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한 나는 지금 배가 고프다. 그렇지만 나에겐 느긋하게 밥 먹을 여유가 없다. 컴퓨터 앞에 앉아 컵라면을 먹으며 수습 일기를 쓰고 있자니 약간 서러운 감정이 생긴다. 머리 댈 곳만 있으면 자버리는 내가 자는 시간도 아까운 기분이 드는, 정말 희한한 11월이 지나가고 있다.

11월은 이화인에게 바쁜 달이다. 각종 수업의 팀플들이 노려보고 있고, 한 수업 당 몇 개의 레포트를 제출해야 하며, 뒤늦게 중간 고사를 보는 과목도 있다. 나 역시 이번 달에 해야 하는 팀플이 세 개다. 레포트는 매주 두 개 이상씩 있다. 게다가 이번 주는 화요일과 목요일에 시험이 있고, 레포트가 4개, 아니 5개에 기사도 2개나 맡았다. 설상가상으로 수습일기도 내 차례가 돼버렸다. 정말 눈물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내 마음 속 진실을 고백한다. 항상 가볍게 끄적끄적 쓰던 이 수습일기가 지금은 애물단지로 느껴지고 있음을.

나는 이대학보사의 수습기자이기도 하지만, 이화여자대학교의 1학년 학생이기도 하다. 이 야릇한 두 위험한 관계 사이에서 경계인인 나는 지금 고달프다. 다른 기자들에게 나의 고통을 나누고(기사 하나쯤은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조금이나마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사실 바쁘지 않은 기자는 한 명도 없다. 다들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숙제를 하고 취재를 하며 또 기사를 쓴다. 그렇게 해서 한 주를 바쁘게 지내고 나면 신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불평할 수 없다. 나는 다시 한 번 입술을 깨문다.

피끓는 스무 살에 못할 것이 무엇이 있으랴.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내가 하고싶어서 하는 일이 힘들다며 투정하는 나는 참 우둔한 녀석이다. 지금 이렇게 힘들다며 툴툴대고 있지만, 언젠가 학보사 생활이 내 인생에 보석이 돼 나를 비춰주리라 믿는다. 그 믿음만 있다면, 오늘의 고통 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려오는 Epik High의 신나는 리듬 속으로 날려버릴 수 있다.

오늘도 열심히! 마음 속에 열정을 꽃피우는 나는 자랑스런 이대학보사 수습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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