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색깔이 뭐야?”

“다 좋아”

“좋아하는 음식은?”

“아무거나 다 잘 먹어”

개인의 성격과 취향이 매우 다양해진 세상이다. 사람들의 특별함을 개성으로 표현하고 그런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당연해졌다. 최근 유행했던 MBTI 검사는 사람들의 성격을 16가지로 표현한다. 첫 만남에서 MBTI 질문은 필수가 되었으며 사람들이 자신의 성격과 취향을 더 쉽게 드러내게 해줬다. 모두가 각자의 색깔을 빛내고 있는 세상 속에서 아직 내 취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좋게 말하면 어디에나 속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줏대가 없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확실한 취향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자라면서 잊어버렸다. 어렸을 적 기억과 함께 ‘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못하는 것, 싫어하는 것. 그 어떤 것도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 점심시간에 음식점을 정할 때도 친구들이 가자는 대로, 메뉴는 항상 가게 인기 메뉴로.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 의해 정의되는 기분이었다.

나와는 반대로, 엄마는 항상 취향을 물어보는 질문에 막힘없이 자신 있게 답했다. 그런 모습이 너무 대단하고 밝게 빛나 보여서 취향을 찾은 방법에 관해 물어봤다. 엄마의 대답은 의외였다. 엄마도 나를 낳기 전까지 취향이 없었다는 것이다. 본인의 이름보다 누구의 엄마로 불리는게 익숙해질 무렵, 본인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나’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채워갔다고. 무언가를 할 때 기쁨을 느끼면 내가 좋아하는 것, 하기 싫고 불쾌감이 들면 내가 싫어하는 것.

생각해보면 내 취향이 없는 건 아니었다.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할 때 기쁨과 불쾌감을 느낀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내 취향이 없다고 생각한 건 정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고 ‘나’를 표현하는 게 불안했으며 자신감이 없었다. 잘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못할까 봐 두렵고, 좋아하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못하는 것을 남들이 비웃을까 봐 걱정했고, 싫어하는 것을 드러내면 가리는 게 많다고 나를 싫어할까 봐 불안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질 때쯤, 이 세상에서 내 존재가 사라지진 않을까 걱정이 돼, 나도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고 누군가 ‘이 애는 이걸 좋아했지’라고 기억해주길 바랬다. 그래서 불안을 지우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 ‘라이크리스트’에 대해 알게 되었다. 라이크리스트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글로 작성해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이다. 라이크리스트 페이지는 온전히 내 것인 점이 마음에 들었다. 글로 남기면 기억하기도 쉽고 무언가를 좋아하는 막연한 감정이 글자로 명확해지는 것 같았다. 수능 국어 공부를 하다가 마주친 정호승 시인의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밤마다 듣는 리도어의 ‘영원은 그렇듯’, 실없는 아재개그 모음...내가 ‘나’로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나’를 찾는 과정은 생각보다 근사했다. 그런 마음으로 적어낸 라이크리스트는 페이지를 펼칠 때마다 두근거렸고, 내 인생을 알록달록하게 가득 채웠다. 퍼즐처럼 잊고 있던 ‘나’의 조각을 찾아 ‘나’라는 그림을 완성하는 것, 드디어 제대로 된 ‘나’의 인생을 채워나가는 것 같았다. 언젠가 조각을 다 모아 그림을 완성하면 엄마처럼 당당하게 취향을 밝히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며 라이크리스트 페이지를 한 줄씩 채우고 있다.

라이크리스트는 힘든 날에서 즐거움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게 했고, 이런 행동들은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라이크리스트를 쓰며 때로는 취향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으며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살기 시작했다. 또한 타인의 취향을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와 음식점을 정할 때 나의 의견을 말하기도 하고 친구가 원하는 곳으로 가도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 친구에게 맞춰줄 수 있는 배려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이 조금 더 재밌어졌고 ‘나’라는 사람을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바뀐 나의 모습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게 됐다는 점이다.

그러니 다들 ‘나’에 대해 아는 것을 시작해보자. 그리고 이렇게 묻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말해보자.

“좋아하는 색깔이 뭐야?”

“보라색이 시원한 밤하늘 같아서 좋아”

“좋아하는 음식은?”

“돈가스가 좋아. 해산물보단 고기가 좋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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