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너와 나(2023)반쯤 먹혔지만 갈변하지 않은 사과, 세미의 상이 맺힌 거울, 아이가 웅덩이에서 건지는 공룡... ‘너와 나’(2023)의 메타포들은 영화가 축조한 미결정의 세계를 지탱한다. 이곳에서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 등의 상투적 경계란 영화 속 탁자 끄트머리에 위태롭게 놓인 유리컵처럼 툭, 치면 횡단할 수 있는 무엇이다. 매 쇼트를 호위하듯 감싸고 있는 빛의 노출이 담지하는 것 또한 수학여행 전날 고등학생 세미와 하은의 하루를 담은 이 영화의 일부, 혹은 전체가 살아남은 자의 백일몽이라는 가능성이다. 좋아
10월27일 오후 4시,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어쩌면 우리의 무한(無限)한 가능성일지도 모르는 하늘을 만났다. 6학기째 학교에 다니고 있는 3학년이지만, “졸업하면 무엇을 할 생각이야?”라는 무수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나는 이 하늘을 보며 조금의 위안을 받았다. 작곡을 전공하는 음대생으로서, 그리고 고학년으로서 3학년쯤 되었으면 뚜렷한 길이 있을 것 같았지만 사실 아직은 없는 상태. 과연 나의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나는 임용고시를 보려고.”, “나는 유학을 가고 싶어.”, “나는 대학원에
많은 사람들이 초연결 디지털 혁명이 달성되면 마치 초합리적 초효율성이 극대화되어 인간의 새로운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처럼 선전한다. 위험천만한 주장들이다. 초연결 디지털 혁명은 현실이어서 피할 방법이 없지만 제대로 알고 사용하지 못하면 인간은 모두 디지털이 만든 초합리적이고 초효율적인 아바타에 종속된 노예의 삶을 살게 될 운명이다.아바타로 살 것인가?인간으로 살 것인가?우리 연구팀(코넬대 Lawler 교수, 서던캘리포니아대 Thye 교수, 본교 윤정구 교수)은 20여 년 전부터 초연결 디지털 혁명 시대에 개인화를 향한 분절이 극대화되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대학보입니다.어느덧 상반기 발행을 지나 하반기 발행에 돌입했습니다. 이대학보가 잠시 휴간 기간을 맞는 동안, 학교는 시험 기간에 접어들었습니다. ‘프롬편집국’을 통해 독자 여러분에게 안부 인사를 전합니다. 평안한 일상을 보내고 계시나요? 이대학보는 시험 기간이 마무리될 시기에 맞춰 독자 여러분 손에 신문이 쥐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기사를 준비했습니다.하반기 발행에 접어들며 한결같은 신문을 만드는 동시에 새로움도 곁들였습니다. 이번 호부터 팀 기획 중 하나인 ‘시간을 달리는 여자들’이 시작됩니다. 총 5주
는 내가 만든 첫 단편영화다. 고등학생 때 혼자만의 상상은 대학 동아리 친구들을 만나 영화가 되었다.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뿔이 생겼답니다. 다소 민망한 위치에 자라난 뿔, 왜 하필 가랑이 사이로 자라났을까요? 세상에! 그나저나 저는 이대생인데 학교는 어떻게 다녀야 할까요? 23년을 여자로 살았는데 이 뿔 하나 때문에 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다니요. 제가 여자인지 남자인지가 누군가 답을 내려주길 바랄 뿐입니다.”라는 시놉시스 하나로 모인 감독 3인방. 혐오의 시대에 자신의 의견을 세상에 내
“페미니즘과 데모로 유명하지 않나요?”지난 9월 말에 아오야마가쿠인 대학에서 열린 유학생-본교생 글로벌 교류 행사에서, 한국에서는 이화여대에 다니고 있다고 소개하자 한국에 관심이 많다는 남학생이 한 말이었다. 나와 함께 파견된 벗은 둘이 동시에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한국에서 그동안 ‘시달린’ 것이 많아 바로 고개를 끄덕이기가 망설여졌다. 그런데 남학생은 그 의미를 이해했는지, 곧 손을 내저으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니 오해 말아달라’라고 덧붙였다.내가 파견된 아오야마가쿠인 대학교(‘가쿠인’은 ‘학원’이라는 뜻으로, 재단명이 ‘
“탑승객 여러분, 안내방송 드립니다.”올해 2월,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고파 한국 사람도, 한국말도 들리지 않는 태국으로 훌쩍 떠났다.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내려 귀에 처음 들린 소리, 한국어 안내 방송이었다. 여행 동안 한국이 그리웠던 것도 아니었는데, 한국어를 듣자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고였다. 안간힘을 쓰며 듣지 않아도 자연스레 귀에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한국어.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고작 일주일 만에 돌아와서 들은 한국어에 눈물까지 맺힌 스스로를 보며 나는 내가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라는 걸 새삼
영화/레이디 버드 (2017)내가 가진 것 없이 볼품없다고 느낄 때, 부족한 지금의 내가 최선의 나라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 특별하지 못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 ‘레이디 버드’(2017)는 현실과 자신이 꿈꾸는 것의 괴리에 고군분투하는 십 대 소녀 레이디 버드를 보여준다.크리스틴, 스스로 지은 이름으로 부르자면 레이디 버드는 자신이 처한 환경을 좋아하지 않는다. 새크라멘토의 가톨릭 학교에 다니고 있는 레이디 버드는 언제나 새크라멘토를 벗어나고 싶어 하고 자유로운 예술의 도시인 뉴욕에 가고
“좋아하는 색깔이 뭐야?”“다 좋아”“좋아하는 음식은?”“아무거나 다 잘 먹어”개인의 성격과 취향이 매우 다양해진 세상이다. 사람들의 특별함을 개성으로 표현하고 그런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당연해졌다. 최근 유행했던 MBTI 검사는 사람들의 성격을 16가지로 표현한다. 첫 만남에서 MBTI 질문은 필수가 되었으며 사람들이 자신의 성격과 취향을 더 쉽게 드러내게 해줬다. 모두가 각자의 색깔을 빛내고 있는 세상 속에서 아직 내 취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좋게 말하면 어디에나 속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줏대가 없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
영화/코코(2018)멕시코에는 죽은 자의 날이라는 전통이 있다. 이날이 되면 사람들은 해골 모양의 장식물을 집에 걸어두고 죽은 가족들의 사진과 주황색 멕시코 국화를 함께 두어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빈다. 또한 소중한 사람들과 춤추고 노래하며 죽은 자들의 영혼을 반긴다. 이러한 모습을 통하여 죽음을 마냥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떠나간 이들을 소중하게 기억하고자 하는 멕시코 사람들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영화 코코(2018)는 이 죽은 자의 날을 배경으로 멕시코만의 색을 가득 담은 사후세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후세계에서는 망자
본교 방송영상학과를 2003년 졸업했다. 이후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나와 장편 영화 ‘내가 죽던 날’(2020)을 만들었다. 2021년 백상예술대상 각본상과 청룡영화제 신인감독상을 받았다.내가 쓰고 연출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영화가 개봉할 즈음 했던 인터뷰에서 영화 학교를 졸업하고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1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어떻게 버텼는지에 관한 질문을 참 많이도 받았다.내가 정말 그것만을 위해 버틴 것인가는 차치하고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쩌면 정말 어리석게 보일 수 있는 시간이구나 하는 자각이 들었다. 성
“내일 소 보러 갈래?” 오스트리아에 와서 처음 사귄 외국인 친구가 한 제안이다. ‘소’를 보러 가자니, 내가 아무리 유럽의 시골 마을에 와 있다고 하지만 여기에선 소를 보고 노는 것이 흔한 것이었던가? 고층 건물이 즐비한 서울에 지쳤던 사람으로서 놓치기 싫은 제안이었다.행사가 열리는 마을에 도착했다. 기차 문이 열리고 보이는 광경은 활기가 가득했다.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 오스트리아 전통 음식을 파는 천막들,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노부부,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즐기고
본교 사학과를 2009년 졸업하고 다음커뮤니케이션 동영상 제작팀, 도레이첨단소재 글로벌 탄소섬유 판매 및 마케팅을 담당했다. 한때 잠시 카페 창업을 했다가 현재는 LG사이언스파크에서 LG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 슈퍼스타트 홍보 및 스타트업 발굴·육성 업무를 맡고 있다.스타트업을 발굴, 육성하는 업무를 하면서 참 다양한 스타트업을 만나게 된다. 동물이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 문턱 높은 정신과 의원에 가지 않고도 앱 하나만으로 누구나 자기의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세상. 신진 예술 작가들이 메타버스 상에서 좀 더 쉽게 전
9월28일 오전6시12분, 졸린 눈을 비비며 명절 귀성길 고속버스에서 내렸다. 줄을 서니 4살 아이가 보인다. 시선을 내리니 보이는 모녀의 커플 운동화. 모녀가 사랑스럽기 때문인지, 오랜만에 가족 얼굴이 보고 싶어서인지 카메라를 들었다. 집에 오니 뉴스에서 ’취업 부담에 고향 못 내려가는 20대’에 대해 말하고 있다. “표도 구하기 힘들고 내려가면 가족 얼굴 보기도 힘들어서….”라고 말하는 축 처진 어깨. 밀린 숙제 해나가듯 ‘처리’하기 바쁜 인생의 관문들이 우리를 힘들게 만들었을까. 10명 중 3명이 혼자 사는 대한민국, 그 많은
편집자주|그때 학보가 다룬 그 문제, 지금은 해결됐을까? 본지가 취재한 학내 이슈를 돌아보는 코너 ‘새로고침’을 두 달 간격으로 연재합니다. 본교 구석구석, 지나치기 쉬운 순간들을 사진부의 시선으로 포착합니다.본지 1639호(2022년 5월9일자)에 따르면, 본교 청소 노동자 휴게실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청소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이후 본지 1646호(2022년 9월19일자)에서는 학내 노동자 시위 이후 공공운수노동조합 서울지부 이화여대분회(공공운수노조)와 하청업체가 임
영화/어바웃 타임(2013)우리는 때때로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 뭐라도 먹고 나가라며 챙겨 주시는 부모님께 귀찮다며 신경질 낸 기억부터 친구와 의견 충돌로 싸우며 심한 말을 했던 기억, 누군가와의 이별 후에 그리워한 기억, 길 가다 만난 이상형을 붙잡지 못한 기억까지. 하지만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고, 늘 속절없이 도망가 버린다. 영화 ‘어바웃 타임(2013)’은 현실에서 벗어나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았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인생과, 일상과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이다.영화
지난 학기의 끝을 떠올린다. 어쩌다 이른 종강을 맞았으나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게는 후편집이라는 역할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후편집은 내용 구성을 마친 영상이 보기 좋도록 어울리는 옷을 입히는 작업이다. 어떤 옷이 어울릴 지 충분히 고민해야 하지만 전날까지 세 전공을 오가며 다변수함수와 메타버스를 논하던 내게 그런 창의력은 솟지 않았다. 아직 종강까지 달리느라 바쁜 동료 기자를 붙잡고 어떤 자막, 효과음, 색상, 모션이 좋은지 질문을 던지는 스스로가 부담스러웠다. 종강을 맞아 오랜만에 찾은 본가에서 편히 쉬기는 커녕 새벽 내내 뜨거
“금요일에 파티 갈 거지? 그때 봐.” “너 안 와? 언제쯤 도착해? 만나서 같이 가자.”개강을 맞이한 지 약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현시점, 학교에서 열린 행사는 족히 일곱 개가 넘었다. 신입생 환영 파티, 고향 소개하기 파티, 학생문화관 슬립오퍼 파티 등등. 각종 행사가 줄지어 이뤄졌다. 어제 뭐했어? 파 티 갔어. 오늘은 뭐해? 파티 가려고. 오, 내일 은? (장보고) 파티갈 것 같아. 물론 학기 초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한국과는 달리 파티에 ‘진심’인 학생들을 보며 경외감을 느꼈다. 파티 좋지. 하지만 파티는 주말의
이대학보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지난 8월 여러분께 첫인사를 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에 접어 들었습니다. 이대학보는 네 번의 발행을 마쳤고, 이번 호를 제외하고 상반기 한 번의 발행만을 앞두고 있습니다.그동안 이대학보는 취업 정보를 원하는 독자 수요를 반영하고자 커리어 코너 ‘취업 A to Z’를 신설했고, 뉴스레터 서비스를 통해 받은 독자 여러분의 피드백도 꼼꼼히 읽었습니다. 직접 독자님들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마땅치 않아 보내주신 모든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최근
지난 2020년 7월 헌법재판소(헌재)는 여자대학교들에 설치된 로스쿨과 약대가 “헌법 상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당시 약대 편입학을 준비하고 있던 한 학생이 여대들에 배정된 보건·의료계열 정원이 “직업 선택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에 대해, 헌재가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여대들에 설치된 로스쿨이나 의대, 약대를 둘러싼 논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9년에도 세 명의 남성이 이화여대 로스쿨에 대해 남성 역차별을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함으로써 세간의 이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