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연(수학·81년졸) 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
안혜연(수학·81년졸) 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

본교 수학과를 1981년 졸업하고 동대학원 전산학 석사, 미 매사추세츠공대 전자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큐어소프트 부사장, 파수닷컴 부사장직을 거쳐 2019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 3대 이사장으로 취임해 3년간 활동했다. 2019년부터 세계여성이사협회(WCD Korea) 비상임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정부의 IT국제표준화전문가(2001~2005년)로 선정됐고 ISLA국제보안전문가상(2015년), 여성정보인대상(2019년) 등을 수상했다.

여러분은 혹시 ‘공대 아름이’라고 들어보셨나요? 2008년 한 통신사가 공과대학에 여학생이 드물었던 현실을 반영해서 만들었던 광고에 나온 말입니다. 제가 대학을 다녔던 1970~80년대는 전국 대학 공학계열 여학생의 비율이 1.2%밖에 되지 않을 만큼 이공계에 여성의 과소 대표 현상이 매우 심했습니다.

이공계로 유입되는 여학생 비율이 왜 이렇게 낮았을까요? 여성이 남성보다 수학·과학 분야의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않습니다. 이 순간에도 현장에서 크게 활약하고 계신 여성 과학기술인들만 보더라도, 원론적인 능력에 따른 문제는 아님을 누구나 아실 것입니다. 여성의 이공계 유입이 더딘 이유는 사회가 만들어낸 고정관념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의 놀이부터 장래희망에 이르기까지 ‘성별에 따라 무엇을 해야 한다’라는 사회적 통념이 뿌리 깊었습니다. 이것은 해외에서도 ‘stereo type(스테레오 타입)’이라는 용어로 많이 연구되고 있기도 합니다. 한 예로 과거에 여학생이 블록, 과학 교구 상자 등을 조립하고 있으면 대부분 의아한 눈빛을 보내곤 했으니깐요.

4차 산업 혁명 시대가 도래하고, 기술적 우위가 국제정치의 패권을 지배한다는 ‘기정학(技政學)’ 시대인 지금은 어떨까요? 제가 대학을 다닐 때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여성의 공대 유입률은 여전히 20%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국가 경쟁력을 대변하는 상황에서 아직도 더 많은 여성이 이공계로 유입되지 않는 것은, 과학기술계 선배로서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여러분도 몸소 느끼시겠지만,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세계 강대국은 너나 할 것 없이 과학기술 패권을 위해 자국에 유리한 법안과 정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미래 사회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 ‘12대 전략기술’을 선정하고 100만 디지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각종 정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두드러지면서 자연스럽게 과학기술 분야 인재 육성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래 일자리가 로봇·AI로 대체된다고 하더라도 과학기술의 혁신은 결국 사람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나라의 전망을 살펴볼 때 가장 큰 문제점은 인력입니다. 우리나라는 5년 내 이공계 인재가 5만 명가량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며 모든 분야에서 인재 육성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국내 출생률이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2020년 사상 첫 ‘인구 데드크로스’가 발생한 마당에 인재 수급 전망은 좋지 않습니다. 그나마 육성된 인재도 매년 4000여 명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실정입니다.

과학기술 인재 부족 문제, 해답은 무엇일까요? 여성인력 활용이 좋은 대안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여성인력 중 과학기술계 종사자는 20% 수준인 반면, 남성은 50.1%가 이공계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이공계 분야 종사율을 50%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면 과학기술 인력 확보에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미 미국, 유럽, 호주 등에서는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의 여성인력 활용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여성 경제 참가율이 높은 나라에서 왜 STEM 분야 여성인력을 정책 우선순위로 두고 생각할까요. 단순히 인력 수급 해결 외에도 더 긍정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이공계 유입 확대는 연구개발 성과와 과학기술력을 전반적으로 제고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조직 내 다양성과 포용성이 생산성을 높인다는 결과는 수많은 연구를 통해서 증명되었고요. 과학기술계에서 여성인력을 더 주목하는 이유는,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과학기술의 변화를 앞두고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접근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미국은 ‘과학기술 교육·연구개발 분야의 다양성과 포용성 제고를 위한 지침’ 보고서를 내놓았고 영국 역시 ‘STEM 인력의 다양성 제고를 위한 권고 조치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STEM 분야의 다양성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국가적인 관점에서도 중요한 일인 동시에, 여성 스스로에게는 사회 발전을 위한 더 많은 역할을 가져갈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인력이 필요하고, 또 여성이 주목받고 있는 과학기술계에 진로를 준비하는 후배님들에게 저는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세요!’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끊임없이 급변하는 사회에서 도전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얻을 수 없습니다. 물론 과학기술 분야가 여성에게 불리하다거나, 남성 위주의 업무 환경이 조성돼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 때문에 걱정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일 뿐입니다.

제가 과학기술 산업 분야에 몸담고 있을 때, 업무를 하거나 미팅을 하러 가면 늘 여성은 저 혼자였습니다. 누군가는 ‘혼자만 여성이어서 힘들겠다’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오히려 저는 소수자로서 어딜 가나 저의 존재를 쉽게 각인시킬 수 있는 것이 저만의 강점이라고 믿고 그 강점을 충분히 발휘했습니다. 여러분도 눈앞에 닥친 문제와 일에만 매몰되어,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발짝 물러서서 현재의 어려움을 기회로 생각하고 용기 있게 여러분이 원하는 길에 뛰어드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뛰어드세요. 여러분에게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기회가 있으니까요.

안혜연(수학·81년졸) 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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