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소 보러 갈래?” 오스트리아에 와서 처음 사귄 외국인 친구가 한 제안이다. ‘소’를 보러 가자니, 내가 아무리 유럽의 시골 마을에 와 있다고 하지만 여기에선 소를 보고 노는 것이 흔한 것이었던가? 고층 건물이 즐비한 서울에 지쳤던 사람으로서 놓치기 싫은 제안이었다.

행사가 열리는 마을에 도착했다. 기차 문이 열리고 보이는 광경은 활기가 가득했다.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 오스트리아 전통 음식을 파는 천막들,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노부부,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즐기고 있는 하나의 큰 축제였다. 소똥 냄새가 진동하고, 그저 드넓은 들판만이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더욱 유쾌해 보이는 분위기에 저절로 흥이 났고, 슈니첼(오스트리아 전통 음식)을 먹으며 금세 들뜬 분위기에 동화되었다.

도착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경찰이 도로의 자동차들을 막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도로 주변으로 뛰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저 멀리서 종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친구 한 명이 “뛰어!”라고 외치며 도로로 달려 나갔다. 엉겁결에 따라간 도로에서 저마다 머리에는 화려한 꽃을, 목에는 종을 단 채로 유유히 걸어가는 소 무리를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예쁘게 단장한’ 소들이 걸어가는 풍경. 진귀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Almabtrieb 행사 중 소몰이를 하는 모습. 전통 의상을 입은 목동이 이끌고 있다. 제공=전소이씨
Almabtrieb 행사 중 소몰이를 하는 모습. 전통 의상을 입은 목동이 이끌고 있다. 제공=전소이씨

이러한 행사를 독일어로는 ‘Almabtrieb’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하자면, 소몰이 축제 혹은 소몰이 행사 정도가 되겠다.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의 산악지대에서는 여름을 맞아 동물들을 산에 방목한다. 여름 동안 산에서 신선한 풀을 먹고, 햇빛을 찐 후에 겨울이 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다. Almabtrieb는 목동들이 이러한 소를 데리고 귀향하며 여름 동안 산과 동물들에게 피해가 없었고, 지역 사람들이 무탈했던 것을 축하하는 행사이다.

행사는 매년 9월 말에서 10월 초까지, 산악지역에서 열린다. 그중 오스트리아는 대부분 국토가 알프스 산악지대이고, 특히 티롤주는 동부 알프스 지역 중 가장 크다. 쿠프슈타인은 티롤주에 있는 작은 마을이기에 이곳과 이곳 주변 마을에서는 매년 쉽게 행사를 접할 수 있다. 지역별로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Almabtrieb에서는 보통 알록달록한 꽃, 리본, 종으로 소를 꾸민다. 하지만, 여름 내에 안 좋은 소식, 어떠한 피해가 있던 해에는 검은 리본으로 소를 꾸며준다고 한다. 산과 소, 사람들에게 무탈한 여름이었음을 축하하는 행사인 만큼, 그해 여름을 애도하는 방식 또한 남다른 것이다. 이렇게 Alambtrieb가 끝나고, 방목되었던 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오면 알프스산맥은 여유를 되찾는다.

오스트리아에 온 후로 유럽 출신의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기회가 많았다. 종종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곤 하는데, 유럽 출신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미래의 집에는 항상 다양한 동물들이 함께 한다. 큰 농장이 있는 집에서 소, 당나귀, 말을 키우면서 살고 싶다든지의 것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농장을 갖고 싶다는 사람뿐 아니라, 다양하고 많은 동물을 키우며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찾기 쉽지 않았다.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들과 드높은 건물들. 모든 것이 편리하지만, 드넓은 초록의 자연을 보기 힘든 곳. 하지만,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농경이 주로 이루어지는 오스트리아, 알프스산맥을 끼고 있는 쿠프슈타인이다. 옆집의 할머니는 소를 키우고, 건너편의 할아버지는 말을 키우는, 자연, 동물과 함께 한 어린 시절이 당연한 곳.

이곳의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여유로움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자연의 푸르름 속에서 뛰놀고, 다양한 동물이 주변에 함께하는 것이 당연한 유년 시절은 빠르고 숨 막히는 현대 사회에서 잃지 않을 수 있는 조금의 여유를 갖도록 해주었을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이곳의 친구들은 모두 저마다의 작은 순박함을 갖고 있다고 느낀다. 유럽인들, 서양인들은 모두 지나치게 개방적이고 유흥을 즐길 것이라는 편견을 가졌던 지난날을 깊게 후회하게 된다.

9월 말에서 10월 초에 서유럽에 방문한다면, 9할은 옥토버페스트(맥주 축제) 때문이리라.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맥주와 함께 유럽의 문화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한 번쯤은 산악 지대의 소몰이 축제에도 눈길을 돌려보시길 추천한다. 어딘지 모르게 순박하고, 여유로운 이곳의 사람들을 조금은 이해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기에. 이가 아니더라도 이유는 충분하다. ‘예쁘게 단장한’ 소들이 줄을 맞추어 걸어가는 모습, 두말할 나위 없이 진귀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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