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태경(국제·05년졸) 주한호주대사관 선임공보관
류태경(국제·05년졸) 주한호주대사관 선임공보관

본교 국제학부 1기로 2005년 졸업. 영국에서 석사학위 취득 후 2007년 대한민국 해군 장교로 임관, 약 8년간 공보장교로 복무하며 해군본부 등에서 제주민군복합항, 천안함 피격 사건 등 각종 이슈 및 위기관리를 담당했다. 현재 호주 외교통상부 소속으로 주한 호주대사관 선임공보관 직책을 수행 중인 동시에 본교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얘 이대 나온 여자야.”

어느 영화에서 화제가 됐던 그 대사를 들어보지 않은 이화인이 있던가. 여중 여고 여대를 거쳐 당시 96% 이상 남자로만 이루어진 군대에 간 나는 매일 그렇게 호기심의 대상이 됐다. “야, 넌 군대 왜 왔냐?” 새로운 선배를 만날 때마다 받던 그 질문에 “한 국가 힘의 근원인 ‘하드파워’의 핵심이 되는 군(軍)에 관심이 많았다”라고 진심의 답변을 하던 나는 어느 날 투사가 되어 있었다.

그 질문이 단순한 호기심밖에 되지 않는다고 느낀 순간에는 “남자들이 부리는 그 ‘군대부심’이 뭔지 궁금했다”는 말이 나가곤 했다. 상명하복이 엄격한 군에서 나는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내가 내는 다른 의견이 묵살되지 않았던 것은 같이 일했던 선배 복과 해군 공보실 특유의 열린 분위기도 있었지만 타당한 이의 제기를 당당하게 할 수 있었던 내 자신감도 한몫했다. 물론, 여군에게는 좀 더 관대했던 군내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인정.

나는 그런 요인들을 이용해 내 의견은 물론 계급상 약자의 위치에 있던 후배 장교, 부사관, 수병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몇 되지 않는 여군 장교로서, 해군 내에서는 공보정 훈병과 일원으로, 전체 군에서는 해군 장병으로,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한 명의 군인으로서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개인적 책임감도 있었다. 그 당당함을 가지기 위해 스스로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던 나는 선후배를 불문하고 ‘무서운 사람’으로 통했다. 그런 내가 장기복무자로 선발됐음에도 전역을 결정하고 해군을 떠날 때 아쉬워하던 선후배들을 보며 ‘내가 잘못 살진 않았구나’ 하는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전역 후 공보장교의 경력을 살려 합류한 주한 호주대사관에서도 난 그렇게 당당하다. 호주 외교통상부 소속으로 호주 공무원에 준하는 강령에 따라야 하는데, 더 보수적인 한국 공무원 사회 그리고 더 엄격한 군 출신의 나로서는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도리어 좀 더 열린 마음의 합리적인 토론이 더욱 가능한 곳이었으니 목소리를 내기 용이했다고 할까. 그런데도 또다시 누군가를 대변하는 상황은 있고, 그렇게 난 다양성 강화 및 괴롭힘 방지 담당관이라는 감투를 쓰게 됐다.

대사관이라고 해서, 흔히 말하는 선진국이라고 해서 우리가 사는 사회와 다르진 않다는 점은 해군에서 미군과 긴밀히 일하면서 그리고 호주 공무원 체계에서 일하면서 매번 느낀 것이다. 사람은 다르지 않으나 사회를 만드는 제도와 규범이 다를 뿐이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 위해, 그리고 다른 의견을 내기 위해서는 늘 근거와 규정을 따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만의 모토는 ‘나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다른 이들에게는 너그럽게’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 자신 그리고 누군가를 대변해 당당하기 위해 가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라 생각한다.

이 당당함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낯간지러운 말일 수도 있지만 난 그 힘을 이대에서 계승 받았다고 생각한다. 나뿐만 아니다. 사회에서 만나는 이화인의 모습은 책임감 있는 당당한 사람이었다. ‘이대 나온 여자’로 통칭하는 우리가 어떤 롤모델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한다면 좋은 출발점이라 생각한다.

칼럼 의뢰를 받고 많이 고민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을 20년 차이의 후배들에게 어떤 영양가 있는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과는 조금은 다른 길을 걸어왔던 나도 재학 중에도, 졸업 후에도, 전역 후에도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이 미래를 고민했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수많은 실수와 실패도 겪었다. 오판도 많았고 돌이켜 보면 철없는 생각과 언행도 많았다. 더 어렸을 때는 타인의 아픔이나 어려움에 공감하기 쉽지 않았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올챙이 적 시절을 거쳐 배운 점을 전달하고 싶었다. (아하, 이렇게 어른들이 노파심과 잔소리가 늘어가는 것인가. 또다시 깨닫는다.)

‘항상 당당하라’는 말에 담긴 속마음을 조금 더 솔직하게 전하며 부족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주어진 일을 충분히 해내야 한다. 그 기본을 충족시켰을 때 다른 의견도, 항변도, 그리고 새로운 길도 개척할 수 있다. 조금은 특이한 직업을 거쳐 왔어도 사람 사는 이치는 같았다. 기본을 지키고 그 위에 나만의 탑을 쌓아야 한다.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기초를 다지고 책임감을 축으로 약간의 정의감과 이타심의 살을 더해 보자. 혹자는 “나 하나 살기 힘든 세상 오지랖 부리지 말자”는 일견 타당한 말도 하겠지만, 언제나 사회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 온 이화인의 정신을 이어보는 거다. 모든 순간 치열한 전선에 서 있는 우리 모두, 당당한 이화인이 될 수 있길 바란다. 그렇게 나 자신도, 이 사회도 조금씩 변해갈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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