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방영·17년졸) MBC 예능PD
김유진(방영·17년졸) MBC 예능PD

본교 방송·영상학과를 2017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9년 채널A에 입사해 ‘하트시그널3’과 ‘프렌즈’ 팀에서 일했고 2021년 MBC 경력직 PD로 입사한 뒤 ‘나 혼자 산다’ 팀을 거쳐 올해부터 ‘놀면뭐하니?’ 팀에서 일하고 있다.

어떤 이야기를 전하면 좋을지 고민에 잠겼다. 예능PD를 간절히 꿈꾸던 시절을 돌이켜보니, 항상 초췌한 몰골로 ‘힘들다’ 이야기하는 그들의 일상이 궁금했었다. 부족한 글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큰 틀에서 보면 콘텐츠 제작이라는 일이 비슷한 맥락 속에 흘러가겠지만, 세세한 과정과 시스템은 방송사마다, 프로그램마다 다르다. 연차에 따라 맡는 업무도 다르고 ‘팀바팀’으로 달라지기에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나만의 사적인 일주일이다. 현재 내가 속한 ‘놀면뭐하니?’ 팀에서 조연출의 주된 업무는 편집이라 그 과정에 초점을 맞춘 일주일을 살고 있다. 익숙지 않은 표현들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면, MBC '아무튼 출근' 예능 조연출 편을 시청하길 추천한다.

월요일. 가편. 이번 주 각 파트 분량이 정해지면 세상 편한 옷을 입고 편집실로 향한다. 구성안과 촬영 정리 종이를 쓱 훑으며 촬영본 프리뷰를 한다. 내용 파악을 끝내면 먼저 스토리라인을 고민한다. 글의 목차를 적듯 큰 덩어리를 나누고(업계 은어로 ‘구다리’라고 한다), 그 안에서 기승전결을 구성한다(‘니주’와 ‘오도시’). 우선 맥락상 흐름을 방해하는 내용을 과감히 쳐내고, 여기저기 흩어있는 이야기를 비슷한 내용끼리 몰아준다. 스토리라인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효과적인 컷을 고르고, 편집 효과와 음악이라는 양념을 쳐서 코미디 서사를 만들어 낸다. 가편은 웃음을 심폐 소생하는 일이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나는 보통 가편 날 꼬박 밤을 새운다. 눈빛이 2초 이상 길어지는 순간 마음을 들키듯, 2프레임 차이로 인해 더 웃길 수도, 뻔한 코미디가 될 수도 있으니까.

화요일. 시사. 연출 선배님들과 작가님들에게 가편 본을 처음 보여주는 날. 내 편집본의 첫 시청자들이랄까. 옆방까지 들릴 정도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면, 성공이다. 막내 연차 때는 시사 방에 들어가기만 해도 심장이 날뛰어서 심박수 경고 알림이 울려댔었다. 날카로운 피드백을 들을 때면 눈물을 꾹 참기도 했다. 수많은 시사를 겪어온 지금은 늘 더 나은 다음을 기약한다. 편집 실력을 평가받는 자리라 여전히 시험 보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바라지 않아도 매주 그 기회는 돌아오고 결국 잘 해내면 되는 거니까. 사실, 편집에는 정답이 없다. 더 나은 선택지를 찾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수요일. 수정. 시사 피드백을 반영해 수정하는 날이다. 가편과 달리 좀 더 여유롭게 고민할 수 있다. 구현하고 싶은 CG를 최대한 자세히 의뢰서에 적고,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레퍼런스를 찾아 감독님께 전달한다. 타고난 '똥손'이라 학창 시절에는 미술 시간을 제일 싫어했는데, 이제는 '금손' 감독님들이 다 작업해 주셔서 신나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있다.

목요일. 자막. 편집자의 위트를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출연진이 말하는 대로 받아 적을까, ‘깔롱’ 좀 부려서 자막을 써볼까. 자막을 쓰다 보면 그동안 책과 거리를 둔 나 자신이 미워질 때가 많다.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줄임말과 비속어를 휘갈기는 나를 볼 때면 타고난 글쟁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눈 밑에 내려앉은 다크서클을 보며 그냥 자막 없는 예능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다가도 회심의 자막 한 문장을 보고 피식 웃을 사람들 표정을 떠올리다 보면 어느새 금요일 아침이다.

금요일. 웃더와 파인. 웃더는 ‘웃음 더빙’의 약자이고, ‘파인’은 연출 선배의 지휘 아래 최종본을 만드는 작업이다. 이날은 방송 시작부터 끝까지 오디오 믹싱을 하면서 내용을 통일시키는 작업을 한다. 모든 PD와 작가가 회의실에 모여 최종 회의를 하고, 수정사항을 반영해 파인에 들어간다. 5평 남짓한 편집실에서 우리는 매주 불타는 금요일을 보낸다.

토요일. 완제 또는 종편. 최최최종 방송본을 만드는 작업이다. 파인 이후 수정된 컷, 자막, CG, 음악 등을 갈아 끼워 종편실에 들어간다. 종편실에 들어가면 뒤에는 연출 선배가, 좌우에는 음악, 자막, 효과, 기술 감독님들이 주르륵 앉아있다. 이때 필요한 건 정확하고 빠른 판단. 작은 실수가 방송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순간이라 모두가 긴장한 상태로 작업한다. 본방송 시작까지 얼마 남지 않아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

본방송 이후 달콤한 하루 휴일. 오전이면 단톡방에 시청률 그래프가 올라온다. 분명 잠이 부족해 오후 늦게 눈뜨고 싶었는데도 희한하게 비몽사몽 시청률 그래프를 확인하게 된다. 지난주보다 조금이라도 오른 수치를 보면 일주일을 보상받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남은 하루 숨 좀 돌리다 보면 다시 미적대며 출근을 준비하는 월요일로 돌아가 있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라는 말을 매주 되뇌다가도 어느새 실실 웃으며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면 ‘나 참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복 받은 사람이구나’ 깨닫는다. 이 모든 과정에 쏟는 시간과 정성만큼 다른 어떤 일에 애정을 쏟을 수 있을까?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은 상황에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취준생 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나에겐 플랜B가 없다. 예능 만드는 일이 유일한 내 플랜이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예정이다. 아직은 경험할 것도 배울 것도 많이 남은 조연출 나부랭이지만, 곳곳에 웃음이 있어 재밌고, 앞으로도 재밌는 걸 만들고 싶다. 내 친구들은 못 만나더라도 누군가의 밥 친구를 만들어 주는 일. 어두운 골방에서 누군가를 빛나게 만드는 일. 남 한번 웃기겠다고 내내 우스운 몰골로 살아가지만, 내가 만든 예능이 누군가에게 잠시나마 입꼬리 올라가는 순간으로 남는다면 기꺼이 또 밤을 새워 갈 테다.

당신이 보고 있는 한 편의 방송은, 스치듯 흘러가는 '텔럽'에 적힌 수많은 스태프가 밤잠 줄여가며 만든 작품이다. '웃기네' '노잼이네' 평가하는 건 한순간이겠지만, 결코 손쉽게 만들어진 장면은 한 커트도 없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을 웃게 해주겠다고 기꺼이 오늘도 밤새고 있을 수많은 조연출의 진심이 전달되었기를 바란다.

김유진 MBC 예능PD (방영·17년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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