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컴공·21년졸) 컴퓨터공학과 석사과정생
김유진(컴공·21년졸) 컴퓨터공학과 석사과정생

본교 컴퓨터공학과를 2021년 졸업하고 곧이어 본교 엘텍공과대학원 인공지능·소프트웨어학 컴퓨터공학전공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어쩌다가 대학원생이 되셨나요?”라는 질문을 올해도 몇 번이나 들었다. 이런 질문의 대부분은 나를 향한 걱정과, 자신이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길에 대한 궁금증에서 해주시는 경우가 많다. 질문에 어려있는 애정을 충분히 느끼기에 감사하기도 하다. 하지만 질문에 대한 답으로, 길고도 긴 여정을 애써 축약해 웃음으로만 설명하게 되는 일이 많았기에 아쉬웠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진짜 답을 말해보려고 한다. 덧붙여 나는 대학원생으로 사는 지금의 삶에 매우 만족한다는 것도 함께 말하고 싶다.

직업을 가진 사람들 대부분은 하루의 약 3분의 1, 또는 그 이상을 직장에서 생활한다. 다시 말해 직업을 가진 이후부터는, 남은 삶의 약 3분의 1이 직장에서 일하며 지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학부생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일, 할 때 행복한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싶었던 이유다.

20대 초반의 나는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해지는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때는 딱히 지향점이나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갔던 것 같다. 막연하게 소위 돈을 많이 벌고 명예가 있는 직업을 선택하면 행복해질 것 같다는 생각도 했지만, 크게 노력하지도 않았다. 우선 그 직업들에 대한 애정이 없었고, 그 직업들을 가지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과정들이 내 애정의 크기에 비해 너무 어려운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자 뭔가를 바쁘게 하는 주위 친구들을 보면 많이 불안해지기도 했다. 다들 원하는 길을 찾은 것 같은데, 그래서 달려 나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하고 싶은 일도, 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안이 커져서 감당하기가 힘들어질 때쯤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교내외 동아리 활동들을 시작했다. 핸드벨, 등산, 창업, 공연, 봉사, 독서, 천체관측 등 관심 있는 동아리는 모두 참여했다. 예컨대 어느 학기에는 동아리만 5개를 하기도 했는데, 매일매일 수업이 끝나면 그날의 동아리 일정이 있었다. 임원진을 맡은 적도 여럿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1년 반 정도를 보낸 후에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해하는지와 같은 것들을 조금씩 알 수 있었다.

이때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내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전략’ 짜기를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있음에도 경영전략 학회에 들어갔다. 학회 활동을 하면서 전략을 잘 짜기 위해 어떤 것들을 고려해야 하는지, 내가 전략을 짜는 것에 있어 더 개선하면 좋을 점은 무엇인지 등을 알 수 있었다. 이 학회를 계기로 어느 회사의 경영전략 부서 인턴으로 뽑혀 신사업을 발굴하는 업무를 맡아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생각보다 사업에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나 제품의 폭이 한정적임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획기적인 신사업을 발굴해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창의적인 전략을 짜보고 싶어도, 인더스트리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현실적인 요소들이 너무 큰 제약으로 작용했다. 아쉬움을 느낀 나는,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제약 없이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유니크한 전략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회사 인턴이 끝나자 ‘연구’가 가장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더스트리의 사업보다는 실생활에 적용되기까지의 시간적 여유가 어느 정도 확보되기 때문에 제약을 덜 받으면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많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전략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획기적인지를 평가할 때, 단순히 정량적인 수치를 넘어 정성적인 사람의 의견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래서 바로 컴퓨터 기반 기술에 대한 사용자 경험을 함께 연구할 수 있는 랩실에서 인턴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연구를 좋아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고, 대학원생으로서의 삶이 현재 내가 원하는 삶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이 대학원생이 되기까지 겪었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진로의 여정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대학원생으로 살고 있는 지금의 삶에 매우 만족한다. 매일 내가 하는 연구를 더 논리적으로 다듬고,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마다 사람들과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면서 인생이 살맛 난다고 생각한다. 내 자식 같은 연구가 무사히 학회나 저널에 통과해서 내 이름이 당당히 논문 앞 장에 올라간 걸 보면 벅차오른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매 학기가 지날수록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더더욱 가질 수 있게 됐다.

나도 단 몇 년 만에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었으니, 이화에 온 벗들 중 비슷한 이유로 고민하는 벗이 있다면 당연히 가능하다는 말과 함께 응원을 전하고 싶다. 또한 힘들 때는 충분히 쉬어도 된다는 말도 함께 덧붙이고 싶다. 많은 이화인이 행복해지길 바란다.

김유진(컴공·21년졸) 컴퓨터공학과 석사과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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