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아 (영문·08년졸) 통역사
황현아 (영문·08년졸) 통역사

본교 학부에서 영어영문학을, 통번역대학원에서 통역을 전공했다. 2013년 대학원 졸업 후 7년 반 정도 프리랜서 한영 통역사로 활동했다. 3년 반 전부터 인하우스 통역사로 일하고 있다.

 

통역사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인공지능(AI) 시대에 앞으로도 통역사가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통역사라는 직업이 궁금한 이들을 위한 정보와 함께, 11년차 통역사로서 숨가쁘게 살아오며 느낀 소회를 적어보려 한다.

통역사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소통을 돕는다. 주인공보다는 보조자 역할을 한다. 행사MC를 맡는 등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통역사가 주목받는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다양한 언어 사용자들이 참여하는 행사나 회의가 잘 진행되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통역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통역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경우 보통은 통번역대학원에 입학해 순차통역, 동시통역 등을 학습한다. 대학원 졸업 후에는 회사에 지원해 사내(인하우스) 통역사로 일하거나, 인맥과 경험을 쌓은 뒤 프리랜서 통역사로 전환하기도 한다. 프리랜서와 인하우스 중 무엇을 택하느냐는 개인 성향에 달려 있다. 안정감과 소속감을 중시하는 편인지, 영업력이 뛰어나 고정 고객을 유치하기 용이한 편인지 자신의 성향을 판단해서 정하면 된다. 어떤 유형을 택하든 실력은 기본이다.

그렇다면 통역사에겐 어떤 역량이 필요할까? 좋은 통역의 특징은 정확성(accuracy)과 전달력(delivery)일 것이다. 먼저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이해력, 분석력, 언어능력, 배경지식의 네 가지 요소가 핵심이다. 발화의 핵심 내용을 의미의 오류없이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뛰어난 이해력과 분석력을 바탕으로 출발어의 문장을 신속히 분석하고 도착어에 맞게 재구조화할 수 있어야 한다. 풍부한 배경지식도 쌓아야 한다. 가장 기본인 경제 분야부터 정치‧사회‧IT‧국제관계‧안보‧환경‧보건 등 다양한 주제별 공부가 필수다.

전달력은 명료한 발음과 장시간 들어도 피로하지 않은 톤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능력을 뜻한다. 이에 더해 동시통역은 순발력과 반응 속도도 중요하다. 대학원졸업 직후 이런 능력을 모두 갖춘 통역사는 많지 않다. 현장에서 일하며 숙련도를 높여야 한다. 통역사가 끊임없이 공부하고 훈련해야 하는 직업인 이유다.

그런데 이렇게 큰 노력을 들여 통역사가 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최근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통‧번역사의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급변하는 시대에 앞으로 통역사의 미래가 어떨지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통역사라는 직업 자체가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AI통역 기능 덕분에 영어가 능숙지 않은 이들의 일상 생활이 편리해질 것은 자명하지만, 전문적인 회의 통역을 AI가 대체할 수 있을지를 자문해 보면 나로서는 조금 상상하기가 어렵다.

회사에서 수십억 원의 투자를 좌우하는 의사결정이 필요한 회의나,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국제회의에서 주최 측이 AI 통역을 믿고 쓸 수 있을까? 물론 통역사라고 해서 실수가 없진 않다. 하지만 숙련된 전문 통역사는 상황과 맥락에 더해 연사의 의도까지 파악해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에 결정적인 실수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통역사를 통해 소통했는데 의미 전달이 제대로 안 됐다면 책임지게 할 대상이 있다. 그러나 AI 통역을 썼다가 일이 잘못되면 온전히 의사 결정권자나 주최측 책임이 된다. 고객이 과연 그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지는 의문이다.

다만 이미 번역 업계가 그렇듯, 쉬운 회의는 상대적으로 줄고 어려운 회의가 늘어나 통역사의 역량을 평가하는 기준이 더욱 엄격해지면서 실력이 부족한 통역사는 살아남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예전엔 통역사에게 온전히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이제는 영어 원문의 절반 정도는 이해하면서 자신들이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나머지 절반을 통역사가 보완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현재로서는 통역사의 삶에 만족한다. 물론 처음 통역사라는 진로를 택할 당시엔 몰랐었던 부분도 많다. 프리랜서 통역사가 되면 시간 활용이 자유롭고 해외에 거주할 기회도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일하며 알게 된 현실은 사뭇 달랐다. 통역사는 영업직이자 서비스직에 가깝기에 최대한고객이 원할 때 통역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고, 따라서 프리랜서라 하더라도 내 시간을 자유롭게 계획하기 어렵다. 또 한국어와 외국어의 조합이라 해외보다는 국내에 기반을 두고 생활해야 한다. 회의가 지지부진하거나 행사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때 가장 탓하기 쉽고 만만한 대상이 통역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통역을 제대로 해내서 서로 다른 언어 사용자들이 실시간 소통하고, 행사나 회의가 원활히 진행되고, 고객들이 감사 인사를 전할 때 뿌듯하고 만족스럽다. 어느 때보다도 소통이 활발해 보이는 시대, 그러나 실제로는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단 자신이 할 말만 쏟아내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 때에 누구보다도 다른 이의 말을 온전히 경청하고, 있는 그대로의 의미를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통역사가 아닐까.

황현아 (영문·08년졸) 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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