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있는 하니>는 내가 만든 첫 단편영화다. 고등학생 때 혼자만의 상상은 대학 동아리 친구들을 만나 영화가 되었다.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뿔이 생겼답니다. 다소 민망한 위치에 자라난 뿔, 왜 하필 가랑이 사이로 자라났을까요? 세상에! 그나저나 저는 이대생인데 학교는 어떻게 다녀야 할까요? 23년을 여자로 살았는데 이 뿔 하나 때문에 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다니요. 제가 여자인지 남자인지가 누군가 답을 내려주길 바랄 뿐입니다.”라는 시놉시스 하나로 모인 감독 3인방. 

혐오의 시대에 자신의 의견을 세상에 내던져 보자는 포부는 창대하나, 

그에 비해 너무 하찮은 성찰의 깊이… 

 

과연 오합지졸 감독 3인방이 무사히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던 순간, 그간 채워지지 않았던 갈증과도 같은 욕구가 해소되었다. 그러나 청량감 넘치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고구마의 연속이었다. 원래는 금사빠가 상대방 성별도 모르는 채 사랑에 빠져버려 괴로워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사랑에 있어서 물경력자였던 난,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쓸 자신이 없어 자극적인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그러다 한 동아리 친구가 ‘이번 시나리오 고자극이라며?’라고 물어보았다. 순간 ‘고자극‘이란 단어가 게슈탈트 붕괴되어 고자가 나오는 극, 뿔이 달렸다가 떨어지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렇게 지금의 시나리오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시나리오 작업뿐만 아니라, 뿔을 달고 나오는 하니 역 배우 캐스팅도 어려웠다. 적은 지원자들 중, 마음에 드는 배우가 없어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연기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 만화 <달려라 하니>인줄 알고 착각해 지원하신 배우님과 운 좋게 같이 작업 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촬영 날, 비가 내리기도 했다.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자연재해도 피해 간다는 날씨요정 이승기 사진으로 카톡 프로필 사진을 바꿨다. 곧이어 팀원 전체가 한마음으로 프로필 사진을 바꿨다. 그 결과 신기하게도 촬영을 시작하면 비가 그치고 촬영을 접으면 비가 내리는, 하늘마저 도와주는 촬영장이 되었다. 

 영화 작업이 끝난 후, 공동감독을 한 친구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한명은 로스쿨을 준비하고 다른 감독은 변리사 시험을 준비한다. 모두가 사자 직업을 준비하는 동안, 힙합 전사라도 되어야 하나 고민하던 참에 학교 지원을 받아 또다시 영화를 찍게 되었다. <달려있는 하니>를 찍기 전에는 배고픈데 밥을 먹지 않고 마사지 의자에만 누워있는 기분이었다면, 이후에는 마사지 의자를 벗어나 밥상 앞으로 기어간 느낌이다.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다면 계속해서 영화를 찍고 싶다. 특히 이분법적인 경계에 아찔하게 걸쳐진 존재의 불안과 고독을 담고 싶다. 예를 들어, 여자와 남자, 삶과 죽음,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이분법적 경계의 어디에도 명확하게 속하지 못한 존재를 다루고 싶다. <달려있는 하니> 속 주인공 하니도, 여자도 남자도 아닌 존재가 처한 상황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며 이 세상에 본인과 같은 사람과 혼자라 느끼기에, 외롭고 불안해한다. 영화 끝에는, 결국 생식기 하나 차이가 성별과 더 나아가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 거라면, 성별이라는 사람을 구분 짓는 경계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생각을 담고자 했다. 

이번에 제작 중인 영화 또한, 살아있는 것도 죽어있는 것도 아닌 존재의 외로움과 죽음을 선택할지 말지 딜레마를 다룬다. 영화는 하루아침에 영문도 모른 채로 엄마가 차가운 눈사람이 되는 걸로 시작된다. 딸은 엄마를 냉장고에 넣어둔 채, 최선을 다해 엄마가 사람으로 되돌아올 방법을 찾는다. 엄마는 딸을 두고 따뜻하게 녹아 사라질지, 냉장고 추위 속에서 연명할지 고민한다. 모녀에게 최선의 이별은 없다. 차악의 이별만 존재한다. 만약 눈사람으로 변해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추위로 고통스럽게 연명하지만 녹지 않기‘ vs ’온기 속에 고통을 끝내고 녹아버리기‘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이러한 비극적인 운명은 사회의 안락사 문제를 생각나게 한다. 현실에서 안락사에 대해 얼마나 찬성하고 반대한다는 통계적 수치와 뉴스는 간간히 등장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죽음과 안락사라는 고민하고 싶지 않은 문제를 자발적으로 고민해 보는 것은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다. ‘만약 영화 속 이야기처럼 사랑하는 가족이 눈사람이 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내가 눈사람이 되면 어떤 선택을 할까?’와 같은 물음표를 관객 마음속에 심고자 한다.

내가 추구하는 영화 작업은 대머리인 사람의 이마와 머리의 경계를 찾는 것과 같다. 조심스럽게 이마와 머리 부분을 반복해 두드려 보는 것이다. 이마인지, 머리인지 기민하게 두드리다 보면 이마와 머리 사이의 명확한 경계선을 찾을 수 있다. 영화를 통해 이분법적 경계를 두드려 발견하면, 원래 지구상 국경이라는 것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이분법적 경계를 파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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