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야마 캠퍼스의 풍경. 제공=박인서씨
아오야마 캠퍼스의 풍경. 제공=박인서씨

“페미니즘과 데모로 유명하지 않나요?”

지난 9월 말에 아오야마가쿠인 대학에서 열린 유학생-본교생 글로벌 교류 행사에서, 한국에서는 이화여대에 다니고 있다고 소개하자 한국에 관심이 많다는 남학생이 한 말이었다. 나와 함께 파견된 벗은 둘이 동시에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한국에서 그동안 ‘시달린’ 것이 많아 바로 고개를 끄덕이기가 망설여졌다. 그런데 남학생은 그 의미를 이해했는지, 곧 손을 내저으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니 오해 말아달라’라고 덧붙였다.

내가 파견된 아오야마가쿠인 대학교(‘가쿠인’은 ‘학원’이라는 뜻으로, 재단명이 ‘아오야마 학원’인 것이다. 줄여서 ‘아오가쿠’라고 부른다.)는 공교롭게도 이화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사소하게는 학교의 대표색이 진녹색이라는 점부터, 미션스쿨이고 그래서 학교에 예배당이 있다는 점, 그리고 유동 인구가 많은 번화가와 번화가 사이에 있다는 점이 그렇다. 또, 도쿄 도내 사립 대학 중에서 은근히 ‘부자 학교’, ‘아가씨, 도련님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이미지가 있다는 점도 꼽을 수 있겠다.

반대로 가장 큰 차이점은 캠퍼스의 크기다. 국내에서도 넓은 편인 이화와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아오가쿠의 아오야마 캠퍼스는 아담한 편이다. 가나가와에 위치한 사가미하라 캠퍼스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아오야마 캠퍼스보다 조금 넓은 정도인 듯하다. 그래도 캠퍼스에 가득한 녹음과 잘 깔린 벽돌길 덕분에 꽤 정취 있는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또, 캠퍼스가 작으니 강의실 간의 거리를 신경 쓰지 않고 시간표를 짤 수 있는 것도 생각보다 큰 장점이었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이날 행사에서 내가 앉아있었던 한국 테이블에 방문한 일본인 학생들은 대부분 K-POP이나 드라마, 연예인에게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었다. 그런데 이 남학생은 특이하게도 국제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전공 역시 그쪽이었다. 그 덕분에 이화라는 이름에서 페미니즘과 데모라는 키워드를 떠올린 것 같다. 남학생은 다행히도 한국에서 으레 듣던 것 같은 말은 일절 꺼내지 않았다. 그 후로도 오염수 방류와 같은 다소 ‘불편한’ 주제가 나왔지만, 마음 상하는 일 없이 대화를 마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일본처럼 보수적인 사회에서 자란 사람들은 아무래도 꽉 막혔을 것이다’라는 나의 편견을 깨는 데에 일조했다. 당연히 모든 일본인이 그처럼 열린 사람은 아닐 것이다. 보수적인 인물이나 언행도 여러 번 마주쳤다. 그래도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라고 하는 안심감과 기대감을 주었다고나 할까.

이제 두 달 조금 안 되게 지냈을 뿐이지만, 일본이 보수적이고 변화를 싫어하는 사회인 것은 확실히 느꼈다. 하지만 그런가 하면, 예상외의 부분에서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점도 많았다.

일본에서는 머리를 염색한 여성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가 무색하게도 아오가쿠의 캠퍼스에는 다양한 머리, 다양한 옷차림을 한 여학생들이 많았다. 일본 내에서도 꾸준히 지적의 목소리가 나온 덕분에 그런 분위기는 한결 나아진 듯하다. 또, 특이한 옷차림에 관해서는 일본이 한국보다 수용적이라는 느낌을 종종 받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용적이라기보다는, 크게 관심 두지 않는다는 쪽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공중도덕을 위반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의) 특이한 옷차림을 한 사람이 지나가면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국에서는 그들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과 비난이 담긴 시선이 쏟아지는 것을 당사자가 아니라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튀는 사람이 거리를 걸어도 지하철에 올라도 다들 신경 쓰지 않았다. 주로 시부야, 하라주쿠 같은 개방적인 번화가를 자주 다녀서인가 싶었지만, 조금 한적한 동네나 기숙사가 위치한 주택가에서도 비슷했다.

이것은 어쩌면 일본 사회의 개인주의적인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보았다.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면 타인이 어떻게 하든지 관여하지 않고, 또 필요 이상으로 관여하는 것을 꺼리는 일본의 문화 때문이지 않을까. 한국인으로서는 가끔 오지랖을 부리고 싶거나 거리를 좁히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이런 분위기가 디폴트로 깔린 사회는 그 나름대로 편했다. 문득, 이화에 오고 나서 생활관 소파에 누워서 잠을 자도, 초췌한 차림으로 학교에 와도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점이 신기했던 경험을 겹쳐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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