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언(사회·05년졸) 중앙일보 기자
정선언(사회·05년졸) 중앙일보 기자

본교 사회학과를 2005년 졸업하고 2008년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기자로 일하며 기술의 발전과 그로 인한 산업의 변화를 목도하고 기술이 인간의 삶을, 제도를 바꾼다고 믿게 됐다. 현재 중앙일보의 프리미엄 구독 서비스 The JoongAng Plus 안에서 밀레니얼 양육자를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헬로 페어런츠(hello! Parents)’ 팀장으로 일한다.

 

“(기사에) 쓸 말이 없다면, 네가 질문을 잘못한 거야.”

16년째 기자로 사는 동안, 늘 가슴에 새기는 말입니다. 질문의 수준이 답변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얘기죠. 뜬금없이 ‘질문’ 얘기를 꺼낸 건, 질문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섭니다.

그런 생각이 든 건 챗GPT 때문입니다. 챗GPT는 출시된 지 5일 만에 100만 사용자를 모았습니다. 역대 최단 기록입니다. 이전 기록을 가진 건 인스타그램이었는데요. 100만 사용자를 모으는 데 두 달이 걸렸습니다. 챗GPT가 확실히 ‘물건’이긴 한 모양입니다.

 

인간 언어를 쓰는 컴퓨터의 의미

챗GPT에 접속하면 네모난 창이 하나 보입니다. 검색엔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뭔가를 쳐서 넣고 엔터를 누르는 순간 완전히 다른 경험이 펼쳐집니다. 엄청나게 많은 검색 결과를 제시하는 검색 엔진과 달리 챗GPT는 답을 주거든요. 설령 그 답이 틀릴지언정 말이죠. 이것이 의미하는 건 뭘까요?

챗GPT는 거대언어모델(LLM)이라 불리는 인공지능(AI)입니다. LLM이 이전의 컴퓨터 시스템과 완전히 다른 점은 ‘인간의 언어’를 한다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인간이 컴퓨터 언어를 배워야 했습니다. 코드를 짜는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그랬죠. 전문가 수준으로 엑셀을 사용하려면 다양한 명령어를 배워야 하잖아요. 검색도 마찬가집니다. 전문가 수준의 검색 결과를 얻으려면 몇 가지 명령어를 써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컴퓨터 언어를 몰라도 됩니다.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쓰기 시작했으니까요. 인류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줄 거라는 AI를 사용하기 위해 갖춰야 할 별도의 지식은 없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쉽습니다. ‘어시스턴트’가 생겼다고요. 제 경우라면, 취재를 도와주는 어시스턴트, 수습기자가 생긴 셈입니다. 다년간 수습기자와 일하면서 깨달은 건 ‘어떻게 질문하고 무엇을 요구하느냐에 따라 취재 품질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LLM이라 불리는 AI도 마찬가지예요. 어떻게 질문하느냐, 무엇을 요구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수준의 답을 내놓습니다. 이걸 부르는 전문용어까지 생겼죠. 바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입니다.

 

기자가 추천하는 질문 잘하는 법

질문을 잘하는 법이 있습니다. 수많은 인터뷰 끝에 알아낸 가장 강력한 방법은 구체적으로 묻는 겁니다. 알고 싶은 게 구체적이고 선명하면, 좋은 답변을 얻습니다. 그러려면 배경지식이 있어야 하죠. 아는 만큼 질문할 수 있습니다.

배경지식을 쌓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연 책 읽기입니다. 누군가의 강의를 듣는 것도 방법일 텐데요. 학습에 관한 여러 연구에 따르면, 듣는 공부보다 읽는 공부가 더 효과적입니다. 듣는 공부는 수동적이지만, 읽는 공부는 능동적인 행위이기 때문이죠. 읽는 공부를 하고 토론하거나 글을 쓰면 그 효과가 더 커집니다. 토론하거나 글을 쓰는 건 읽는 것보다 훨씬 더 능동적인 행위니까요.

능동적 공부의 핵심은 ‘생각하기’에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용을 파악하는 것도 사고를 요하지만, 토론하고 글을 쓰기 위해선 더 입체적이고 깊은 사고를 해야 하죠. 왜 그런지 질문도 해야 하고, 내 입장은 뭔지도 정리해야 하고, 남의 입장에 반박도 해야 하니까요. 결국 질문을 잘하려면 생각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독서와 토론, 글쓰기는 사고력을 키우는 훈련법인 셈이고요.

 

AI 시대, 문과생의 경쟁력

챗GPT가 등장한 이후 ‘프롬프트 엔지니어’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겼습니다. 원하는 답변을 얻기 위해 어떻게 질문할지를 찾아내는 전문가를 뜻합니다. 인터넷 시대 초기 ‘정보검색사’란 직업이 있었던 것처럼, LLM을 상대로 원하는 답을 얻어내는 기술을 가진 직업이 생겨난 겁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되려면 코드를 짤 줄 알아야 할까요? 전혀 아닙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의 핵심 역량은 코드를 짤 줄 아느냐가 아니라, 인간의 언어를 하는 이 컴퓨터 시스템으로부터 얼마나 양질의 답변을 얻어내느냐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질문하는 역량입니다.

비단 프롬프트 엔지니어의 문제일까요? 인터넷이 일반화되면서 정보검색사라는 직업이 사실상 사라진 것처럼, 프롬프트 엔지니어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글이나 유튜브에서 검색하듯 LLM을 실시간으로 쓰는 시대가 머지않아 열릴 겁니다. 전문가들은 “10년 안에 모든 사람이 AI를 업무와 생활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질문하는 힘은 AI 시대, 모든 사람이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이 될 겁니다.

기술이 궁극의 수준으로 발달하면, 기술을 몰라도 그 누구보다 잘 쓸 수 있습니다. AI가 그걸 가능하게 만들고 있고요. 기술이 완전히 지형을 바꾼 미디어 산업 현장에서 아직 살아남은 문과생(사회학 전공) 선배가 이화인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AI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책을 많이 읽으세요. 질문하는 힘을 가졌다면, AI 시대에 우리는 더 큰 기회를 잡을 겁니다.

정선언(사회·05년졸)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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