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건축·13년졸) ㈜하스스튜디오 대표이사
김현정 (건축·13년졸) ㈜하스스튜디오 대표이사

직장 생활 6년, 스타트업 대표 5년 차. 본교 건축학과를 2013년 졸업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면서 건축 공간이 가진 힘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현재 건축 여행 서비스 아키베어를 운영 중이다.

졸업장을 받기도 전에 취직했다. 건축학과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한 듯 대형 설계사무소의 공채를 꿈꿨고, 합격했다. 흔히 말하는 건축학과 졸업 후의 ‘정석’의 길이었다.

물론 처음 건축학과를 선택하고 나서는 많은 새내기들과 같았다. 이 길이 맞나 싶었다. 수시로 다양한 활동을 해보며 진로를 의심하고 검증해나갔다. 과연 이 분야가 적성에 맞는 것인지, 앞으로 하고 싶은 방향이 맞는지, 다른 분야에 더 흥미를 느끼지 않는지.

재학 시절, 어릴 적 꿈이었던 배우는 어떨까 해서 연극 동아리에 들어갔다. 정기 공연까지 무대를 3번이나 올렸다(이후에도 미련이 남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퇴근 후 연기학원을 다녔다). 또 다른 길이 있을까 싶어 타 전공의 수업을 들어보기도 했다. 이렇게 몇 번의 검증을 거쳐 설계사무소에 취직하기로 했던 것이다.

결정에 확신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일했다. 직장인 사이에 회자되는 ‘3‧6‧9’ 법칙이 있다. 입사 후 3년, 6년, 9년에 퇴사율이 높다는 것. 그 시기 즈음에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이 길이 맞는 건가?’ 자각하는 시기가 오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 3년 차, 내게도 그 시기가 찾아왔다. 결국 나는 갇혀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퇴직금으로 포르투갈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건축이라는 길이 맞는지 다시 검증하려고 대학 시절 가장 좋아했던 건축가인 알바로 시자의 본토에 가보고 싶었다. 잃어버린 것 같은 건축에 대한 확신에 불을 지피고 싶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확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의 건축물을 최대한 많이 보고 느껴야만 했다.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오토바이를 운전하려고 2종 소형 면허까지 땄다(!). 그리고 그의 작품과 그가 영감받았다던 풍경의 바람결까지 마음에 담았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의 길’에 대한 한 가지 명확한 답을 얻었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는 답이었다. ‘나는 건축을 좋아한다.’ 덤으로, ‘평생 이 분야에 있어도 되겠구나.’

건축 분야의 다른 여러 일을 해보기로 했다. 바로 인테리어 사무소에 들어갔다. 인테리어 사무소에서의 경험은 놀라웠다. 대형 설계사무소와 비교하자면, 건축 프로젝트는 보통 한 건물을 짓는데 3년 이상 걸리지만 인테리어 프로젝트는 단 3일 만에 끝나기도 했다. 머릿속에 그렸던 공간이 3일 만에 현실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빠른 결과물이 나오는 그 속도감이 좋았다. ‘나의 길’에 대한 또 다른 힌트를 얻게 된 시기였다.

다시 6년 차가 찾아왔다. 살면서 갑작스럽게 새로운 길을 선택할 때가 오기도 한다던데, 그 시기가 함께 찾아왔다. 다소 충동적인(?) 선택으로 험난할지도 모르는 길을 도전하게 됐다.

창업 열풍이 불었다. 나도 그 파도에 휩쓸렸다. 정부 지원금으로 창업할 수 있다는 매력에 끌려, 홀린 듯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운영하는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지원했다. 써본 적 없는 사업계획서를 잘 쓰고 싶어서 난생처음 서점의 ‘경영’ 코너를 들락거렸다. 그리고 그 해, ‘건축물 정보 플랫폼’이라는 아이템으로 청년창업사관학교 8기에 입교했다. 여기서는 내가 계획한 사업을 하면서 경영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사업을 배운다는 점도 신선했지만, 직접 내 사업을 경영해나가면서 배운다는 점도 좋았다. 사업은 실패의 경험으로밖에는 배울 수 없다는 걸 지금은 알지만, 실패란 것을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기에 이론 교육도 열심히 신청해서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의 첫 창업 아이템은 별로였다. 소비자를 몰랐고, 방법을 몰랐고, 수익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다시 길을 잃었다. 그렇게 창업 3년 차가 지나고 있었다. 창업은 생계와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위기가 너무나도 심각했다. 하루하루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당장 다음 달에 어떻게 회사를 유지할 수 있을지 해결하는 것이 이번 달에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놓친 힌트가 있는지 내가 걸어온 길을 꼼꼼히 되돌아봤다. 다행히도 어둠 속에서 두 글자 빛이 보였다. ‘여행’.

지금 우리 회사는 건축 여행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다소 일차원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축과 여행을 엮어서 비즈니스를 이끌고 있다. 스페인에는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의 건축물을 감상하는 가우디 투어가, 시카고에는 유람선을 타고 현대건축물을 즐기는 투어가 인기 있다. 우리 회사는 우리나라에서만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 투어를 개발하고 있다.

‘나의 길’을 찾기 위한 진로 고민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갑자기 다시 설계사무소로 들어갈 수도 있고, 연기학원에 등록할 수도 있다. 어쩌면 죽기 전 그 순간까지 나는 그 답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분명하다. 끊임없는 검증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답을 찾기 위한 나만의 방법은 점점 더 능숙해진다는 것. 길을 좀 더 명확히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는 것. 인생이란 이렇게 ‘나의 길’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아닐까.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심이 들고 불안해질 때마다 생각한다. 더 멋진 길을 가기 위해 잠시 또 고민하는 것이라고.

어느 길을 갈지 몰라 주저하는 우리 이화의 벗들에게 자신 있게 전한다. ‘우리는 고민하고 주저하고 실패하면서 인생의 답을 향해 나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기에 ‘우리가 만들어 갈 길은 반드시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고.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김현정 ㈜하스스튜디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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