정(행정·14년졸) 에세이 작가
김미정(행정·14년졸) 에세이 작가

제1회 배달의민족 치믈리에 자격시험 수석 합격자. 에세이집 ‘치킨: 먹을 줄만 알았는데 시험에 들게 될 줄이야’를 최근 출간했다. 본교 행정학과와 여성학과를 2014년 졸업했다. 치킨값의 무게를 견디며 판교의 한 IT기업에 재직 중이다.

'오늘부터 치킨의 미래는 김.미.정.님 손에 있습니다.’

내 앞길도 막막한데, 치킨의 미래라굽쇼? 배달의민족(배민)이 주최한 제1회 치믈리에 (치킨+소믈리에) 자격시험에서 1등을 한 뒤 우리 집 앞에 걸렸던 현수막 문구다. 당시 나는 2년 휴학 후 더는 미룰 수 없는 졸업까지 한 어정쩡한 상태로, 취업 준비생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준비를 위한 무언가를 했다 하기도 무색했으니 취업 준비생이라는 이름마저 과분했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도둑놈 심보에 가까웠다. 아무 것도 안 하면서 무언가 되어 있길 내심 바라고 있었으니 말이다. 로또를 사지도 않았으면서 로또 1등이 되지 않는다고 진심으로 실망하고 좌절하는 셈이었다. 아니 다시 고백하자면 사실은 무엇도 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목표를 위한 노력과 방법을 따지기보다는 기회비용의 계산에 빠져 아무 목표도 선택하지 않으려 했으니까. 결론적으로 나의 휴학과 졸업 사이는 ‘아무것도 안 하기’, ‘하고 싶은 것만 하기’ 그 자체였고 사태는 다소 심각해서 ‘이 한목숨, 때가 오면 숭고하게 산화하리라…’라는 다소 유별나고 위험한 생각까지 품고 있었다. 이것이 우울의 한 갈래였음을 알게 된 건 한참 후의 일이다.

게으름과 실패를 인정하긴 싫어 무기력의 늪에 빠진 나날이었음에도 나를 움직이게 만든 동력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치킨. 미팅에 나가 동태눈으로 앉아있다가도 이내 안주로 치킨을 시켜야 한다며 목소리를 드높였던 나. 종합과학관으로 올라가야 하는 공강 시간에 굳이 홀로 교문 밖을 나서 KFC를 찾아가던 내가 있었다. 훗날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대학 생활에도 존재했었나보다.

배달앱이 등장하기 전, ‘기회비용 집착인’ 답게 어떤 치킨을 선택할 것인가 치열한 고민과 계산을 반복하던 나는 메뉴 결정에만 최소 30분을 소모하고는 했다. 마침내 피할 수 없이 맞이한 졸업, 내 안에 남아있던 털끝만치의 양심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치킨 선택의 소요 시간은 60분을 훌쩍 넘기기 시작했다. 치킨값의 무게를 실감하고 직접 견뎌야 할 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이 들으면 의아할 정도로 단순한, 오늘의 치킨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안 하기’의 시대가 가고 ‘아무거나 해 보기’의 시대가 왔다. 이력서를 쓰고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지원했다. 기회비용의 계산? 필요 없었다. 당장의 급여 없이는 치킨도 없었기 때문에 따지고 가릴 처지가 못 되었으니까. 치킨을 자주 먹으려면 정산이 빠른 것이 좋았기에 자연스레 나는 단기 아르바이트의 달인이 됐다. 패밀리 세일, 콘퍼런스, 학회, 수출 관련 행사, 비트코인 행사 진행부터 선물 세트, 화장품, 농산물, 전자기기 판매까지. 짧게는 하루, 길게는 2~3주의 아르바이트로 최대 한 달을 하루의 휴일 없이 일하기도 했다.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에 참여할 당시 사용한 수험표 사진.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에 참여할 당시 사용한 수험표 사진.

숨 돌릴 틈 없는 나날을 보내고 나서야 주말의 소중함은 평일에서 온다는 것을 느지막이 깨달았다. 아르바이트비로 치킨을 사 먹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내가 그렇게 열심히 계산하던 기회비용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허탈하기도 했다. 목적지만 정한다면 주행을 도와줄 내비게이션이 학교에도 지역사회에도, 아니 지천으로 깔려있었다. 어디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나는 걷고 또 걷기만 했고, 21세기에 과거시험 보러 한양 가는 선비마냥 걸어 걸어 결국 취업이라는 길에 도착을 하긴 했다. 애초부터 IT기업 취업이라는 목적지 도착을 위해 내비게이션을 사용했다면 빨리는 왔겠지만 오늘에 대한 감사함은 알지 못했을 것 같다는 위로를 해본다. 결국은 치킨값을 벌어 치킨을 사 먹고 주변 사람들과 웃고 내일을 기다리는 보통 사람으로 살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이걸 알아채는 게 그렇게나 어려웠더랬다.

내가 저자로 참여한 세미콜론 출판사의 ‘띵’ 시리즈는 저자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에세이집이다. 치믈리에 자격으로 나는 치킨 편을 썼다. 무슨 대단한 이야기가 숨어있지는 않다. 그저 읽는 사람들이 다양한 치킨을, 더 행복하게 먹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책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출간을 함께한 편집자 역시 이화의 벗이다. 누가 알았겠는가? 먹을 줄만 알았던 치킨으로 전국 수석이라는 타이틀에, 책을 출간하고 이렇게 글까지 전할 수 있게 되다니 먹은 치킨만큼의 날개가 달린 것이 아닌지. 감격스러운 일이다.

평생 행복을 줬던 치킨이라는 매개체는 나의 두둑한 백이 되었고 에세이 저자라는 새로운 경험까지 가져다주었다. 경로 이탈자인 나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말이 멀다고 투덜대면서도 내일 먹을 치킨이 기다려지고 그 치킨값을 위해 오늘도 출근한다. 소위 ‘갓생’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지금, 나의 20대보다 훨씬 건강하고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벗들에게, 또 어딘가에서 주말과 퇴근까지의 시간을 헤아리고 있을 벗들에게, 힘이 될 치킨 한 마리를 권하고 싶다.

시원한 맥주와 함께여도 좋고 달콤한 치즈볼과 함께여도 좋다. 치킨은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기에 더 단단한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한다. 많이 웃고 많이 추억할 수 있는 나날들의 연속이길 기원한다. 누군가는 건강을 이유로, 누군가는 다이어트 때문에, 치킨을 경계하겠지만 피자와 떡볶이 그리고 마라탕보다는 치킨이 훨씬 낫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미정(행정·14년졸) 에세이 작가·치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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