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한 나는 지금 배가 고프다. 그렇지만 나에겐 느긋하게 밥 먹을 여유가 없다. 컴퓨터 앞에 앉아 컵라면을 먹으며 수습 일기를 쓰고 있자니 약간 서러운 감정이 생긴다. 머리 댈 곳만 있으면 자버리는 내가 자는 시간도 아까운 기분이 드는, 정말 희한한 11월이 지나가고 있다. 11월은 이화인에게 바쁜 달이다. 각종 수업의 팀플들이 노려
제작을 6번 끝내고 나서야 수습 생활에 적응했다 싶었는데 75기 수습기자 모집 공지가 떴다. 게다가 이 수습일기를 쓰고 있는 사이, 한 학생이 75기 수습기자 지원서를 받으러 학보사를 다녀갔다. “저기요. 여기서 수습기자 지원서 받는 건가요?” 난 얼어버려 말문을 열 수 없었다. 소름이 쫙 돋았다. 아직 4번의 제작이 남았는데 벌써 75기 수습이라니!학보사
수습기자가 된 후 5번의 신문 제작을 마쳤다. 겨우 5번 제작하는 동안 내 생활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지 스스로 놀라고 있다.그동안 나의 나쁜 습관 중 하나가 한 번 쓴 글은 절대 다시 보지 않는 것이었다. 그 글이 서술형 시험의 답안이든, 논술 시험이든, 레포트든 한 번 쓰면 그대로 끝이었다. 그러나 기사를 쓴다는 것은 이와 차원이 달랐다. 초고를
▶세살버릇… 아니, 처음 버릇 끝까지 간다?정식으로 수습기자가 된 후 처음으로 내 이름을 달고 나간 기사는 원고지 2매 분량정도의 짧은, ‘세계 석학 초빙 협약식’을 소개한 것이었다. 이 기사는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실은 나에게 엄청난 시련을 안겨준, 뼈아픈 과거가 있는 기사였다. 원래 나는 교수님들의 인터뷰 기사를 맡았었다. 생각보다 쉽게 인터뷰를 끝내고
★월요일 : 지난 주 땀흘려 만든 신문이 정문 가판대 위에 놓여있다. 이화인들의 손이 신문을 지날 때마다 뿌듯하다. 그 기분도 잠시, 이번 주에 제작하는 신문을 위해 기사꺼리를 찾아내야 한다. 평화롭게만 보이는 학교 안에서. 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 하면 ‘이건 기사꺼리야!’. 우연히 천장을 바라보니 전선이 보기 싫게 삐져나와 있다. ‘학교의 미
1252호 제작을 마치고 찾아온 꿈같은 휴간. 하지만 나는 휴간 하자마자 일주일을 인터넷 기사 쓰는데 바쳐야 했다. 게으름증 덕택에 부랴부랴 보충 취재를 마치고 기사를 쓰고, 국장님의 OK만을 설레는 맘으로 기다리던 이가진 기자. “가진아~” 국장님께서 부르셔서 “예~”하고 달려가니...“너...월요일에도 와야겠구나” 두둥!그 이유는 바로 내가 지금 쓰고
◆학보사에 들어와 다섯번째 신문을 제작 중이다. 한 학기 제작의 절반을 달려온 지금의 나를 돌아보며 마음껏 질책해보자!!나는 지난 여름 방학, 예비 수습 기자 기간에 나름대로 대형사고를 친 적이 있었다. 정오까지 학보사에 출근(?)해야 하는데, 밀린 색인숙제 때문에 밤을 새고 아침에 잠깐 잔다는 것이 진탕 늦잠을 자버린 것이다. 일어나 시계를 보니 벌써 오
부장언니 曰: 자, 이번 주까지 인터넷 기사 마감하자! 진 (속으로)曰: 이번 주는 지면기사에다 인터넷 기사까지… 언제 다하지. 약속도 있는데. 막막하기만 하다. 아직까지는 한 주에 기사 하나를 써내는 일이 나에게는 벅차다. 처음 신문을 제작할 때는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해 친구들도 만나고 책도 많이 읽어야지’하고 다짐했건만, 지금 내 모습을 보니 이번
한창 수능준비를 하던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생이란 말은 나에게 있어 마냥 좋고 가슴 설레이는 말이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되고 난 후에는, 기자의 모습을 10년 넘게 동경해 온 나에게 '기자'란 말이 온 힘을 다해서라도 잡고 싶은 유일한 꿈이 됐다. 이대학보사 기자가 된 지금, 난 내가 그토록 열망했던 것들을 하나 둘씩 이루고 있다는 느낌에
“어떤 옷을 입을까요?” “평소 너같이 입고 갔다가는 맞고 오겠다. 얌전한 옷으로 골라 입어.”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를 취재하게 된 나는, 무엇보다 어떤 옷을 입고 가야하는 지를 걱정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연신 옷에 관한 질문을 할 정도로 나의 첫 취재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 지가 중요한 게 아니였다. 가마솥에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해야 하기 때문이다“ 벌써 2달 동안의 예비수습기간이 끝나고 정식으로 수습기자가 됐다. 시험을 보러 학보사에 왔을 때부터 합격자 명단을 봤을 때, 그리고 2달 동안 74기 친구들과 힘들지만 알차게 방학을 보낸 일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처음 학보사에 들어와 전화받는 일부터 맥 다루는 일을 교육받던 일, 몇일동안 밤을 새워가며
아무것도 몰라서 용감한 출발설렘과 두근거림의 초심열정으로 가득 찬 처음단단히 마음먹고 시작 순간에 불과한 서막 그러나 떨리는 첫발실수 연발 어설픈 초보 무한 가능성의 도전 아직은 용서할 수 있는 실패유연성이 부족하나 적당히 조율된 긴장권위, 체제에 대한 새로운 저항확고한 자신만의 신념뜬금없지만 정곡을 찌르는 호기심덤벼드는 유쾌한 자신감막힘없이 굴러가는 사고
"74기 수습기자가 되겠습니다. 사회과학부 1학년 이지상 입니다!" 잔뜩 긴장해서 좁은 어깨를 쭈뼛거리며 외쳤던 각오. 학보사 기자가 됐다며 온 동네방네 소문내고 요란스레 시작한지 두 달. 신문 제작에 참여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게을러지는 나를 반성한다. 지난 두 달 학보사에서의 생활은 20년 동안 견고하게 다져진 나의 게으른 생활과는 완전 반대의 그것이었다
“불볕 더위 속에서 남들 다 가는 여행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한 채 기자로써의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대학에서의 첫 방학을 학보사에 헌신했다.” 라고 하자면 양심에도 찔리고 민망스럽기도 하기에 그런 표현은 차마 적지 못하겠다. 그렇다면 나는 긴긴 방학 동안 무엇을 했나?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투덜거리고, 짜증내
앞으로 9천9백만 걸음. 아직은 단 한걸음!아직 내가 갈 길은 멀고도 멀다.이제 시작을 향한 첫발을 조심스레 내딛었을 뿐이다. 입학하고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 조심스레 넣었던 학보사 원서. 그리고 신문 귀퉁이에 조그맣게 실려 있던 합격자 발표. 대학 합격자 발표보다도 어쩌면 더 기다렸던 소식이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학보사 안에서 어리버리하게 있는 동안 일정
나중에 알찬 열매만 맺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꽃이 아니더라도 슬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지금 당신 앞에 붓과 물감이 있다. 천국을 그려라. 그리고 걸어 들어가라. ‘시작’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경험하고, 땀 흘린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과거에 충실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시작’이란 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