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화 프리랜서 마케터
유선화 프리랜서 마케터

 

전 이노션 광고기획자. 전 브랜드 마케터. 지금은 갭이어를 즐기는 ‘쩝쩝박사’. 본교 소비자학과(광고홍보학 복수전공)를 2015년 졸업하고 7년간 성실히 회사와 집을 오가다 돌연 퇴사, 황홀한 갭이어를 보내고 있다. 

갭이어 8개월 차, 무사히 행복하고 많이 웃고 먹는다. 굳이 특별해지려 노력하지 않는 일상의 힘을 느낀다. 숲과 바다를 누비며 프리랜서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공간에서 눈을 떠 노트북으로 자료를 만들고 미팅을 한다. 스몰 브랜드의 컨설팅을 진행하고, 제품 론칭 프로젝트의 PM으로 일하며 브랜드의 세계관을 만드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성공적으로 해내는 일의 관성을 믿는다. 곧 황홀한 갭이어를 마치고 갭투자를 향해 달려갈 테지만. 확실한 건 작년 여름, 나는 나와 뜨겁게 손을 맞잡고 제대로 한 발짝을 떼었다는 사실이다.

대학 시절 교내 영자 신문사에서 일할 때까지만 해도 기자가 되고 싶었다. 전국을 누비며 사람 사는 이야기를 모으고 요리조리 내 생각을 더해 맛깔 나는 기사를 쓰고 싶었다. 역시 꿈은 계속 변하는 걸까. 졸업반이 된 나는 어느새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남을 광고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광고회사 취업 준비를 할 땐 매 순간 불안했고 매 순간 도움이 필요했다. 당장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자기소개서 항목이 너무 많았고 각종 자격증 취득이 급했다. ‘충분히 잘하고 있다’라고 말해줄, 업계에 계신 선배가 간절했다. ‘제발 이거 하나만 물어보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절실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닿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밤마다 선릉역 주변을 뱅뱅 돌았다. 

광고 말곤 하고 싶은 게 전혀 없었다. 취업 스터디에 매일 참석했다. 늦은 밤 돌아온 집에서 대학 내내 모아왔던 각종 디자인, 아트 잡지들과 자주 내 생각을 써 내려갔던 블로그 글들을 한참 복기했다. 내 안에 답이 있다고 믿었다. 취업을 준비할 때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우리 자신뿐이다. 시험장에서도, 면접관 앞에서도. 여기저기서 주운 시험 후기들을 기반으로 예상 문제 한 세트를 반복해서 계속 다른 답변을 내보는 연습을 했었다. 그 시절 이런 결심을 했다. 광고대행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후배는 무조건 한번은 만나 돕자(지금까지 이 결심을 지켜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해 겨울, 현대자동차 그룹 광고대행사 이노션월드와이드에서 광고기획자로 일을 시작했다. 

우당탕 1년 차 시절 내 머릿속은 주로 ‘어떡하지’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뱅뱅사거리 높은 빌딩 사이 천장이 높았던 건물 19층, 처음 보는 사람들과 잘 보여야 하는 사람들, 처음 해보는 일들에 적응하기 바빴다. 밥 먹듯 야근, 밥 먹듯 외근이 이어지는 날들. 현대카드 코오롱스포츠 유니클로 야놀자 등의 무수한 광고 및 캠페인을 집행했다. 온종일 전화기에 불이 난 듯 쏟아지는 연락을 받다 보니 오른쪽 귀는 매일 펄펄 끓는 토마토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매번 최고의 전략, 최고의 아이디어로 맞서 싸워야 하는 전쟁터 한복판에서 후회 없이 뛰었다. 저녁 회의 전 시켜 먹던 짜장면과 피자, 분식이 질려갈 때쯤 바나나 하나를 들고 옥상에 올라가 “여기 사람이 있어요!”라고 소리친 날도 있었다. 나의 첫 번째 회사는 시작부터 끝까지 뜨거운 여름이었다.

2년 전 나는 기쁜 마음으로 첫사랑이었던 이노션을 졸업하고 배달의민족 브랜딩팀으로 이직했다.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는 하루하루는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던 나날들과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공유된 브랜드 전체의 방향성을 향해 모두가 함께 달려 나갔다. 각자의 프로젝트로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며 빠르게 의견을 공유하고 결정해 흩어졌다. 빠른 결정과 실행, 그리고 실패를 가끔은 더 좋은 성공이라 여기는 조직문화에 익숙해질 즈음 코로나19로 인해 전일 재택을 선택한 회사의 업무 방식에 지쳐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작년 여름 어느 날, 마라톤 회의를 마치고 고개를 들자 집 안 구석구석 파고든 오후 4시의 여름빛이 눈에 들어왔다. 종일 윙윙거리는 노트북 앞에 앉아 끙끙거리고 있는 내가 좀 웃겼다. 아니 슬펐다. 됐고! 오로지 나의 행복을 위해 움직이고 싶었다. 퇴사를 결심한 여름밤 창문을 열어 나른한 밤공기를 흠뻑 마시고 나니 몸과 마음이 오랜만에 또렷해지는 기분이었다. 

꼬박꼬박 월급이 꽂히는 25일이 없는 이 시절,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생각한다. 봄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온몸으로 느끼며 내가 잘하는 일, 잘하고 싶은 일, 차차 이뤄내고 싶은 일들을 명확하게 정리한다. 우리는 작전상 우회와 후퇴를 배우지 못한 까닭에 쉬지 않고 달려 나간다. 한창 최전선에서 달리던 7년 차 마케터가 궤도를 수정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다. 확실한 건 잠시 멈춰 나를 돌보지 않으면 내 인생에 주어진 작은 기쁨부터 큰 행복까지 맛볼 수 없다는 것. ‘앞으로 몇 살까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깊은 고민을 이어가며 하루를 보낼 때 인생이 더욱 충만해질 수 있음을 믿는다. 

이번 여름엔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뭐든 재밌는 일에 달려들 나란 걸 잘 안다.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하는 삶을 위해 운을 모으고 있는 이 시절, 재미를 잃지 마요, 우리! 

유선화 프리랜서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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