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승객 여러분, 안내방송 드립니다.”

올해 2월,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고파 한국 사람도, 한국말도 들리지 않는 태국으로 훌쩍 떠났다.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내려 귀에 처음 들린 소리, 한국어 안내 방송이었다. 여행 동안 한국이 그리웠던 것도 아니었는데, 한국어를 듣자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고였다. 안간힘을 쓰며 듣지 않아도 자연스레 귀에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한국어.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고작 일주일 만에 돌아와서 들은 한국어에 눈물까지 맺힌 스스로를 보며 나는 내가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한국 사람인 나에게 한국은 내가 태어나고 살아온, 살아갈 집이 있는 곳이다. 나는 한국이라는 곳에 속해 있고, 여기서 안정감을 느낀다. 가족, 친구, 더 나아가 사회에 속한다는 소속감을 느끼며 끈끈하게 이 사회와 연결되어 이 땅에 발을 착 붙이고 살아간다.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잘’ 살아가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대한민국, 그 안에서도 가장 큰 도시 서울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은 어떨까. 2004년만 해도 부모님이 서울에 살지 않는, 타지에서 올라온 서울 시민이 전체 서울 시민 10명 중 6명이었다. 조부모 이전부터 서울에 쭉 살아왔다는 사람은 5%도 채 되지 않았다. 조사 이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사이에 지방 출신 서울 시민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게 줄었을 것 같진 않다. 이 많은 지방 출신 서울 시민 중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많은 청년이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혹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온다. 오직 공부를 위해 서울로 이주한 대학생들은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삶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들이 서울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서울 시민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다양한 출신의 서울 시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은 서울시도 마찬가지다. 서울시 정책은 주민등록상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은 학생들에게 간절한 교통비 지원, 월세비 지원 모두 대부분 주민등록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대학생들에게 필요한 취업 지원도 주민등록상 서울 시민이 대상이다. 그런데 정작 서울로 올라온 대학생 상당수가 전입신고를 못했다. 당연히 서울 시민으로서의 권리도 대접도 받을 수 없다. 전입신고를 하지 못한 청년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곳에서 그곳의 정책을 결정하는 선거에도 참여할 수 없다.

후불로 설정해둔 대중교통비 대금으로 8만 얼마가 찍혀 나갔던 어느 날, ‘청년 교통비 지원’을 인터넷에 검색했다. 그 아래 자격 요건. ‘주민등록상 거주지 서울’. 큰 벽을 마주한 듯한 기분이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전입신고를 하지 못한 나는 청년 교통비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벽을 느낄 때마다, 환영받지 못할 때마다 나는 어디 사람인지 다시 한번 생각했다. 1년에 3~4번 드문드문 들르는 고향보다는 서울 생활이 익숙해졌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집 앞에서 선거운동을 하며 청년 정책을 펼치는 서대문구청장을 뽑을 권리도 없다.

서울 살지만 서울 시민 아니다, 전입신고 못하는 청년들” 기사 취재를 위해 전화했던 서울시 정책 관계자는 “세금납부 등 의무를 서울 시민이 지기 때문에 정책도 당연히 서울 시민 대상으로 수립된다”고 말했다. 당연히 옳은 말이다. 그런데 그 서울 시민은 누가 규정하는가. 취재를 위해 만났던 6명의 청년 취재원들은 스스로를 서울 시민으로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입신고를 하지 못했던가.

서울시는 정작 서울 시민을 결정하는 문제, 전입신고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쏟지 않는다. 몇몇 집주인들은 세금 감면을 위해 전입신고 하면 안 된다고 통보한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정기적이고 전면적인 조사나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입신고 기준도 법에 명확히 마련돼있지 않다. 전입신고는 각 동사무소 등 지역의 주민센터에서 임의적으로 처리된다. 법에도 명확한 기준이 없으니 청년들이 집주인의 말을 거스르고 전입신고를 하기는 쉽지 않다.

많은 청년들이 대학, 공부라는 이유 하나로 약 20년간 살던 곳을 떠나간다. 새로운 환경에 간신히 적응해도 학교에 대한 소속감, 친구에 대한 소속감을 넘어 ‘서울 시민’이라고 느끼기는 쉽지 않다. 스팅의 노래 ‘Englishman in New York’에는 “I’m an alien, I’m a legal alien”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살아가다 보면 스스로가 이방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방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가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서울의 청년 정책들이 수많은 이방인들을 좀 더 섬세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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