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간편식 브랜드 바로(VARO) 대표. 본교 서양화과를 2021년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이원정(서양화·21년졸) 바로 대표

비건 간편식 브랜드 바로(VARO) 대표. 본교 서양화과를 2021년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뭐 해 먹고 살지?” 대학 시절 내내 따라다닌 질문이었다. ‘순수’ 미술(fine art)을 전공했고 소위 밥벌이는 당장 되지 않았다. 예술의 어떤 고고한 힘을 믿었는지 몰라도, 팔리는 무언가에 전념하고 싶지도 않았던 터도 있다. 그렇게 밥벌이를 고민하다가 정말 밥을 팔게 되었다. 비건 밥!

현재 나는 비건 식품 스타트업 대표이지만 여전히 ‘(예술)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남긴다. ‘사업’도 한다. 어느 것 하나로 완전히 규정할 수 없으니 잘 설명하려 애쓰지만 증명해 내기도 힘들다.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려다 보니 도무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 아리송한 때도 있었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숱하게 들어온 말이지만 명확한 결과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날 때도 많은, 바라는 것도 참 많은 사람이다.

기후 위기의 실제적 위협, 동물들이 죽는 끔찍한 광경, 일상적 재난. 앗, 그림 그릴 돈도 없지 않은가. 먹을 게 없다. 내가 해보자.

다행히 복이 많아 2년 전 이맘때 비건 밀키트 개발에 성공했고 국내 최초 비건 밀키트 브랜드 바로(VARO)가 탄생했다. 당시 비건 지향 생활을 하며 내가 당면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싶은 꿈에 부푼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다. 아무도 시도한 적 없는 아이템이었고 내 전공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일도 아니었다. 창업 스토리는 길고 길다. 간단히 말하자면 ‘헤딩을 대비해 나름 헬멧을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아차! 무릎 보호대는 못 했구나’의 연속. 제조 설비부터 포장재, 원재료 관리와 제품 개발, 홍보, 유통, 판매 등 모두 다 처음 해보는 것들이었다. 나도 모르게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 버린 바람처럼 일을 시작하게 됐다. 이제 막 창업 1년 6개월 차. 멋진 팀원들과 함께 가파른 성장을 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내 바람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미술사학 복수 전공을 선택하기까지 교직 이수를 고민하고, 여러 타 전공 수업을 수강했고, ‘좋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이뤄보고자 사회적 기업과 국제 개발협력 스타트업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생계유지라는 비탈길에서 광고 대행사 일도 했다. 학생도 가르치다 결국 ‘작업’을 하고 싶다는 것을 깨닫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일 탐색 기간을 거치며 알게 된 것은 하고 싶은 것과 아닌 것이 ‘모 아니면 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0부터 100까지의 스펙트럼으로 펼쳐진 것이었고, 일에 대한 선호도를 퍼센티지로 판단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좋은 ‘N잡’일까? 지금은 직위, 직장 내 소속감, 예측 가능한 타임라인이 주는 안정성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렇게 나의 욕망과 바람을 더 잘 마주하면서 ‘사업’과 ‘작업’ 사이를 오가게 됐다.

2년 전만 해도 작업하는 자아와 사업하는 자아가 충돌한 적이 잦았다.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고 계획적인 단계를 거쳐 만든 결과물이 결국 돈이 되어야 하는 밥벌이의 필연. 항상 숫자를 보고, 시간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작업을 할 때는 비교적 그런 것들에서 벗어난다. 물론 예술도 사업적인 측면(일, 발전, 경영)이 있고, 사업도 내가 선택했기에 자유롭지만.

이런 분열적 갈등이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바로(VARO)는 그 자체로 나의 신념과 가치관을 투영한 활동이기 때문에 개인 작업의 방향성에 영향을 끼친다. 반대로 바로를 통해서 할 수 없는 이야기는 작업으로 풀어내려 한다. 그렇게 상호 보완적인 환경을 만들고 있다.

자유시장 자본주의 체제에서 대체 예술작업(work)은 무엇이고 노동(work)은 무엇인가…. 이 관계는 정말 복잡하다. 내가 대안적 관점을 제시할 깜냥이나 남다른 소회가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나의 방식대로 왔다 갔다, 영역을 전환하는 것 자체로 흥미로운 접점을 만들고 있다. 냉동 밀키트 관련 지식을 습득하면서 냉동식품 시장이 예술 시장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거나. 식품을 제조하고 유통, 판매하는 세계에서 작품을 제작하고 수출하는 세계관으로 상상이 널을 뛴다. “만화경을 한번 비틂으로써 모든 것이 명확해지고, 파편들이 이어지고, 새로운 경치들이 시야로” 들어오는 경험을 하는 중이다.

막 일을 시작하며 함께 미래를 고민하는 한 명의 벗으로서, 우리 벗들에게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겁먹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바람처럼 정처 없이 아슬아슬 등성이를 넘나들어도 수습 불가능한 일은 없다. 바람에도 길이 있다고 하지 않나.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은 위치나 지형, 계절에 따라 모두 다르고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지금 우리는 각자의 풍향에 맞춰 마음에 훅 들어오는 선선하고 편안한 바람, ‘주풍(主風’)을 찾아가는 중일 것이다. 잠시 몸에 힘을 빼고 바람길을 느껴보자.

이원정(서양화·21년졸) 바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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